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갑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번 새해를 폴란드에서 보낼 수 있을 줄은 미처 몰랐는데 (과거의 저는 2023년 12월에 한국으로 귀임할 줄 알았거든요...), 어느새 여섯 번째 새해를 폴란드에서 맞이하고 있네요. 올해도 펑, 펑, 폭죽소리와 함께 시끄럽고 뜨겁고 연기 나는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폴란드에 온 첫 해에는 대규모 폭죽놀이에 경악했던 기억이 납니다. '유럽 사람들에게는 새해에 불꽃놀이를 하는 풍습이 있다'라는 걸 대충 말로만 전해 들었을 뿐 그게 어느 정도 규모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거든요. 심지어 이미 알고 있던 풍습인데도 불구하고 새해 전날에 첫 폭죽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그 사실 자체를 까먹고 있었어요. 그래서 3, 2, 1, Happy New Year!라는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는 순간, 온 사방에서 펑펑펑펑퍼펑!!! 하는 폭죽소리가 들렸을 때, 흔한 비유지만 저는 '전쟁이 난 줄' 알았습니다. 가슴 깊은 곳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소리. 두근거림과 서늘함의 그 중간쯤 되는 아슬아슬한 감정. 그때는 폴란드에 살게 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던 힘든 시기라, 이 낯선 나라에서 새해를 맞이했다는 두려움이 서늘한 감정을 더욱 증폭시켰던 것 같습니다. 아주 가까이에서 들리는 폭죽소리는 펑, 소리보다는 탕, 소리에 가깝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고요.
이런 작은 폭죽만 터트리며 소박하게 새해를 맞이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실제로 사전 조율되지 않은 개개인의 폭죽 퍼레이드는 이런 대혼돈의 느낌입니다. (사진출처 : unsplashed)
그때는 막내가 1살, 둘째가 3살, 그나마 유아기를 벗어난 큰애가 고작 7살이었던 폭풍 육아기의 한복판이었던지라 기껏 재워놓은 아이들이 폭죽 소리에 깰 까봐 조마조마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밤잠에서 깬다는 건... 저에겐 또 다른 의미의 전쟁이 시작되는 거였으니까요. 다행히 바로 앞에서 대포소리가 들려도 잠이 깨지 않는 저희 아이들은 (미 해군이 잠자는 저희 아이 10m 옆에서 진짜 대포를 쏜 적이 있는데 깨지 않았었답니다), 새해맞이 불꽃놀이 소음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아침까지 꿀잠을 자 주었습니다. 새벽 3시까지 이어진 폭죽소리에 잠을 잘 수 없었던 건 오로지 저뿐이었어요.
코로나 락다운으로 적막했던 한 해에는 폭죽소리가 오히려 위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거리는 한산하고 도시는 조용한 가운데 누군가 뿌려놓은 불꽃이 하늘을 예쁘게 수놓는 순간. 그 해에 드물게 행복했거든요. 저 불꽃을 터뜨렸을 누군가의 마음과, 함께 불꽃을 바라보고 있을 이 거리의 누군가를 상상할 수 있었고, 그제서야 겨우 수많은 이웃들과 연결된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지긋지긋했던 한 해였고, 얼른 떠나보내고 싶었던 2020년이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건강하게 잘 버텨줘서 고맙다는 마음이 폭죽소리를 따라 펑, 터져버렸어요. 유난히 춥고 힘들었던 겨울에 불꽃놀이를 바라보며 뭔가 후련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기에, '이래서 유럽 사람들이 새해를 맞이하며 폭죽을 터뜨리나 보다.' 하고 조금 더 이웃의 문화에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펑펑펑펑퍼펑!!! 하는 폭죽소리와 함께 한 해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앞집에서 하늘 위로 쏘아 올리는 폭죽은 좀 무섭더군요. 쉬이익, 하며 폭죽이 가느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로 올라가다가, 펑! 하고 저희 집 지붕 위에서 터지는데 그야말로 불꽃 가루가 제 머리 위로 쏟아질 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예뻐서 바라보고는 싶은데, 아차 하는 순간 저 불꽃이 제 눈 속으로 떨어질 것 같은 공포심이랄까요. 예쁘다는 감정과 무섭다는 감정이 뒤죽박죽 뒤섞여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와중에, 결국에는 저보다 더 공포스러워했던 아이들의 손을 잡고 12시 15분경 집 안으로 철수했습니다. 불꽃은 예뻤지만, 어쨌거나 폭죽 소리와 연기와 두근거리는 심장의 느낌은, 다시 한번 흔한 비유지만 '전쟁이 난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그 뒤로도 새벽 두세 시까지 폭죽 소리는 지칠 줄 모르고 이어졌지만, 이제는 적응이 되었는지 저는 노이즈 캔슬링 이어 버드를 끼고 숙면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매년 이 어마어마한, 불꽃 축제와 폭죽놀이의 중간쯤 되는 퍼레이드를 볼 때마다 '저러다 불나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너무 우리집 코앞에서 터뜨리는 폭죽을 보면, 저러다 우리 집 정원 나무에 불이 붙는 거 아닐까 싶어 조마조마한 마음이 듭니다. 이런 저의 걱정이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닌 게, 매년 새해마다 불꽃놀이를 하다 큰 사고를 겪은 사람들의 뉴스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일 베를린에서만 불꽃놀이를 하다가 눈이나 손에 상처를 입어 병원에 온 사람들이 27명이라고 하는데요, 유럽의 대도시마다 매년 비슷한 숫자의 사고가 보도되는 걸 보면 '안전사고를 남의 일'로만 치부할 수는 없겠지요.
기사 원문 : https://www.yna.co.kr/view/AKR20240101051800082
개인이 사서 터뜨리는 폭죽은 각종 요란한 소리를 내는 싸구려 폭죽인 경우도 많은데, 아기들 뿐만 아니라 소리에 민감한 반려동물들이 공포심을 느껴 트라우마가 생기는 경우도 많다고 해요. 거기다가 철없는 10대들이 쓰레기통에 폭죽을 넣고 터뜨리거나, 보행로 가까운 곳에서 폭죽을 터뜨려서 행인들이 다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조금만 더 안전하게, 그리고 어린 아가들과 반려동물들이 있을 이웃을 배려하며 폭죽놀이를 즐겨줬으면 하는 건 사치스러운 바람일까요? 이왕 새해맞이 폭죽을 터뜨릴 거라면 아무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한 해를 맞이하는, 안전한 행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찬란한 새해에, 희망의 불꽃처럼 잘 살아보겠다는 에쁜 마음만 담아서요.
올해도 글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모두 감사드려요. 새해에는 소망하는 일 다 이루시고,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 보내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