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다.
숙면했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흔한 일상이 나에게 '로또'처럼 찾아온 오늘. 무지하게 행복하다.
나는 어제 pm 11시에 누웠다.
오늘 아침 일어나 보니 am 6시 15분.
믿을 수가 없다. 나는 어제 잠든 이후 중간에 시간을 확인한 적이 없다. 기적이다.
이런 날은 일단 올해는 당연히 처음이고.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초빅빅 데이이다.
중간에 한 번만 깼다. 아가 방에서 자던 마늘이 내 옆으로 왔기에 안아준 기억이 있다.
나는 잘 안아주지 않는 나쁜 손인데 어제는 마늘이 깊은 고민이 생겼기 때문에 안아준 것 같다.
미라클 주니 단톡방에 기상을 알리고 나서.
왜 내가 이렇게 행복한 기상을 했을까를 바로 써보고 싶어 집 노트북을 켰는데 안 켜진다. 고장이다.
오늘은 초과 근무도 안 되는 날인데 출근을 일찍 해서 사무실 컴퓨터로 써야겠다.
이런 날은 머리 속에서 글이 터지기 때문이다.
그저께 나는 딸을 재우며 잠든지 한 시간 만에 일어났다.
다시 잠을 들이려 했지만 실패했고, 컴퓨터를 켰다가 '휘성의 죽음' 소식을 접했다.
생각했다. 아. 내가 오늘 쉽게 다시 잠들기는 힘들겠다.
브런치에 먼저 추모글을 올리고 나니 새벽 3시가 넘었다.
누워봤다. 한참을 뒤척이다 보니 새벽 4시도 넘었다.
언제 잠들었지는 모르겠고 합쳐서 2시간 반 정도 잔 것 같다.
그래도 기를 쓰고 사무실 6층 헬스장에서 20분 러닝 머신을 탔다.
'미라클 모닝' 모임에서 운동을 계속 빼 먹는 나의 루틴에 너무 쪽팔림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비몽사몽 오전을 보냈다.
버티려고 아메리카노에 샷추가도 했다.
나는 불면증과 싸우기 위해 몇 년 전부터 디카페인만 먹는다.
점심에 서대문 세무서에서 착한 누나가 찾아와 즐거웠다.
2006년 서대문 세무서 민원실에서 같이 근무했던 천사 누나. 처음 보는 직원 한 분도 데려오셨다.
어쩌다 인연이 닿은 여기 팀장님도 동석하여 약간은 어색한 정다움을 나눴다.
식곤증을 얹은 오후는 더 힘들었다. 급기야 책상에 엎드려 잤고 침과 함께 일어났다.
"나 얼마나 잤어?"
"한 시간이요."
귀여운 옆자리 여직원의 장난질이었다. 15분 엎져 잤다. 안도와 아쉬움이 겹쳤다.
단잠의 효과가 없었고 또 계속 졸았다. 전산 업무는 포기 해야겠기에 편철 작업으로 버텼다.
퇴근해서 이쁜 딸래미 수영 수업을 보러 갔다. 이번 달부터 일주일에 한 번만 수업을 해서 화요일만 귀여운 자맥질을 구경할 수 있기에 피곤함을 뚫고 향했다.
딸이 수영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감정이 벅차오를 수가 없다. 눈물이 날 지경의 감동이 항상 온다. 왜인지는 알 듯 모를 듯 하다.
집에 오니 아직 마늘이 오지 않았다. 방황하고 있는가 하여 전화해보니 거의 다 왔단다.
여보는 하니가 파스타를 해달라 하니 어수선함 속에서도 뚝딱 해줬다.
'오일 파스타'가 정말 맛있었다. '옥수수 팥범벅'까지 해줬다.
맛돌이 대식가 딸은 기분이 좋았는지 숙제도 금방 다 해치운다. 블로그 이웃들의 귀한 답글에 대한 답글을 달려고 서재방으로 이동하려는 찰나 딸이 부른다.
"아빠 어디가? 같이 봐야지~"
딸은 티비를 틀었고 '보이 넥스트 도어' 예능 유튜브를 틀었다. 나는 그것이 재미있을리 없다. 숙면을 위해 멜라토닌을 먹으려 잠깐 자리를 뜨니 딸은 보던 유튜브를 멈춘다.
"빨리와. 1초도 따로 볼 수 없어!" 딸의 버릇이다. 꼭 나를 옆에 붙이고 보려 한다.
아이브, 뉴진스, 에스파 때가 좋았다. 남자 아이돌로 흥미를 돌린 이후 나는 합청 시간이 매우 힘들다.
딸래미는 자기 방으로, 나는 안방으로 향했다.
바로 잠이 들었나 보다.
아침에 마주친 마늘 표정이 안 좋다.
"잠 좀 잤어?"
"아니"
"어제 내 옆에 온 시간이 몇 시쯤이야?"
"3시"
나는 마늘이 새벽 기도를 하는 5시 정도였다고 생각했는데 고민이 깊었나 보다. 새벽 한 시부터 쭉 못 잤다고 한다. 안타까웠지만 첨언할 말이 없었다.
어제는 나와 그녀의 몸이 바뀌었다.
부디 오늘 다시 누울 때는 그녀가 원래의 자기 잠옷을 되찾아 입을 수 있기를 바란다.
불면증은 사람을 침잠하게 만든다.
게다가 그것이 하루 이틀의 우발이 아닌 두꺼운 일상이 될 때. 불면증은 불면암이 된다.
어김없이 뒤척인 나의 수많은 밤들은 쓸모 없는 새벽으로 이어졌고 그 새벽을 거닐다 보면 달인지 해인지 모를 피안의 세계가 열린다. 그 피안의 반복은 좌뇌를 멈추게 하고 우뇌를 절여버린다.
몇 잔의 술이면 될 줄 알고 기깔나게 취해도 봤지만 숙면은 오지 않았다.
그런데.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금주의 효과인 것 같다.
나에게 숙면이 찾아 온 날.
뇌혈이 돈다. 뇌혈이 돌면 생각과 글이 터진다.
하나였던 밤과 낮이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고 순간과 적막을 이해할 수 있는 탄력이 붙는다.
그 탄력으로 나의 뜬 눈은 더 이상 허공에 매달린 동공만은 아니다. 그 이상의 힘을 가진다.
그 힘으로 기억 저편을 길어 올려 채색을 입힌다. 기억은 추억이 된다.
추억의 창문을 열면 약수터가 나온다. 그 곳에는 엄마의 불호령에 벌벌 떨며 밤산길을 절뚝이며 걸어가는 내가 있고 뒤따르는 형이 있다. 그 뒤에는 그 형을 뒤따르는 엄마가 있다. 사랑이 있다.
숙면은 사랑이다.
오늘. 참 중요한 날이다.
부디 오늘 밤에는 우리 가족 모두가 숙면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