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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Aug 21. 2024

귀국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남깁니다. 거의 석 달 만이네요. 지난 5월까지만 하더라도 폴란드에서의 마지막 한 달을 마무리하며 오랜 해외생활을 매듭짓는 감상을 적어보겠다고 결심하였으나... 웬걸요. 호기로운 결심은 뒤로 한 채 아주 작은 틈새 시간도 내기 힘든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즐겨보던 웹툰도 연재분이 몇 주 치나 줄줄이 밀려버리고 확인하지 못한 구독 이메일도 켜켜이 쌓여버렸네요. 바쁘고 정신없던 여름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렸고 오늘 드디어! 한국에 온 뒤로 처음으로 아이들 셋 다 등교했습니다. 개학 만세!  


 한국에 온 지는 오늘로 딱 두 달 째인데요,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두 달 동안 먼바다에 떠다니던 이삿짐이 그저께 부산항에 입항하였다는 기쁜 소식을 접했습니다. 부산항 입항이라니, 너무 반갑네요. 폴란드에 사는 동안에는 화물 선박이 들어오는 가장 가까운 항구가 옆나라 독일의 '함부르크항'인 경우가 많았어서, 이삿짐이 입항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어도 아직도 제 물건들이 아득히 먼 나라에 있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에 비하면 서울과 부산의 거리는 가깝게만 느껴집니다.


 아마 다음 주면 손때 묻은 이삿짐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삿날을 기다리는 마음은 설렘 반, 두려움 반입니다. 너무 반가운데 반갑지 않은 느낌 혹시 아시나요? 저는 이미 지난 두 달 동안 짐 없이 사는 '반강제 미니멀라이프'에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혹은 '스멀스멀 짐이 늘어나는 라이프'라고 불러도 될 것 같아요. 주방 살림이나 아이들 학용품, 혹은 책이나 장난감 등이 부지불식간에 스멀스멀 늘어나더니 집안 수납공간이 어느새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여기에 새로운 이삿짐이 오게 되면, 당분간은 박스를 켜켜이 쌓아둔 채 생활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저는 집에 홀로 남아 부지런히 박스를 뜯는 그런 일상이 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네요. 솔직히 너무 부담스러워서 도망가고 싶은 미래입니다. 저는 박스를 뜯으며 '뭘 그리도 많이 샀느냐 인간아!'를 끝없이 외치게 될 것 같습니다. 과거의 저에게, 그리고 함께 사는 동거인들에게.


반가운데 반갑지 않은.


 지난 두 달 동안 여러 가지 일이 있었는데요, 하나씩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볼게요. 귀국하자마자 정신없이 바빴던 이유는 사실 초등학생 아이들의 전입과 전학 수속을 서둘렀기 때문입니다. 6월 중순에 아이들 국제학교가 방학하자마자 저는 일주일 이내에 모든 서류 작업을 마쳤어요. 그 덕분에 3학년 둘째와 1학년 막내는 7월 한 달 동안 한국에서 약 3주 간의 학교생활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중학생 첫째는 배정학교 기말고사 기간과 전학 시기가 겹쳐 1학기 등교가 불가했지만요. 6년 동안이나 해외에 살던 중학생 아이의 전학 서류 두께가 정말 어마무시했는데,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글을 적어볼게요. 이전 국제학교에서부터 재학증명서와 성적표 등 필요한 제반 서류를 발급받고 공증 과정을 거쳐 한국 교육청과 배정 학교에 모든 서류를 완비해서 내는 게 꽤 까다로운 작업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저도 배우는 게 많았습니다.  


 이미 폴란드에서 한 학기 앞서 해당 학년을 수료했으니 사실 조금 여유롭게 2학기부터 학교 생활을 시작했어도 되는 거였는데요, 저는 기왕 한국학교에서 문화 충격을 경험할 거면 매도 먼저 맞는 게 낫지 않겠냐는 심정으로 1학기 후반부에 아이들을 전학시켰어요. 새로운 학교 생활이 두렵고 부담되었는지 사실 아이들은 귀국하자마자 바로 학교에 등교한다는 걸 주저했습니다. 그런데 초등은 의무교육이야! 하면서 약간 제가 몰아붙인 감도 없잖아 있어요. 만 1세와 만 3세 때 폴란드로 이사했던 저희 아이들은 한국에서 살았던 기억이 전혀 없는데요, 그런 아이들에게 학교 생활이 어렵고 이상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머지않아 찾아올 것 같았거든요. 그런 당혹감이 본격화될 때 즈음에 완충제인 여름방학을 맞이하면서 한 텀 쉬어가면 낫지 않을까? 하는 게 저의 계산이었습니다.

 

 결론은... 그렇게 하길 백 번 잘했다 싶어요. 2학기에 새롭게 학교 생활을 시작했다면 개학 첫날의 어수선함에 겹쳐 아직 어린 초등 저학년 전학생의 하루가 상당히 고되었을 것 같은데, 미리 학기 중간에 전학을 해둔 덕분에 오롯이 전학생으로서의 관심과 케어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하루라도 아이들이 학교에 더 갈 수 있었던 건 저에게도 큰 행운이었고요.  


 세 아이 모두 등교한 첫날, 이제부터 아이들은 아이들의 일상을, 저는 저의 일상을 부지런히 보낼 것을 결심하며 두서없이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다시 부지런히 쓰는 삶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면서요. '꾸준히'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다시 결심하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고, 이번 여름 바르샤바에서 서울로 삶의 터전을 옮겨오며 있었던 여러 일들을 기억을 더듬어 기록해 봐야겠어요. 시내 호텔에서 보냈던 마지막 주, 아이들의 국제학교 마지막 주간, 6년 동안 살았던 집과의 이별, 국제 이사의 지난한 과정과 한국에서 다시 적응하기 위해 애썼던 나날들. 그런 글을 몇 편 더 쓰고 나면 '바르샤바에서 쓰는 일기'는 이제 마무리해야겠네요. 저는 더 이상 바르샤바에 살고 있지 않으니까요.


 서울로 다시 돌아오고 나니, 내가 폴란드에 살았던 적이 있기는 한가? 싶을 때가 있어요. 아주 긴 꿈을 꾸었거나 긴 여행을 하고 온 것만 같습니다. 그리운 고향, 살던 집, 익숙한 모국어, 낯이 익은 이웃들. 그런 정겹고 익숙한 것들에 둘러싸여 폴란드에서 지냈던 날들은 살짝 희미해져가고 있네요. 이 모든 것들이 기억 뒤편으로 사라지기 전에 기록해야겠죠. "귀국했습니다." 하는 인사가 더 이상 최근의 인사가 아니게 될 날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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