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정현 May 30. 2024

학교에서 만난 조금 특별한 친구들


 지난주, 아이들이 다니는 국제학교에서 막내의 어셈블리(Assembly) 행사가 있었습니다. 어셈블리는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학예발표회'와 비슷한 느낌인데, 자신이 배웠던 내용 중에 관심 있는 주제로 발표를 준비해서 학생들과 학부모들, 선생님들 앞에서 발표하는 행사예요. 한 줄짜리 대사를 말하는 아이도 있는가 하면, 엄청나게 긴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아이도 있고, 간단히 그림만 보여주거나 평소 좋아하던 노래를 부르는 아이도 있습니다. 


 학년 별로 어셈블리를 나눠서 준비하기도 하고, 초등생 전체가 함께 하기도 하고, 야외수업, 예술수업, 어학수업 등등 주제별로 나눠 열리기도 하는데요, 분기 별로 한 번씩 있는 이 어셈블리의 의의는 무엇보다도 모두가 다 함께 참여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뛰어나거나 발표할만한 꺼리(?)가 있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모두가 강당 무대에서 마이크를 쥐고 발표를 합니다. 


 지난주 있었던 막내의 어셈블리는 올해의 마지막 어셈블리였는데, 마지막이니 더 특별해서 그랬을까요. 평소 동생에게 그다지 큰 관심이 없어 보였던 둘째가 웬일로(!) 동생의 어셈블리를 보러 가고 싶어 했습니다. 엄연히 이야기하자면 어셈블리는 학생의 엄마, 아빠, 누나, 할머니 등 가족들이 모두 관객으로 참여할 수 있는 가족이벤트이기도 하니, 가족 구성원으로서 형제들의 어셈블리를 보기 위해 수업을 빠지고 참석하는 친구들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자기도 한 번쯤은 그렇게 동생의 어셈블리에 가보고 싶다는 거예요. 아, 쓰고 보니 혹시 공식적인 수업 땡땡이를 원했던 걸까요...?


 마지막 어셈블리인 만큼 함께 가는 것도 의미 있을 듯하여 둘째의 담임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1학년 어셈블리에 같이 갔습니다. 수업 한 시간보다 훨씬 의미 있고 기억에 남는 시간이 될 거라며 담임 선생님은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였어요. 생각해 보니 폴란드에 온 첫 해, 아직 유치원에 다니지 않았던 어린 둘째를 내 무릎에 앉히고 같이 큰 아이의 어셈블리를 보러 가곤 했었는데 오랜만에 이렇게 둘이 관객석에 앉아있으니 새삼 옛날 기억이 났습니다. 덕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관객석에서 둘째와 오랜 추억을 함께 나눴지요. 


 그런데 이날 어셈블리에서 저의 시선을 끄는 아이가 한 명 있었습니다. 막내와 같은 학년 학생 중에 눈에 띄는 커다란 헤드폰을 쓰고 무대에 오른 아이가 있었거든요. 몸만 무대라는 공간 위에 있을 뿐, 마음과 시선은 다른 곳에 향해 있던 아이. 다른 1학년 친구들은 무대 뒤편에서 일렬로 가지런히 앉아있었는데, 그 아이는 대열에서 살짝 벗어나 보조 선생님 옆에 살짝 삐뚜룸하니 앉아있었어요. 대열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아이. 그리고 스페셜 케어 선생님과 함께 하는 아이. 한 눈에도 장애가 있겠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왠지 그 아이에게 자꾸 마음과 시선이 가는 걸 멈출 수 없었는데요, 그 아이에게 자꾸 눈길이 가는 건 저뿐만이 아니었나 봐요. 옆자리에 있던 둘째가 물었습니다. "엄마. 쟤는 왜 헤드폰을 쓰고 무대에 오른 거야?" 


 이런 순간에 아이에게 자세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전문지식이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인 것 같아요. 저는 아이에게 이렇게 설명해 줬어요. 엄마도 저 친구를 오늘 처음 봐서, 100퍼센트 확신할 수는 없지만 - 아마도 저 아이는 남들보다 감각에 예민할 거야. 세상에는 그런 특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 소리를 듣는 게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상상해 봐. 정말 괴롭겠지? 그래서 우리에게는 일상적으로 들리는 소음이 저 아이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일 수 있어서, 너무 많이 힘들어하지 말고 조금만 힘들어하라고 도와주는 거야. 저런 보조적인 기구를 사용해서 예민함으로부터 오는 고통을 줄여줄 수 있다면, 소리에 민감한 아이에게 자극을 덜어줄 수 있다면 좋겠지? 저 아이의 헤드폰은 다리가 부러진 사람의 목발이나, 눈이 나쁜 사람의 안경이랑 비슷한 거야.



  그런 대화를 나누던 중에, 헤드폰을 쓴 그 아이의 차례가 왔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어셈블리의 의의는 무엇보다도 모두가 다 함께 참여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장애가 있든 없든. 그러나 참여를 강요하지는 않더라고요. 그 아이의 손에 마이크가 쥐어졌는데, 아이가 무대 앞으로 나가길 거부하자 선생님은 미리 준비했었던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가져와 대신 상영했어요. 아이가 더 예민해질 수 있는 강당 무대보다는 자신이 가장 안정감을 느끼는 교실의 한 구석에서, 모르는 낯선 관객들이 아니라 매일 만나는 보조 선생님과 단둘이 마주 앉아, 일상적인 대화의 형식을 빌려 조곤조곤 말하는 목소리가 녹화된 영상에서 흘러나왔습니다. 발표 기회에서 소외시키지 않고 마이크를 건네며 기회를 주되, 거부하는 아이에게 현장에서 발표할 것을 강요하지 않고 대안을 마련해 주는 것. 저는 이런 학교 측의 섬세한 배려를 보고 살짝 감동받았어요. 


 어셈블리를 보자 문득 생각나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그것은 2년 전 큰아이의 졸업 발표회 때 만났던 아이들이었습니다. IB 초등과정을 하는 아이들의 국제학교에는 초등 졸업발표회가 있는데요, PYP Exhibition이라고 불리는 이 행사는 IB 과정의 꽃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IB 커리큘럼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행사 중 하나입니다. 졸업 학기가 시작할 즈음에 학생 개개인은 담임 선생님과 상의하여 본인이 관심 있는 주제를 선정하고, 수개월간 해당 주제에 대해 깊이 탐구하는 시간을 가져요. 그리고 초등 졸업을 앞두고 그동안 자신이 탐구했던 주제, 혹은 창작 작업이나 연구 결과물을 전교생과 학부모 앞에서 발표하는 행사인데요, 2년 전 큰아이의 PYP Exhibition 때 80여 명의 졸업생들을 대표해서 첫 발표의 스타트를 끊었던 두 명의 학생들이 있었어요. 한 학생은 ADHD, 또 다른 학생은 학습장애를 가진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들의 발표 주제는 '내가 가진 장애의 힘(The Power of ADHD/Dyslexia) '였습니다. 전교생과 수많은 학부모들이 모인,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자신의 장애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납니다. 자신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그리고 내 장애 덕분에(!) 경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억과 배움에 대해 아이들은 당당하게 이야기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내 장애가 가진 힘, 나만의 장점에 대해 또랑또랑하게 이야기하는데... 우와, 딸아이 졸업발표회를 보러 갔다가 저는 제 딸이 아니라 그 아이들에게 홀딱 반할 뻔했어요. 울컥, 하는 감정이 들었던 건 저뿐만이 아니었는지 두 학생의 발표가 끝난 이후엔 학부모들의 기립 박수를 들을 수 있었지요.


 문득, 오늘 어셈블리에서 만난 헤드폰을 쓴 친구를 졸업발표회에서 만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제 이 학교를 떠나니까 졸업 학년의 그 아이를 만날 수는 없겠지만 - 한 가지 분명한 건 몇 년 후에는 그 친구도 분명 한 뼘 성장해 있을 거라는 거예요. 앞서 이야기한 졸업 발표회에서 만난 5학년 친구들을 만약 1학년 어셈블리에서 봤었다면, 저는 지금처럼 보조 교사 선생님이 옆에 붙어 다른 아이들의 대열에서 살짝 이탈한 아이를 만났을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면 그 아이들도 과거에는 수많은 관객 앞에서 마이크를 드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며 거부했을 수도 있고요. 그러나 그날 졸업발표회에서 만난 두 명의 학생은 수백 명의 관객 앞에서 자신이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고 이 장애의 특성이 무엇인지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해 있었습니다. 각자가 가진 장애의 특성과 한계 때문에 똑같은 모습을 기대하긴 어려울지라도, 각자의 방식으로, 나름의 속도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겠죠. 그 모습을 직접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많이 아쉽더라고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나와 다른, 조금은 특별한 아이들을 계속해서 만나며 각자의 다름을 존중하는 모습을 자주 경험할 수 있길 바랐는데, 그럴 수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막내와 둘째와 함께 오늘 만난 '헤드폰을 쓴 친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학교 선생님도 안경의 비유를 들어 그 친구가 헤드폰을 쓰는 것을 용인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셨다고 하더라고요. 생각보다 막내가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마음이 한결 따뜻해졌습니다. 국제학교에서 학생들의 인성 교육에 있어서 최우선적으로 내세우는 가치가 바로 다양성(diversity)인데요, 국적의 다양성, 문화의 다양성을 넘어 개개인의 다양성을 적극 존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역시 폴란드를 떠난다고 생각할 때 가장 아쉬운 것 중 하나는 아이들 학교입니다. 지난 6년 동안 백 퍼센트 만족하며 아이들을 보낸 건 아니었지만... 역시 제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인류애가 이 학교에는 있는 것 같아요. 그런 학교에 아이들을 보낼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고, 아마 오랫동안 이 학교를 그리워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전 07화 이 도시에서 보내는 마지막 한 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