무려 외동딸이다.

by 하니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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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퇴근길,

화를 내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고비가 있었지만 그대로 행했더니,

외동딸이 아빠의 예봉을 피하느라 팽팽히 당겨왔던 사춘기를 잠시 내려놓고 아이로 돌아온다.


아빠 폰을 가져가 자기가 공들여 만든 유튜브 영상을 보여준다.


"아빠는 하니랑 책을 좀 같이 보고팠는데?"

"아빠, 학교에서 매일 보고 오거든"


2절을 생략했더니, 영상을 하나 더 보여준다.

게다가,

웬일로 웬 떡이냐?

오랜만에 침대에서 아빠랑 자기로 결정한다.


재잘재잘 끝이 없다.


"아빠, 나 내일 친구집 가서 놀고 하루 자고 오려했는데, 그냥 교회 파자마 파티 가게~"

"그래? 전학 간다는 친구 아니야?

아빠는 그 친구 배웅하는 겸 가서 놀고 오는 게 더 나을 것 같긴 한데, 뭐 네 선택이니까."


"아빠 삼 학년 때 같은 반 친구가 친구 몇 명이랑 책을 냈대, 일인당 삼십만 원씩 들어갔대.

난 돈이 없으니까... 글 쓰는 건 싫지 않은데 얘처럼 책으로 낼 자신은 없어"

"음... 굳이 책으로 낼 필요 있니? 그냥 뭔가 쓰고 싶으면 써, 아빠는 하니 글이 참 좋아."

"응, 근데 막상 쓰려면 귀찮아."

"그래, 맘 가는 대로 합시다. 이제 자자"


"아빠, 근데 오늘 우영우 못 봤다. 내일은 보자"

"내일 파자마 간다며, 잘까? 이제~"


한가득 딸 허리를 안았다.

이대로 끝날 리가 없다.


"아빠, 근데 내가 생각을 해 봤거든?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잖아?

근데 아기씨가 들어와서 점이 되었다가, 지금 이렇게 되어 있는 거자나? 그게 신기해.

지금도 난 아무것도 아닌 것 같기도 해...

그니까 내 마음대로 살 수가 없으니까, 난 아직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그런 생각이 들어.

어차피 마음대로 안 되니까 그냥 마음을 안 쓰고 살아야 되는데, 또 그게 잘 안 돼"


"응. 하니 말이 좀 어려운데, 아빠도 마음대로 안 돼,

오늘 회사에서도 아빠는 내 부족함이 미웠고, 싫었어, 집에 오기 전까지 우울했는데,

'다 귀찮다. 집에 들어가서 오늘은 하니랑 안 부딪혀야지' 생각하고 들어왔더니 지금은 마음이 다 풀렸어.

할머니도 아빠 마음대로 안 되지만, 비우고 내려놓으려 노력하고 있어.

하니한테도 화 안 내야지 다짐하지만 첫 마음처럼은 잘 안 돼,

마음대로 하려는 마음이 문제인 것 같아. 엄마한테도..."


결국 내가 먼저 잠들었다.

새벽에 깨서 뻘짓을 잠깐 했지만, 기분 좋게 일어났다.


화내지 말고, 있는 그대로...

무려 외동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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