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정현 Jun 10. 2021

부고

산후조리원에서 있었던 한 조각의 기억을 가지고 써보는 소설


 그의 부고를 들었던 건 아이를 낳은 지 딱 열흘이 되는 날이었다. 중학교 동창 K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어제 진석이가 죽었어. 내일 발인이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한테는 꼭 알려야 할 것 같아서...."

 그때 나는 산후조리원 수유실에서 아기의 수유를 마치고 막 방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핸드폰을 들고 있는 손가락 끝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어쩌다가?"

 정말이냐느니, 거짓말 말라느니, 그런 답장을 써볼 생각도 못한 채... 죽음의 이유를 따져 물었다. 죽었다고? 진석이가? 왜? 마지막으로 그와 연락을 주고받았던 건 2년 전이었다. 아프다거나 병에 걸렸다거나 하는 그런 내색은 아무것도 없었다.

 답장을 보내고 나니 말풍선 안에 담긴 네 글자가 너무 덤덤해서 지금 내가 받은 충격의 그 무엇도 대변해주지 못했다. 말줄임표라도 덧댔어야 했나, 아니면 전화를 걸어볼까 하며 고민하는 와중에 상대방이 답변을 작성 중이라는 표시가 메신저에 떴다. 말풍선이 생겼다가, 없어졌다가, 또 생겼다가, 없어졌다가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같이 들썩였다가 내려갔다가 한다. 상대방이 한참 단어를 골랐는지, 기다린 시간에 비해 답변은 짧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어린 시절의 내게 진석은 놀이터에서 자주 마주쳤던 아이 중에 하나였다. 초등학교 때 여러 번 같은 반이었던 것 같은데 언제였는지 정확한 학년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는 동네의 수많은 남자아이들 중 하나였을 뿐이고, 나도 그에게 수많은 여자아이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6학년 때 같은 반이 아니었던 건 기억한다. 그때 내가 짝사랑하던 남자애가 진석이와 같은 반이었는데 졸업 이후에도 몇 달간 이어진 짝사랑의 열병으로 초등학교 졸업앨범에서 내 사진보다 그 남자애 사진을 더 많이 들여다봤기 때문에 바로 옆 칸에 나란히 실려 있던 그의 사진도 같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우리는 초등학교 때 이후로 한 번 더 같은 반이 되었는데 같이 어울렸다거나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 기억은 전혀 없다. 다만 나와 반 석차 1등을 두고 다투던 K군이 그와 꽤 친했어서, ‘쟤는 늘 항상 내가 신경 쓰는 애와 세트로 묶이네.’하고 생각했던 것과, 어느 날 집에 가는 길에 그가 여자중학교 교문 앞에서 뻘쭘하게 서 있는 모양을 보고 ‘연애하나?’ 하고 피식 웃으며 지나쳤던 기억이 난다. 딱 그 정도.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내 인생에 깊게 들어온 적 없는 아이였다.

 그랬던 그가, 내 인생에서 꽤 중요한 사람 중 하나가 된 것은 스무 살의 2월. 입학 예정이었던 대학교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날이었다. 쌀쌀한 날씨에도 조금이라도 더 예뻐 보이겠다고 스타킹에 하이힐을 신고, 교복 치마보다도 훨씬 짧은 모직 스커트를 입고, 그리고 고3 내내 질끈 묶어대기만 했던 머리를 곱게 풀고 캠퍼스를 총총거리며 걸어갔다. 인생의 암흑기는 끝났고 이제 대학생이 됐으니 최대한 예쁘게 꾸미고 사람들도 많이 사귀고 할 수만 있다면 연애도 하면서 새 인생을 살아보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품은 날이었다. 그런데 대강당 앞 공터를 지나고 있을 때, 나의 그 결심을 와장창 깨주겠다는 듯, 등 뒤에서 누군가가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주변의 시선이 살짝, 나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향해 움직였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을 이 캠퍼스에서, 모두가 초면인 이 오리엔테이션 날, 대체 누가 나를 저리도 친근하게, 그리고 거침없는 큰 소리로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설마 고등학교 동창은 아니겠지. 제발 나의 흑역사를 기억하는 누군가가 아니기를. 가슴 한 구석에서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진정시키고 천천히, 그리고 최대한 새초롬하게 뒤돌아봤다.


 모르는 남자가 서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사람 얼굴을 꽤 잘 기억하는 편이라고 자신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저 남자가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고등학교 동창인가. 그렇지만 우리 고등학교에 저런 남자애는 없었다. 저렇게 키가 크고, 잘생기고,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훤칠한 비주얼은 분명 우리 고등학교에 없었다. 물론 선배 중에도 없었다. 있었으면 전교에 소문이 나고도 남았겠지.

 "누구시죠...?"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는데, 그가 어떻게 나를 몰라볼 수 있느냐고 배신감을 느낀다는 듯 털털하게 웃었다. 웃는 그 눈꼬리를 보다가, 저 웃는 얼굴이 생각보다 꽤 익숙하게 느껴졌다. 내가 아는 누군가의 짓궂은 웃음과 많이 닮았다. 그러고 보니 얼굴도 어딘가 비슷하다. 그런데 그 웃는 얼굴, 찰나에 스쳐가는 그 인상 외에는 내가 기억하는 얼굴과 모든 것이 달랐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 분명 그 아이의 키는 나와 엇비슷했고, 얼굴에는 젖살인지 볼살인지 모를 통통한 그 무언가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저렇게 턱선이 굵고, 어깨가 넓은 ‘어른 남자'의 분위기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렇지만 저 웃는 눈매는, 분명 그와 똑 닮았다.   

 "김진석?"

 혹시나 실례되는 반응이 아니었기를 바라면서 조심스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미 웃고 있던 얼굴에 더 큰 웃음이 번졌다. 그렇게 웃으니 내가 아는 그 얼굴이 더 선명하게 겹쳐 보였다. 그가 반갑다는 듯 내 어깨를 툭 치며 인사했다.  

 "야, 진짜 반갑다. 어떻게 여기서 딱 만나냐."



 그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으로 든 생각은 ‘어떻게?’였다. 우리 학교 경영학과 커트라인은 국내 사립대학 중에서 제일 높은 편이었다. 이 학교 경영대를 들어올 만큼 걔가 공부를 그렇게 잘했나? 중학교 때는 전교 등수는커녕 반 석차에서도 순위권에 없었는데? 대체 내가 모르는 고등학교 3년 동안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내가 아는 그 김진석이 아닌 다른 김진석이 눈앞에 떡 하니 나타났을까. 그러나 ‘용 됐구나.’라는 속마음은 입 밖으로 절대 내뱉지 않고 꿀꺽 삼켜버렸고, 나의 흑역사를 아는 누군가가 나타날까 봐 마음 졸였던 것과 다르게 되려 내가 그의 흑역사를 아는 누군가가 된 셈이었다.


 우리가 언제부터 서로의 어깨를 툭툭 쳐 가며 인사를 나눌 만큼 살가운 사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우리는 우연히 한 번 더 마주쳤다. 밤늦게까지 이어진 술자리 때문에 이 시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건 처음이었는데, 붐비는 지하철에서 누군가 나를 톡 건드리는 바람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러나 바로 그의 얼굴을 마주하고 실로 안도했다. 지하철 역에서부터 환승하는 버스 노선까지 모든 귀갓길 동선이 겹쳤기에 우리는 오다가다 어디서든 마주칠 수 있는 사이였다. 동네 친구. 그래서 대체 어느 타이밍에 헤어지는 인사를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사이. 그런데 의외로 아파트 입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늦었으니까 너희 아파트 현관까지 데려다줄게. 13동 맞지?"


 내 귀갓길 안전을 걱정해주는 이런 신사적인 면모까지 갖추었다니. 대체 내가 모르는 3년간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리고 그때 나는 깨달았다. 10년 전에 김진석을 좋아한다고 말했다면 모든 동네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되었겠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그에게 살짝 반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걸.  





 3월이 되자 진석의 별명은 ‘경영대 강동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강동원이라. 그래, 지금까지 진석을 보면서 한 번도 그 배우를 떠올린 적은 없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이미지가 좀 있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어느 날 지하철에서 마주친 그에게 너는 키 큰 것만 빼면 강동원보다는 가수 비 닮지 않았어?라고 툭 던지듯 물어봤고, 그는 너마저 사람 부끄럽게 왜 그러나며, 안 그래도 그 강동원이라는 별명 때문에 미치겠다고 웃는 얼굴인지 우는 얼굴인지 모를 묘한 얼굴로 투덜거렸다. 사람 보는 눈은 다 비슷한 건지, 아니면 그 애의 해실해실한 눈웃음에 여럿 넘어간 건지, 자세한 사정을 시시콜콜히 알 수는 없지만 그가 주변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에게 작업을 걸어볼라 치면 나도 ‘문과대 김태희' 정도는 되었어야 했을 텐데, 아무도 내게는 연예인 이름을 빗댄 별명 따위를 붙여주지 않았다. 오르지 못할 나무가 또 한 그루 생겼구나 하며 지하철 같은 칸의 그 누구보다도 키가 큰 그를 나무 쳐다보듯 멀뚱히 올려다봤다.

 짝사랑 인생 8년 차에 또 다른 짝사랑이 시작되었다.

 1학년 수업 시간표가 전공과 무관하게 다 거기서 거기인 건지 우리는 그해 봄, 많은 아침마다 자주 마주쳤다. 함께 열다섯 개의 지하철 역을 지나치며 빈자리가 하나 생길 때마다 그는 어김없이 내게 먼저 앉을 것을 권했고, 어느 날은 내가 양성평등을 주장하며 너도 양보만 하지 말고 먼저 앉으라고 말하자 ‘내가 다음에 하이힐 신고 오면 앉을게.’하며 내 구두를 가리켰다. 지하철 의자에 앉아 내 앞에 서 있는 그를 바라보면, 키가 너무 커서 고개가 뻐근하니 아팠다. 내 옆자리도 비어서 함께 나란히 앉아갈 때면 서로 맞닿은 어깨 부분이 살짝 뜨거웠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이, 열차는 금세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름에 그는 오토바이를 하나 장만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캠퍼스를 누비는 경영대 강동원의 인기는 말해 무엇하리. 더 이상 그를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어느 날엔가 그가 얼굴 본지 너무 오래됐다며, 점심 공강에 같이 밥이나 먹자고 연락했다. 학교 식당에서 만나 같이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씩 사들고 캠퍼스의 가을을 감상하다가, 수업 잘 들으라며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그와 한 번 더 점심을 같이 먹었던 것 같기도 하다. 네가 한 번 밥을 샀으니, 이번엔 내가 사겠다며 먼저 연락했다. 내 논리에 따르면 하이힐 착용과 무관한 양성평등의 법칙은 밥값에도 적용되어야 했다. 내가 밥을 사고, 그가 커피를 샀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무렵, 조모임에서 만난 두 학번 위의 선배가 내게 고백을 해 왔다. 고맙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거절했다.


 그 무렵이었다. 2학기 종강을 앞둔 기말시험 기간이었다. 하루에 두 과목의 시험을 연달아 쳐야 하는데, 앞선 수업의 시험은 캠퍼스 북쪽 끝에 있는 경영대 건물에서였고, 다음 수업의 시험은 캠퍼스 서쪽 끝에 있는 생활과학대 건물에서 치러졌다. 아무리 빠른 걸음으로 걸어도 20분은 족히 넘는 거리였다. 배정된 시험 시간표를 보여주며 다음 시험 조교에게 ‘도저히 시간 내에 올 수 없다'라고 사정했지만, 학생 개인의 사정으로 모두의 시험 시간을 늦출 수는 없다는 냉정한 답변만 돌아왔다. 앞선 시험 시간 1시간을 다 채우지 말고 40분만 보고 오시면 어떨까요. 하는 조교의 말에 아니 그럴 수 있다면야 저도 좋겠지만, 그 시험이 어려울지 쉬울지 시간이 적게 걸릴지 오래 걸릴지 제가 미리 알 수는 없잖아요. 라고 항변했다. 말이 안 통하는 조교에게 통사정을 하며 투덜거리는 동안 머릿속에 번뜩 진석의 오토바이가 떠올랐다. 사람 걸음으로는 20분이 걸리는 거리지만, 오토바이를 타면 5분이면 충분할 텐데. 가뜩이나 지난주에 받은 고백으로 마음이 심란하던 차에 연락할 핑곗거리도 생겼겠다, 시험시간표라는 명백한 증거물도 있으니, 그에게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물론 이 위기의 다른 타계책도 떠오르지 않았다. 사정을 설명하는 내 전화에 "무슨 요일, 몇 교시?"라고 되물어본 그는 답변을 듣고 흔쾌히 오케이를 했다.   

 "너도 시험기간이라서 공부하느라 바쁠 텐데 번거롭게 해서 미안해."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닌데 뭘. 그리고 내가 어떻게 네 부탁을 거절하냐."    

 마지막 문장은 그 뒤로도 여러 번 곱씹어서 생각해 봤다.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는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예의상 해본 말일까 아니면 그만큼 내가 그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의미일까? 그는 자신이 내 마음속에서 얼마나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상상이나 해 봤을까. 혹시라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을 겉으로 드러낸 건 아니었을까. 아니다. 그는 모를것이다. 그걸 모르니 이렇게 사람 마음 흔들어 놓는 말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겠지...

 문제의 당일날, 시험을 마치고 경영대 건물 바깥으로 나오니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 갖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따로 준비해 온 건지 그는 여분의 헬멧도 내게 건네주었다. 경영대 앞에서 경영대 강동원의 오토바이를 타다니. 누군가의 질투를 불러일으키기 딱 좋은 장면이군, 하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피식 웃었다. 누가 우리를 보고 질투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뭔지모를 설레는 분위기가 우리 사이에 조금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의 헬맷을 받았다.   

 "오, 김진석. 오토바이 타니까 너도 좀 멋져 보이긴 한다? "

 "오토바이 없으면 안 멋지다는 얘기로 들린다? "

 "당연한 거 아냐? 지하철에선 이런 아우라가 없었는데? "

 웃음 뒤에 속마음을 감추고 그의 뒷자리에 탔다. 어깨를 잡아야 하나, 하고 살짝 망설이고 있는데, 그가 거리낌 없이 내 손을 그의 허리 앞으로 가져와서 휙 둘렀다. 여기 내리막길이라서 위험하니까 꽉 잡아. 나는 순순히 그의 말을 따랐다. 누가 우리를 보며 연인 사이로 오해해주면 좋겠다고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그 겨울의 끝무렵, 새학기가 시작하는 3월에 그는 군대에 갔다.


 ‘너 입대했다며. 나한테 어떻게 말 한마디 안 하고 군대를 가냐?’라고 문자를 보냈지만 답변이 없었다. 어쩌면 사용하던 핸드폰 번호는 입대하면서 해지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싸이월드 홈페이지 첫 화면에 부대 주소를 올려놓았지만, 편지까지 써서 부치는 건 너무 과한 것 같단 생각에 보내지 않았다. 무슨 말을 써야 할 지도 모르겠고, 편지는 너무 진지한 물건이라 그러면 정말 마음을 들킬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가 제대할 무렵, 나는 해외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몇 년 후 결혼 소식을 전했을 때 우리는 겨우 이십대 중반이었기 때문에 내가 결혼한다는 말에 그는 진실로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우리가 벌써 그런 나이가 되었어? 결혼이라니. 와, 너는 정말 어른이 되었구나... 하고 그는 감탄하였다. 그건 스무 살의 진석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너는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렸다고, 왜 이렇게 혼자서 훌쩍 어른 남자가 되어버린 거냐고 그렇게 묻고 싶었다. 청첩장 줄 테니 만나서 밥 한 번 먹자는 말에, 그는 지금 해외에 어학연수를 나와 있다고 답했다.  

 "엄청 예쁠 텐데. 보러 가지 못해서 미안해. "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첫 아이를 낳은 산후조리원에서 그의 부고를 들었다. 2월, 대학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났던 그날과 똑같이 쌀쌀한 날씨가 기승을 부리는 늦겨울이었다. 장례식장인 A대학병원은 산후조리원에서 차로 15분이면 가는 거리였고, 조리원에서 아기를 맡아주고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못 다녀올 것도 없었다.


 그러나 분홍색 수유복은 상복이 아니었다.


 남편에게 집에 있는 검은색 정장을 가져달라고 부탁하려다가 관뒀다. 이 겨울에 산모가 어디 외출이냐고, 게다가 산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부정 타게 장례식장을 다녀오는 게 말이 되느냐고 길길이 날뛸 것이 안 봐도 뻔했다. 그런 그에게 내게 진석이 어떤 존재였는지 그가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엄마고 아내였으니까. 어린 시절 얼굴이 그대로 남아있는 그 해사한 눈웃음을 사진으로라도 보게 되면 나는 과연 어떤 감정을 마주하게 될까. 그 무슨 감정을 느끼든지 간에, 그 감정은 지금 남편에게, 그리고 새롭게 가족이 된 이 아이에게 죄책감으로 돌아올 것 같았다. 이미 한 사람의 아내가 되었고,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나에게 예전에 좋아했던 남자를 떠올리며 슬퍼한다는 것이 과연 용인되는 일일까?   

 영정사진 속에 들어있을 그의 얼굴을 마주하기가 두려웠다.

 "알려줘서 고마워. 그런데 나 얼마 전에 아기를 출산해서 지금 산후조리원에 있어. 그래서 직접 가보지 못할 것 같아. 나 대신… 진석이 마지막 가는 길 인사 잘해줄래? "

  K군에게 답변을 보냈다. 그리고 그가 보낸 메시지를 다시 읽어보다가 문득 해결되지 않은 궁금증이 생겼다. 나한테는 꼭 부고를 알려야 할 것 같다는 그의 말은 무슨 뜻일까. 대학교에서 우리가 다시 만났다는 걸 예전에 진석이 그에게 말했던 적이 있을까. 그는 우리가 단순히 중학교 동창에서 끝난 인연이 아니었다는 것을, 다른 동창들보다는 아주 조금 더 친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그렇다면 그는 나에 대해 어떻게 얘기했던 걸까. 뭐라고 얘기했기에 K군이 생각하기에 나는 그의 부고를 꼭 알아야 하는 그런 사람이었을까.

 K군에게 뭔가를 더 물어보려는데 또다시 그가 메시지를 작성 중이라는 표시가 생겼다가, 없어졌다가 한다. 무슨 메시지가 올 지 몰라 타이핑을 멈춘 채 그대로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신생아실 창문 밖으로 새롭게 태어난 생명들을 바라보며,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어떤 미소가 떠올랐다. 어쩌면 지금 장레식장으로 그를 보러 가지 않으면, 그래서 영정사진 속 얼굴마저 바라볼 수 없는 시간이 오면, 그럼 나는... 나는...


 그 ... 기다렸던 시간에 비해 여전히 짧았던, 그래서 또 고르고 고른 단어들로 만들어진 새 메세지가 도착했다. 그 메세지를 읽고나니 더더욱 장례식장에서 가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새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는 화려하고 밝은 장소에서, 나는 그저 계속해서 어떤 죽음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다. 부고를 읽고 또 읽었다. 그것 외에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애도의 방식이 없었기에.   







작가의 이전글 나도 남편보다 쪼끔 더 벌었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