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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성의 죽음을 기리며.

by 하니 아빠 Mar 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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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새론 그녀가 떠난지 한 달도 되지 않았다.

 나는 어제 숙제가 너무 많아서 우울하다는 딸을 어렵게 달래 재우려 누웠다가 잠이 들었나 보다.


 어제는 월요일. 취득세 신고 창구 당번이었다.

 '오피스텔 산 것이 왜 주택 수에 들어가냐며 내가 하지도 않은 반말을 자기한테 해서 녹음을 해놨다며 협박하는 광년의 전화'에 화가 많이 났다가 착한 후배가 사준 커피에 마음을 풀었다.


 저녁에 집에 와서 사랑하는 딸이랑 마트에서 장을 보고 함께 저녁을 준비하며 많이 웃었고 숙제를 도와주며 기분이 좋아졌다.

 졸려서 몸부림치면서도 숙제를 꾸역꾸역 해내며 괴로워하는 딸 때문에 슬픔도 왔다. 달래준다고 머리를 말려주고 함께 '지리산 담비' 유튜브를 손잡고 보며 마음을 만져주어 마지막에 다행스럽게도 토닥이며 재울 수 있던 날이다.


 나같은 '사인'은. 평범한 지방직 공무원은 '희노애락'을 첨예하게 겪었어도 다른 '애오욕'을 조금 덧대면 하루를 잘 마무리 할 수 있다.

 이 은밀하게 열린 광장에 내 아무리 솔직하게 난잡했던 일상을 풀어 놓은들 '선플'만 주로 달리며 사실 별 깊은 관심을 얻지 못 한다. 내 의지대로 하루를 잘 닫아낼 수가 있는 것이다. 


 오늘 점심 식사 후. 요즘 딸이랑 사이가 소원해진 것 같아서 이벤트를 찾으러 인터파크에 들어갔다. 좋아하는 아이유 콘서트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기대에 검색을 했다. 아이유 소식은 없었지만 서울에서 허각 공연(3.15~16)이 있어서 깊이 고민했다. 허각을 좋아하는데다 그 벅찬 성량에 제대로 긁힐 수 있는 소극장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가족 모두 집회에 나가려 계획해 놓은 주말이기도 하고 딸이 허각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아쉬움을 넣어 두었다.

  KCM과 휘성의 공연이 있었다. 둘 다 좋아하는 가수지만 '대구' 공연이어서 가볍게 넘겼다.


 나는 음악을 참 좋아한다.

 성장기에 이어폰을 꽂고 시린 눈으로 개미핥기처럼 땅바닦을 훑고 다니는 모습이 나의 전형화된 전형이었다.

 2002년은 월드컵의 해였다.

 2002년은 보아의 'No1',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박정현의 '꿈에', 별의 '12월 32일' 등 명곡들이 많이 나왔다. 비도 '나쁜 남자'로 데뷔했다.


 휘성의 등장이 있던 해.

 '안되나요~ 나를 사랑하면 조금 내 마음을 알아주면 안되요. 아니면 그 사람 사랑하면서 살아가도 되요 내 곁에만 있어 준다면~'  


휘성은 노력파로, 어렸을 때부터 항상 열등감을 느끼며 산 데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까지 가지고 있어서 항상 남들을 따라잡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다고 한다. 휘성이 6개월 정도 실용음악 학원을 다녔었는데, 음치에 성량도 작았던 자신에 비해 당시 같은 학원에 다니던 사람들은 김범수, 이영현, 임정희 같은 최량의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왜 그렇게 성량이 작아요?'라고 누가 말하자 휘성은 그 후로 계속 성량을 키우는 연습만 했고 6개월 후 학원을 나올 때에는 그 학원에서 성량이 가장 큰 학생이 되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우울증이 심했고 2005년에 만성 우울증 진단을 받았는데 당시 우울증 검사에서 최고 위험 등급의 무려 8배에 해당하는 수치가 나왔다고 한다. 당시 검사를 했던 대학병원의 검사 이래 최고로 높은 수치였다고 한다. 게다가 만성 비염 때문에 평소에 잠을 제대로 못 자 불면증에 시달려 수면제나 항우울제 등 정신과 약물을 지속적으로 복용했다고 한다.

 라디오스타 출연 당시 자기 비하를 자주 하고, 과거의 전성기 얘기에 기분이 좋아졌다가도 현실을 자각하며 의기소침해지기를 반복하는 모습에 MC들이 걱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휘성 같은 '공인'은. 그것도 장기간 고공에 있던. 열등감과 우울증이 첨예한 '예인'은 '희노애락'을 겪은 후 다른 '애오욕'을 덧대기 힘들 것이다. '일상의 평범함을 꾸준히 유지하기'가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답지만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외로운 위치에 있는데다가 언론과 대중의 경계 없는 관음으로 변곡이 있을 때 제정신의 의지로 하루를 잘 마무리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벼랑질로 돈을 버는 난전꾼들과 악플러들은 사실과 진실에는 별 깊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 겨누면 그만이다.


 휘성은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사람이었다. 

 경계성 인격장애, 우울증, 불면증 같은 단어를 사람들은 부끄러워하고 숨기려 하지만 그는 '공인'임에도 솔직했다. 솔직할 수 밖에 없을 만큼 발톱 저리게 외롭고 괴로웠을 것이다.


 나 역시 대인 기피와 우울증, 불면증을 주기적으로 겪고 있는 사람이기에 이런 죽음이 더 깊이 슬프다.

 그는 이제 진짜 아픔 없는 곳으로 갔다. 더 이상 속절 없지 않아도 되는 곳.

 고마웠다. 좋은 노래를 불러줘서. 덕분에 나는 좀 덜 외로웠다.


'안 되나요'의 부제는 '화양연화'이다.

 편히 쉬기를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거리만이 그리움을 낳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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