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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Jan 30. 2024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순간


 "새해에는 부디 '건강'하게만 해주세요!"라고 소원을 빌었던 게 얼마 전이었는데, 딱 건강만 빼고 다 있었던 1월이었습니다. 왼손 인대가 다쳐서 그동안 반깁스를 하고 살았고, 깁스를 풀고 나니 아이들이 연달아 40도가 넘는 고열에 시달렸거든요.


 몸이 아프니 마음도 아팠던 건지 흔히들 향수병이라고 하는 감정이 쓰나미처럼 몰아닥쳤습니다. 폴란드가 많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몇 주 동안에는 정말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그동안 부대꼈던 일상이 쉽지만은 않았거든요. 다친 손으로 아픈 아이들을 돌보고 살림을 한다는 게 녹록지 않았습니다. 청소를 하지 못해 더러워진 집은 그냥 무시하고 돼지우리인 채로 살아가도 그만이지만(청소왕 브라이언이 보면 기겁할 소리), 인간은 끊임없이 먹어야 하는 존재. 그러나 다친 손으로는 장을 보는 것도, 식재료를 씻어 다듬는 것도, 요리를 하는 것도 다 쉽지 않았어요.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징징댈 때마다 "나도 마켓컬리와 쿠팡과 배달의 민족이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라고 절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에 가장 가고 싶었던 순간은 왼손 인대가 다쳐 손목이 퉁퉁 부어올랐던 날에 찾아왔습니다. '병원에 가면 개고생'이라는 걸 오랜 유럽생활로 이미 인지하고 있었기에, 웬만하면 병원의 도움 없이 민간요법으로 다친 손을 해결하고 싶었어요. 열심히 아이스팩을 하고, 파스 연고를 바르고, 스카프로 삼각건(?)을 만들었지만... 다친 지 12시간쯤 지나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고통이 찾아오며 눈물까지 찔끔 나더라고요. 이렇게까지 아프면 단순한 인대 부상이 아니라 뼈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집에서 버티려던 마음을 포기하고 병원에 갔습니다.


 폴란드에는 한국과 같은 국가 의료보험은 없습니다. 국립병원은 무료이지만, 의사를 한 번 만나려면 6개월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악평이 쏟아지지요. 대신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는 사립병원 프랜차이즈의 보험에 가입해서 해당 계열사의 사립병원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편의 회사에서 나름(?) 폴란드에서 가장 좋다고 하는 사립병원의 가장 좋은 보험 프로그램에 주재원 가족들을 가입해 주었어요. 이 가장 높은 등급의 보험 프로그램에 가입해 있는 vip 회원들에게는 응급하지 않아도 응급실을 이용할 수 있다는 혜택이 있습니다. 폴란드에서는 아이가 아파서 증상이 있기 시작한 날 진료를 예약하려면, 그날부터 보통 의사를 만나기까지 2~3주가 걸립니다. 그래서 vip혜택에 언제든 응급실에서 진료를 볼 수 있다는 조항이 있는 것 같아요.  병원에 가서도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겠지만, 우리가 한국의 일반적인 가정의학과 의원을 생각하듯, 아픈 날 병원에 가서 당일 진료를 볼 수 있다는 건 유럽에서는 어마어마한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에서 15분 거리에 제가 가입해 있는 사보험 계열사의 종합병원이 있었고, 종합병원이라 응급실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아픈 팔을 부여잡고 해당 병원 응급실로 가기로 마음먹었어요. 의사 만나서 대충 엑스레이 찍고 붕대 좀 감고 물리치료 예약 잡고 오면 되겠지, 하고 가볍게 생각했으니까요. 병원에 도착한 건 오전 11시쯤이었는데, 병원 접수대에 가서 회원카드를 내미니 접수대 직원이 저보고 잠깐 기다려달래요. 그녀는 컴퓨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이리저리 마우스를 클릭하더니 난데없이 '여권'을 달라고 합니다. 아니, 세상에. 대체 누가 평소에 여권을 휴대하고 다닌다고. 저는 여기에서 거주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폴란드 거주증(우리나라의 주민등록증이랑 비슷한 신분증입니다)도 있고, 운전면허증도 있어요. 이 두 개의 신분증은 평소에도 지갑에 넣어 늘 휴대하고 다니지만, 여권은 아니죠. 다른 신분증을 제시하니 여권이 필요하답니다. 다행히 스마트한 시대에 구글드라이브에 여권 스캔본이 있어 핸드폰으로 여권 복사본을 보여주니 넘어갑니다.


 그 뒤에도 한참 뭔가를 처리하는데, 느립니다. 느려요. 아파 죽겠는데,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계속 서 있는데도 접수처 직원은 꿋꿋이 집 주소를 다섯 번쯤 물어보고, 전화번호를 물어보고, 거주증 번호와 여권번호를 다시 한번 써달라고 뭔 서류를 내밀고, 알 수 없는 폴란드어로 빼곡한 서류에 여기도 사인하고 저기도 사인하라고 합니다. 뭔지도 모르는 채로 시키는 대로 다 서명하고(사실 이럴 때마다 너무 불안해요) 접수대에서 그렇게 한 시간을 서서 행정처리를 먼저 해야 했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해당 병원의 회원번호를 두 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처음 왔을 때는 여권번호를 신분증번호로 넣어 가입하고, 두 번째 재가입할 때에는 거주증 번호를 신분증번호로 넣어 가입해서 다른 사람으로 처리되었다면서. 아파 죽겠는데 일단 병원 접수부터 해주고 시스템은 나중에 수정하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외국인인 저는 묵묵히 서서 기다릴 뿐입니다. 저의 짧은 폴란드어와 직원의 짧은 영어로는 서로 이의제기를 하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그런 고차원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없거든요.  


 드디어 응급실 의자에 앉아서 제 차례를 기다립니다. 30분 넘게 기다리니 먼저 문진을 하는 의사가 저를 불러요. 이름과 나이를 확인하고, 혈압을 재고, 임신 여부를 확인하고, 주 호소 문제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매일 복용하는 약이 있냐고 물어서 매일 아침마다 레보치록신나트륨(갑상선 호르몬제)을 먹는다고 이야기했는데, 제 발음이 이상했나 봐요. 무슨 약인지 갸우뚱하는 표정입니다. Wi-fi를 와이파이라고 읽지 않고 비피(w가 v발음입니다)라고 읽는 폴란드사람들에게, Levothyroxine은 대체 어떻게 발음해야 할까 심히 고민되었습니다만, 이내 의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차트에 적길래 '아, 알아들었나 보나'하고 (그러나 정말 제대로 알아들은 게 맞을지 여전히 불안한 마음으로) 그 순간을 넘겼습니다. 의사와의 문진을 마치고 나니 오후 2시였는데요, 이제는 손의 통증과 더불어 배고픔이 몰려오더라고요. 역시 '병원에 가면 개고생'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의사인지 간호사인지 모를 누군가가 제게 다가오더니, 지금은 정형외과 의사가 없다고 합니다. 뭐? 종합병원(!)인데, 오후 2시에(!) 정형외과 의사가(!) 없다니. 제가 새벽 2시에 온 것이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저는 여기에 오전 11시에 오지 않았겠어요? 정형외과 의사는 오후 4시에 출근하니 그때까지 기다렸다가(그러나 그 의사는 예약환자를 먼저 봐야 하니 4시부터 다시 기약 없이 기다렸다가) 진료를 보던가 아니면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하는 겁니다. 아예 의사가 없었다면 처음에 11시에 왔을 때부터 제게 담당과 의사가 없다고 미리 말해주면 좋았을 텐데. 대체 저는 왜 여기서 2시간을 보냈던 걸까요.


 외국인으로서 겪는 언어적 문제, 인종차별적 문제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곳이 다름 아닌 병원입니다. 평화로운 그들의 직장에 달갑지 않은 손님이 뚝 떨어진 느낌. 의사도 간호사도 서로 폭탄 돌리기 하듯 동양인인 저를 회피하는 모습이 보이거든요. 그렇더라도, 그 시선과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끼더라도, 꾹 참고 최대한 예의 바르고 친절한 환자로 남아있으려고 애쓰는데, 이날은 정말인지 인내심의 끈이 툭, 하고 끊어지는 걸 느꼈습니다. 폭탄 돌리기의 결과로 저는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아무것도 받을 수 없었으니까요.


 서러워서 눈물이 핑 돌더니,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졌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요? 다시 택시를 타고 30분 거리에 있는 정형외과 의사가 상주하는 '다른 사립병원'의 응급실로 갑니다. 저는 이 사립병원 보험사의 회원이 아니기에 접수처에서 비회원으로 접수하니 "일단 의사를 만나는 데에 15만 원, 엑스레이를 찍는 데 10만 원이 드는 데 괜찮으시겠어요? 그 외의 깁스나 물리치료 같은 치료비용은 별도고요."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돈을 낼 수 있는지 없는지부터 일단 확인하고 나서야 접수를 해주었습니다. 그렇다고 대기만 6개월 걸린다는 국립병원을 갈 건 아니잖아요. 그날 약 40만 원의 진료비를 내고 병원문을 나서는데... 한국의 저렴하고 신속한 의료시스템을 제가 얼마나 그리워했을지 말 안 해도 아시겠죠?


 물론 이런 경우가 항상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 예방접종이나 신체검사 같은, 몇 주 전에 미리 예약하고 진료를 볼 수 있는 경우에는 현지 의료진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던 적도 많아요. 친절하고, 자상하고, 직업적인 소명의식도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살았더라면 겪지 않아도 되었을 일을 겪은 이런 날에는, 이 모든 불행이 다 제가 폴란드에 살고 있어서 생긴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에요. 가뜩이나 아프고 힘들 때에,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로만 빙빙 돌아다니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아프니까 고생이고, 집 나오니까 고생입니다. 지난 2주 동안 왼쪽 손목에 반깁스를 하고 있었는데요, 드디어 보조장치를 뺀 가벼운 손으로 홀가분하게 컴퓨터 타자를 치니 날아갈 것 같네요. 그동안 손을 보호한다고 장문의 글을 쓸 염두도 내지 못하고, 음성인식 기능을 활용해서 카카오톡 같은 짧은 글만 쓰며 살았어요.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남기며, 그동안 있었던 힘든 일을 툴툴 털어놓으니 그나마 마음이 좀 가라앉네요. 그렇지만 한국에 가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제발 마켓컬리와 쿠팡과 배달의 민족이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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