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말할 일 없는 말

Jestem Koreanka. 저는 한국 사람입니다.

by 주정현


다른 학생들이 내가 어디에서 왔냐고 물으면 나는 <아이다호에서 왔어요>하고 대답했다. 그 후로도 수없이 그 말을 반복했지만 한 번도 그 문장이 입에서 편하게 흘러나오질 않았다. 우리는 어느 장소에 진정으로 속해 있을 때, 그곳의 흙에 뿌리를 내린 채 성장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곳에서 왔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아이다호에서 왔어요>라는 말은 거기를 떠나기 전에는 한 번도 뱉어 본 적이 없는 문장이었다.
타라 웨스트오버, <배움의 발견> 중에서.


Nie Jestem Japonka. Jestem Koreanka. (저는 일본 사람이 아닙니다. 한국사람입니다.) 내가 폴란드어 공부를 처음 시작했던 교재인 <The 바른 폴란드어 Step 1>의 첫 단원에 나오는 문장이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문장은 한국에서 살고 있다면 한 번도 말할 일이 없는 문장이다. 해외에서는 외국어 교재 첫 단원에 나올 정도로 가장 빈번하게 써먹을, 필수적인 문장 중 하나이다. 문장을 배워둔 보람이 있게, 폴란드에 와서 몇 번 실전에서 써먹었다.


처음으로 저 문장이 입 밖으로 나온 건 공원 놀이터에서였다. 4살쯤 되어 보이는 금발의 어린 여자아이가 우리 아이들과 함께 모래놀이 장난감을 공유하면서, 우리 모습이 낯선지 자꾸 흘끗 대며 자기 엄마랑 뭐라고 중얼중얼거렸다. 가만히 엿들어보니 우리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추측하고 있는 중이었다. 중국인이다, 아니다 일본인이다, 하며 자기네들끼리 의미 없는 논쟁을 하고 있길래 슬쩍 한국사람이야. 하고 이야기해주었다. 처음으로 폴란드에서 폴란드 사람들에게 폴란드어로 말을 걸었던, 오지랖 넘치던 순간이었다. 아하! 하고 그 집 엄마가 화사하게 웃으며 눈을 맞춰주지 않았다면 조금 부끄럽고 민망할 뻔했다. 아직 이곳에서 살게 된지 얼마 안돼서 내 입에서 나온 폴란드어도 어색하기도 하고 혹시나 여기서 대화가 더 진전되면 어쩌나 하고 살짝 불안하기도 한 그런 시절이었다.


두 번째로 우리의 국적을 물어온 사람들은 집 앞에서 수도관 공사를 하던 공사인부 아저씨들이었다. 대문 앞을 막아서고 하루 종일 공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 등 하원 길에, 남편 출퇴근길에, 집을 나설 일이 있을 때마다 아저씨들에게 차가 지나갈 수 있을 만큼 공사현장을 정리해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우리 옆집, 뒷집, 앞집 다 폴란드 사람들이 아니긴 한데 외형상 '나 외국인이오.'하고 얼굴에 써 붙어 있는 사람들은 우리 가족밖에 없었다. 공사가 끝날 무렵 아저씨들이 물어왔다. 우리끼리 너희 가족 국적을 걸고 내기를 했는데... 어느 나라 사람이야? 하고. 한국사람이라고 가르쳐주자 대표로 물어온 아저씨가 안타깝다는 듯이 웃었다. 아우, 나는 일본 사람에 걸었는데!


실제로 한국사람들끼리 거리에서 스치면 서로 알아본다. 내가 사는 곳은 바르샤바 남동쪽에 위치한 빌라누프로 나는 이곳을 서울의 북촌으로 많이 비유한다. 우리 집에서 반경 1킬로미터 내에 대사관만 열한 곳이고 외국인들도 많이 사는 동네기 때문이다. 서울로 치자면 경복궁에 비유할만한 빌라누프 궁전이 있는 동네이기도 하다. 코로나가 있기 전까지 우리 동네는 한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장소라서 막 한국에서 따끈따끈하게 입국한, 그래서 온몸에 한국 사람 특유의 한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한겨울에는 무릎까지 오는 까만 롱 패딩을 입은 사람들, 여름에는 햇빛을 피해 양산을 펼쳐 든 사람들. 그것 말고도 뭔가 미묘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한국적인 분위기가 있었는데, 아이들 눈에도 그게 보이는지 그런 사람을 발견할 때마다 손가락질을 하며 "엄마, 저 사람 한국사람 같아!"하고 한국말로 크게 외쳤다. 아이들의 손가락질이 너무 노골적이라 씩 웃으며 말을 걸어오시는 분들도 있었다. 3살, 5살 어린아이들을 커다란 쌍둥이 유모차에 태우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혼자 여행 온 용감한 엄마'가 궁금하셨던 것 같다. 여행객이 아니라 여기 산다고 말씀드리면 그제야 아, 하고 납득하셨다. 현지인이 왜 이런 관광지를...? 하고 의아하게 물어보시면, 바로 뒷골목이 저희 집이라서요.라고 말씀드리기도 했었다. 집 앞 빌라누프 궁전에서는 현지인들도 우리를 관광객으로 여기며 호기심에 국적을 물어오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코로나 19로 국경이 봉쇄되었을 때는 우리를 의아하게 여기며 흘긋대는 사람들도 많았다. 지금 국경이 닫혔을 텐데 어떻게 외국인이 여기서 관광을 하고 있지?? 그럴 때는 이마에다가 '제가 외국인은 맞는데요, 저 여기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써붙이고 싶었다.




사실 나에게도 '한국사람입니다'라는 분위기가 어디선가 폴폴 새어 나오고 있을 것이다. 어느 날은 집 앞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나서는데 어떤 폴란드인 아저씨가 나를 붙잡고 뭐라 뭐라 말을 걸어왔다. 날이 어둑해질 무렵이라서, 그리고 그 아저씨가 하는 말이 폴란드어도 영어도 아니어서(이런 경우 사실 집시거나 외국인 노동자인 경우가 많아서) 순간 잔뜩 경계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굉장히 어설픈 한국어로 "하안쿡살람이에요?"하고 물어오고 있었다. 길을 걸어가다가 갑자기 내 얼굴을 보고 반가워서 덥석 붙잡고 말을 걸어온 것이다. 한국에서 6년 살았다던 그 아저씨의 눈에는 아마 나의 어떤 '지극히 한국적인' 모습이 있었을 것이다. 현지인은 모르는, 그러나 아는 사람은 아는.


집 앞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 경우엔 아이들과 종알대며 아이스크림 맛을 고르는 우리의 한국어가 귀에 들려온 것이지만. 앞서 주문하던 아주머니가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해 오길래 처음에는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인가 보다 했는데, 한참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맛있어요?"라고 물어온다. 알고 보니 반포 서래마을에서 8년을 살았단다. 함께 데려온 그 집 아이들은 모두 한국에서 태어나고 한국에서 자란 아이들이었다. 폴란드 아주머니와 함께 이태원 맛집의 추억을 나누다 보니 뭔가 이상하고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다 보면 이런 느낌이 든다. 나는 정말 물에 뜬 기름 같다고.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여행객일 뿐인데 그 여행이 참 길어지고 있다고. 어딜 가도 이방인이고 외국인이다. 외형적으로 너무나 다른 우리의 모습을 흘끗거리는 시선은 아무리 반복해서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예전에는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사는 미국에서 살았었기에, 특히 한국인이 버글대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살았었기 때문에 이런 유별난 시선을 경험해본 적은 없다. 같은 외국 땅이라도 그런 점에선 엄연히 달랐다. 특히 폴란드 아이들의 눈빛은 더 순진하고 거침이 없어서, 빌라누프궁전에 수학여행이라도 온 초등학생들이 버글거릴 때면 그들도 우리 아이들이 했던 손가락질을 똑같이 반복하며 우리를 쳐다본다. 그럴 때는 살짝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 든다. 가끔은 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한국 땅으로 돌아가 그냥 그곳에 있는 게 너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다.


작년 겨울에 아이들 방학을 맞이해 3주 동안 한국에 가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올림픽 대로를 따라 친정집으로 가는데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아주 긴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왼쪽에도 오른쪽에도 차선이 있는 넓디넓은 6차선 도로가 진짜 생경했다. 12월인데도, 오후 시간인데도, 쨍한 햇살이 차창 안으로 스며들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살았던 내 고향땅을 이렇게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내가 제일 신기했다.


어차피 때가 되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거란 걸 아는 주재원 생활인데도 이렇다면, 계속 해외에서 살기로 하고 아예 삶의 터전을 타국으로 옮긴 사람들은 어떤 느낌일까. '어디에서 왔어요?'라는 질문에 '한국에서 왔어요.'라고 답하다가, 한국에서 산 시간보다 타국에서 산 시간이 더 길어지는 시기가 오면 그들은 어떤 마음이 들까. 지금의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아득한 그 마음. 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니 상대적으로 짧은 인생 경험 때문에, 10살 첫째는 내년에, 4살 막내는 한 달 뒤에, 그리고 6살 둘째는 이미(!) 한국에서보다 타국에서 산 시간이 더 길어지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도 나처럼 한국땅을 자신의 뿌리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유년시절의 추억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 이곳 폴란드를 그렇게 애틋하게 느끼게 될까. 아직은 알 수 없는, 먼 미래의 마음을 한 번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