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은 내 남편
남편은 눈이 많이 안 좋다. 망막색소 변성증이라는 나는 듣도 보도 못한 그런 병을 가지고 있다. 그게 그렇게 급격히 진행이 될 줄이야.... 참 힘들고 어두운 터널에 그렇게 들어오기 시작해서 여전히 묵묵히 그 터널을 걷고 있다. 같이 말이다. 아니 각자 말이다. 처음엔 참 많이 힘들었는데.... 그래도 이젠 조금 무뎌지고 담대해지고 견딜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순간순간 두더지가 튀어나오듯 상처가 불쑥불쑥 튀어 올라 많이 아프다. 하지만 또 사랑과 이해와 용기와 지혜와 감사와 행복함과... 또 뭐가 있지.... 뭐 그렇게 지그시 눌러본다. 그리고 빙긋이 미소 지으며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한다. 남편의 아재 개그로....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긍정적인 남편의 마인드다. 사실 그 덕분에 우린 이렇게 가정을 유지하고 있다.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준 아들과 딸, 디자인 전공으로 미국에서 석사까지 마쳤으나 눈이 잘 보이지 않게 되어, 하고 싶었던 일은 전혀 하지 못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열심히 해 주는 남편과 공학을 전공하고 결혼 후 경력 단절로 전공 따라 일은 못하지만 그럭저럭 회계일이나 사무직 일을 하면서 나의 성취욕을 만족시켜 주지 못하고 여전히 이것저것 너무 하고 싶은 게 많은 나. 우리 가족 구성원은 이렇게 이루어져 있다. 그저 평범한 한 가족의 구성원이지만 한때는 우리 가정에 눈 나쁜 남편이 전부였던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를 잘 극복했다고 해야 하나... 잘 지나와 이제 우리 모두가 있는 평범한 가족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 남편의 긍정 마인드 덕분이다.
남편이 교회의 소그룹 모임에서 남자분들과 앉아 농담하고 떠들고 웃다가 어쩌다가 스트립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우리 남편이 선동을 한다. 우리 남자들끼리 마이애미에 있는 스트립바를 한번 가보자는 둥 뭐 이런 농담을 했던 것 같다. 근데 그중에 굉장히 직설적이고 솔직히 지나칠 정도였던 한 어르신이 "에이.. 자기는 잘 보이지도 않으면서 뭘 그래?" 하신 것이다. 우리 모두 순간적으로 얼음이 되어버렸는데 우리 남편 왈 "혹시 알아요? 눈이 번쩍 뜨일지..." 그러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 폭소를 터트리며, 그의 재치 있는 답과 긍정적인 마음을 모두가 인정하게 되는 사건이었다. 그 뒤로 우리 남편과 그분은 서로 어디 가서 하지 못하는 이야기까지 나누며 깊은 공감을 하는 사이가 되었고 정말 친한 친구처럼 옆에서 나보다도 더 남편을 보살펴 주셨던 분과 참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말이다.
그 친구를 잃고 나서 남편은 참 많이 힘들어했다. 더욱이 30년을 열심히 일만 하시다가 은퇴하고 겨우 1년도 편히 못 쉬시고 너무 허망하게 가시니 우리 모두가 망연자실했다. 정말이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 후로 우리는 둘 다 더 욕심을 버리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워낙에도 우린 둘 다 욕심이 없다고 해야 하나... 아님 무능한 건가... 뭐 그렇게 악착같이 무언가를 추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여전히 그럭저럭 먹고사는 것에 만족하고 산다.
남편이 주로 집에서 생활을 하니까 너무 답답해해서, 거의 매주 토요일에는 남편을 데리고 드라이브를 가는 게 일이었다. 집으로부터 동서남북으로 2시간에서 4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모든 곳을 다 다녀왔다. 우리가 사는 이곳엔 매일매일 정말이지 하늘이 예술이다. 그러면 내가 그 광경을 상세히 설명하려고 하는데 참 힘들 때가 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아휴.. 이건 정말 봐야 하는데... 어떡하지.... 우리 남편 가만히 있더니 "어떤 때는 사실 내가 자기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을 본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웠던 광경을 내 머릿속에 그리면서 밖을 보면 그게 내 눈앞에 펼쳐지거든....." 그 뒤로 우리는 한동안을 아무 말 없이 왔다. 내가 그랬듯 남편 눈에도 눈물이 비치는 걸 보며, 그냥 서로 숨죽이고 울고 있었다. 조용히.....
이토록 아름다운 광경을 보지 못한다는 건 너무 가혹하다.
마음 아팠지만 고마웠고, 행복했다. 내 남편이 본인에게 다가온 고난을 이토록 훌륭하게 감내하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고, 고마웠고, 이렇게 가장으로서 가족들을 본인에게 매이지 않고 우리가 각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고 있구나........
사실 며칠 전 어느 기자분이 쓰신 눈이 안 좋으신 어머님에 대한 아버님식 사랑 이야기를 읽으며, 덤덤하게 울 남편 이야기 댓글로 달아놓고는 며칠을 앓았다. 이제 좀 담대해진 줄 알았는데... 아문 상처가 아니라 덮혀진 상처이다 보니 불쑥불쑥 이렇게 고개를 드는구나 싶다. 눈도 안 좋으신 어머님께서 부딪히거나 실수하시면 면박을 주고 짜증 내시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는 기자님의 글을 읽으며 난 사실 아버님 마음이 아릿하게 전해져 왔다. 아버님의 면박과 짜증은 스스로와 어머님도 약해지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으리라...... 그렇지 않았으면 매일같이 부둥켜안고 울어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서로 언제라도 울음이 터져 나올 그 감성을 건드리기 무서웠으리라.....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사라소타에 Oyster Bar 가 있는데 동그란 쟁반에 얼음을 깔고 그 위에 Oyster Half Shell을 올려서 가져오는데 제법 싱싱하고 먹을만하다. 처음에 우린 한국식으로 초고추장 생각이 간절했었는데 이제는 Horseredish 잔뜩 넣은 칵테일소스에 익숙해져 오히려 초고추장이 어색하다. IPA Draft Beer 한두 잔과 Oyester 2 dozen정도를 먹으면 기분 좋게 옛날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옛날 대학시절 알바로 미술학원강사를 하면서 돈을 제법 많이 벌었던 그 시절, 월급날이면 후배와 친구들이 모두 남편 자취방에 모여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후배와 친구들과 술에 먹을 것 잔뜩 사서 같이 먹었던 그 시절 생각이 난다면서 너무 좋아라 한다.... 아마도 남편은 그 옆자리에 후배, 선배, 동기들이 모두 둘러앉아 같이 술 마시고, 하하호호 이야기하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생각난 건데 베토벤도 건반 소리는 들리지 않았을까? 다른 소리는 듣지 못하게 되었어도 매일같이 두드리고 듣던 피아노 건반의 소리가 귀로는 들리지 않았겠지만 뇌의 소리에 대한 기억으로 들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렇다면 설사 물리적으로 정말 남편이 빛을 잃는다고 해도 그의 뇌가 기억하는 한 그가 빛을 잃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이 조금은 위로가 된다.
오늘도 난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이토록 아름다운 하늘 보고 살 수 있게 해 주신 것 너무 감사합니다.
남편이 본인의 고난을 스스로 훌륭하게 감내하고 있는 것도 너무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게 해 주신 것도 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우리 아이들을 지켜 주십시오.
늦둥이 막내로 받기만 하고 자라 그저 나 하나만 잘 하고 살면 되었던 저에게 누군가를 위한 배려를 배우게 하시고 또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연단하심이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남편도 나도 무언가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려 아등바등하지 않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감사하는 마음밭을 주신 것에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창조하신 이 아름다운 세상을 남편도 같이 보고 감사하고 감탄할 수 있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