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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Jul 31. 2022

자식 농사

육아에 대한 오지랖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대체로 자기 전문 분야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이는 농부가 수확한 밀이나 호밀, 감자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공예가가 자기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것과 비슷하지요. 예컨대 엄마들은 두 돌인 아이와 세 살 된 아이와 또 다른 나이 아이들이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합니다.

_도널드 위니 코트, <충분히 좋은 엄마> 중에서


 엄마들은 보통 자기 아이에 대한 이야기, 나아가 남의 아이 이야기도 참 하기 좋아한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이제는 엄마들이 자신의 아이에 대해서, 자신의 아이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아이를 여럿 낳아 키우면서, 아이들에 대해서 '내가 안다'라고 이야기하는 게 날이 갈수록 조심스러워진다.


 농부가 호밀이나 감자에 대해 이야기하듯이, 자기 작물에 대해서 이야기하듯이, 내가 키우는 아이들에 대해서 '내가 육아의 전문가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일단은 아이들이 농토의 작물처럼 그리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 아이들을 키우는 토양, 품종, 기후, 그 무엇 하나 서로 일치하는 점이 없다.


 다들 육아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고 힘든 점을 이야기할 때, 속으로 '왜 저렇게밖에 하지 못하지?'라고 생각하며 자만했던 적이 있었다. 첫 아이를 키울 때였다. 아이는 순하고 얌전하고 손이 덜 가는, 책 읽기 좋아하고 언어가 빠른 딸아이였다. 아이가 발달이 빠른 것을 아이의 기질이나 천성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잘 키워서 그렇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와 다르게 순하지만은 않은 아이들을 키우며 힘들어하는 엄마들에게 조언이랍시고 참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했었다. 심리학을 전공했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심리치료를 하던 사람이라 나는 육아가 나의 전문분야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때 오지랖 부렸던 모든 이들에게 참 미안했다고 사과하고 싶다.




 같은 연령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 집단 속에서 내 나이는 상대적으로 많이 어리다. 첫째 아이 기준으로 아이들 연령은 똑같아도 주변 엄마들의 나이는 나보다 평균 예닐곱 살, 많게는 열다섯 살까지도 차이가 난다. 그런 언니들 틈에서 '쟤가 아직 어려서', '덜 살아봐서', '경험이 부족해서' 뭘 모른다는 말은 왠지 죽기보다 더 듣기 싫었다.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버둥거리며 육아에 대해서 제가 좀 압니다, 라는 아는 척은 일종의 방어기제에서 나온 태도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최근, 내가 오지랖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누가 봐도 순하고 수월한 기질의 외동아이를 키우면서 자신이 아이를 키운 이야기를 바탕으로 내게 조언을 하는데 '... 대체 뭐지?' 싶었다. 그 엄마의 말끝마다 가르치려는 태도에 좀 많이 질리고 말았다. 자기 아이 하나만을 키운 경험을 가지고 어떻게 저렇게 당당하게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할 수 있을까. 그 당당함이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때 내가 저랬구나 싶어서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쫌 많이 대단한 둘째와 만만치 않은 셋째를 낳아 키우면서 나는 그나마 겸손해진 것 같다. 세 아이 다 내 뱃속에서 나온 아이들인데 참 하나같이 다 다르다. 앞서 아이들은 농토의 작물처럼 그리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고 하였으나 기왕 농사 이야기가 나온 김에 작물에 비유하자면 첫째 아이가 감자, 둘째 아이가 사과나무라면... 막내는 열대작물 같다. 열대작물은 작물인데, 이게 바나나인지 파인애플인지 망고인지 파파야인지... 나는 온대지역에 살던 초보 농부라 이파리만 보고서는 아직 열매의 정체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딸 둘을 키웠던 12년의 시간은 아들 하나를 키우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감자인 첫째 아이는 땅 위에서 보면 속에 뭐가 들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말수가 적고 속을 잘 내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외부적으로는 부들부들 유순하고 푸르게 보인다. 쑥쑥 자라고 있고, 수수하고 예쁜 꽃도 펴내고 있어서 겉만 봐서는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중에 수확하겠다고 땅을 파 볼 때까지 나는 이 안에서 어떤 감자가 얼마큼 많이, 얼마나 크게 자라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에 반해 둘째 아이는 이미 태어나길 목질화 된 나무로 태어나서... 옆에서 누가 뭐라 하든 본인의 고집을 절대 꺾지 않는다. 부들부들 유순한 풀잎의 첫째와는 태생부터 다르다. 그런데 나무로 태어났으니 자라는 속도는 좀 느릴지언정 내가 인내하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 언젠가 멋진 꽃과 열매를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물론 단단히 뿌리를 내리기를 기다리는 그 시간만큼 손도 많이 가고 해야 할 일도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지를 부러뜨리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중이다. 막내는 일단 누나들과 성별부터가 달라서... 아, 얘는 아예 애초부터 토양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도, 햇볕도, 온도도 내가 예측하고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이, 더 과하게 필요하다. 엄마의 에너지를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아이인 만큼 그만큼 내가 쉽게 지치고 마는데 어쨌거나 흡수하는 만큼 넘실넘실 빠르게 성장하는 중이다.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형제자매들끼리도 이렇게 다른 데 하물며 남의 집 아이라면 얼마나 다를까.


 내가 첫 아이를 출산하고 아이를 키울 때, 재미있게도 내게 가장 많은 육아 오지랖을 부렸던 건 미혼인 직장 동료들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심리치료사로 일했던 지라 그야말로 최고 학력의 전문가 집단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막상 기혼 여성들은 조용한 데 반해 아이를 키워본 적 없는 싱글들이 이런저런 잔소리를 더 늘어놓았다. 일단 아이 하나 키워보고 나서 말씀하시죠, 하고 말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최근에 내게 육아 오지랖을 부린 외동 엄마에게도 전혀 다른 기질의 아이 하나 더 키우고 나서 말씀하시죠, 하고 말하고 싶다. 배추만 키우지 말고 바나나도 한 번 키워보시라고. 그런데 제가 키우는 건 배추도 바나나도 아니라고.


 그러고 보면 육아는 늘 항상 나를 바꾸게 되는 큰 계기가 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비로소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덕목을 배운다. 이제는 외동이든 둘이든 셋이든 힘들다 하면 그저 공감하고 들어주려고 노력한다. 육아 조언 같은 건 함부로 하지 않으려고 살짝 넣어두려고 한다. 입찬소리하는 거 아니라고 하는 어른들 말씀도 새겨듣는다. 그러고 보면 <충분히 좋은 엄마>의 저자, 도널드 위니코트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변화의 비율과 변화하는 방식은 엄마뿐 아니라 아이에 따라 다릅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너무도 다른 방식으로 성장합니다.

_<충분히 좋은 엄마>, 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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