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바르샤바에서 쓰는 일기>에 한참 동안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글을 써야 한다는 부채감은 늘 마음 한구석에 있었지만, 그 마음을 무시하고 게으른 글쓴이로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글 바깥의 세상이 너무나도 정신없이 굴러갔기 때문이에요. 주간 연재약속을 지키지 못해 송구스럽네요. 이 연재 매거진뿐만 아니라 사실 브런치 웹페이지 자체에 한참 동안이나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구독자들은 꾸준히 글을 쓰는 작가님에게 더 깊은 친밀감을 느낀다고 해요. 작가님의 소식을 기다리는 구독자들에게 새 글 알림을 보내주시겠어요?"라는 브런치의 원고독촉장(!)을 받아 든 것도 거의 한 달 전의 일이네요. 브런치의 원고독촉장을 살포시 무시하고, 저는 지난 폴란드 생활을 하나씩 정리하는 데에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있습니다.
<바르샤바에서 쓰는 일기>라는 제목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기간도 이제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네요. 저는 5년 8개월 동안의 바르샤바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비스와 강의 풍경을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바이바이, 바르샤바.
남편의 해외 발령으로 인해 바르샤바에서 살게 되었으니, 이 해외살이에는 언제가 끝이 있다는 것도, 그리고 이미 살아왔던 시간이 있으니 그 끝이 멀지 않았다는 것도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그 예감이 점점 현실로 다가올수록 어찌나 마음이 이상하던지요. 정말 한국으로 이사 가는 것이 확정되고 나자 마음이 더욱더 이상해지기 시작했는데, 그 이상한 마음의 정체를 밝힐 틈도 없이 정신없이 해야 할 일이 쏟아졌습니다. 한국으로 보낼 물건과 남겨둘 물건을 정리해서 이삿짐 견적을 받고, 아이들 전학 갈 학교를 알아보고 서류 준비를 하고, 제가 폴란드에서 하고 있던 여러 일들의 후임자를 구하고 인수인계를 하는 등... 현실의 과제가 우수수 쏟아지더라고요.
사실은오랫동안 살던, 정들었던 이 도시와 작별하는 소회를 느긋하게 정리해보고 싶었어요. 지난 5년 8개월 동안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보낸 시간은 제게큰 의미를 가진 소중한 삶의 챕터 중 하나였으니까요. 그러나 그런 마음의 여유는 사치스러운 바람이었고 저는 글 한 줄 쓸 시간도 없이 밤마다 녹초가 되어 쓰러져 자기 일쑤였습니다. 5년 동안 뭐 그리 사들인 물건이 많고 정리해야 할 잔짐이 많던지. 6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이미 100개쯤은 버린 것 같은데 앞으로 100개는 더 버려야 겨우 해외로 이삿짐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쉽게도 저는 여전히 할 일의 쓰나미, 폭풍우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만... 이대로 현실의 과제에 묻혀 '지금, 오늘에만 느낄 수 있는 이 감정'을 흘려보낼 수 없다는 마음에 오랜만에 키보드 앞에 앉았어요. 그런데 막상 빈 모니터 화면을 앞에 두니 어떤 글을 여기에 남겨야 할지 모르겠네요.
처음 폴란드행 비행기를 탔을 때의 그 낯설고 막막했던 마음을 떠올려봅니다. 인천공항에서 아직 기저귀도 떼지 않았던 두 아이와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큰 애를 데리고 비행기를 탈 때에, 저는 약간 도살장에 끌려가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이 동유럽의 낯선 도시에서, 나의 30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불안감, 초조함, 그리고 억울함. 바르샤바에 도착한 날은 해가 급격히 짧아지는 12월 1일이어서 한낮인데도 초저녁 하늘처럼 어둑어둑하고 회색 구름이 가득했는데, 자동차 창문 밖으로 바로크풍의 고풍스러운 외관이 돋보이는 화려한 건물과 공산주의 시대의 잔재처럼 남아 있는 딱딱한 콘크리트 건물이 한 프레임에 들어와 묘한 풍경을 연출하더군요. 그 부조화스러운 모습이 마치 먼 이국땅에서 헤매고 있는 내 모습과 닮아 보여서 어딘지 서글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너 왜 여기서 이러고 있니. 이게 네가 바라던 삶이니?' 저는 그 낯선 풍경을 보면서 내면의 나에게 질문을 던졌고, 저는 '아니야. 아니었어. 나는 이렇게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엄마로만 사는 삶을 절대로 바라지 않았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 대답은, 그 마음은 제가 이곳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원동력이 되어 주었고, 여기에서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지만 그때는 그걸 몰랐어요.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낯선 이 땅에서 이대로 멈춰버리는 줄만 알고 서글프고 억울한 마음만 들었죠.
이제 딱 한 달 뒤면, 한국행 비행기를 탑니다. 이상하게 마음은 6년 전 그날과 비슷해요. 이미 내 삶의 모든 맥락과 일상이 여기에 있는데, 이걸 다 버리고 다시 훌훌 한국으로 떠난다는 점에서 말이죠. 아무것도 없는 낯선 땅에서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둘씩 찾아 나만의 길을 만들었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찾아보면 내가 걸어갈 수 있는 나의 길, 나의 영역이 있을 거라고 믿고 싶지만...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마주할 때마다 왜 이렇게 불안하고 초조해지는 걸까요. 왜 여기서 영영 삶이 멈춰버릴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걸까요.
지난달에는 큰 아이가 6년 동안 다녔던 학교에서 이번 학년 마지막 학부모상담이 있었는데요, 몇 년 동안 우리 아이를 돌봐주시고 가르쳐주셨던 선생님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며 여름에 전학 갈 예정이라는 소식을 알려 드렸습니다. 감사하게도 큰 아이를 자신의 최애 학생(My Favortie Student)이라며 칭찬해 주시고 아쉬워하던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어디에 가서든 잘할 거야. (I have no doubt she will do great wherever she goes.) 이 말을 듣는데 괜스레 눈물이 핑 돌았어요. 아이에게 건네주신 최고의 칭찬이었기에 감사한 마음도 컸지만, 사실은 선생님이 건네주신 이 말씀이 제가 다른 사람의 육성으로 듣고 싶었던 것 같아요.
마음속의 불안감을 잠재워주는 말. 잘할 거라고, 괜찮을 거라고 다독여주는 말.
어디에 가서든, 잘할 거야.
그 뒤로 마음속에 불안함이 피어오를 때마다, 선생님의 말씀을 주문처럼 외웁니다.
I have no doubt she will do great wherever she goes.
계속해서 피어오르는 마음속의 불안함을 잠재우며, 이제 저에게는 큰 과제가 남았습니다. 남은 한 달의 시간을 바르샤바에서 어떻게 보내야 할까. 어떻게 남은 한 달을 보내야 후회가 남지 않을까. 사실 아직도 걸어보지 못한 바르샤바 골목 구석구석을 더 여행하고 싶었고, 용기 있게 폴란드어도 더 연습하고 싶었고, 폴란드의 동네 서점이나 예쁜 카페도 더 발굴해보고 싶었어요. 이곳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과 충분한 작별의 시간도 가지고 싶었고, 이제는 안녕을 고해야 할 파란 하늘도 눈에 더 많이 담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 시점에서 글쟁이의 본분으로 돌아와 <바르샤바에서 쓰는 일기>를 더 많이 남기고 싶다는 욕심도 생기네요. 이제 이곳을 떠나 서울 하늘 아래에서 글을 쓰면 더 이상 바르샤바에서 쓰는 일기는 아니게 될 테니까요. 이곳에서만 쓸 수 있는 글은 더 이상 쓸 수 없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남은 한 달 동안, 조금 더 부지런하게 써보려고 합니다. 완성도는 조금 떨어지더라도, 매일매일 스쳐 지나가는 마음의 한 줄을 가급적 놓치지 않고 이 공간에 남겨보려고 해요.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는 근육을 기르는 게 중요하답니다. 오늘 떠오른 문장을 기록하고 한 편의 글로 완성해 보세요."라는 브런치의 원고독촉장처럼요. 앞으로도 이삿짐을 싸다가 몸도 마음도 지쳐 쓰러져 자는 날은 여전히 있겠지만, 오늘의 마음은 오늘만 남길 수 있는 거니까, 불안한 마음, 아쉬운 마음, 그리고 후회하고 싶지 않은 마음 모두 다 모아 이 공간에 남겨두면- 그제야 <바르샤바에서 쓰는 일기>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면, 정말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겠죠? 새로운 챕터에 저는 또 어떤 이야기들을 쓰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