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면 해가 지는 폴란드의 겨울

by 주정현

위도 52도의 겨울이란 '영하 20도'같은 냉혹하고 차가운 온도계의 숫자로 표현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작년 겨울을 생각해보면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간 날은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눈도 별로 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보다 포근했던 겨울. 보통 영상 3도에서 영하 2도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때로는 1월에도 영상 9도 전후의 비교적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기도 했다. 아무래도 원래 폴란드의 겨울이 이랬던 건 아니고 지구온난화 때문인 것 같지만, '추위가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이런 말을 할 일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복병은 따로 있었다.

바로 태양을 만날 수 없다는 것.


폴란드의 겨울 날씨가 온도상으로는 한국보다 추운 건 아니지만 왠지 뼛속까지 시리고 스산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바로 햇빛이 없어서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그냥 하루 종일 뿌옇고 흐린 하늘이 계속된다. 해가 떠도 떴다는 느낌이 없고, 눈 씻고 찾아봐도 파란 하늘은 찾아보기 어렵다. 마치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의 서울 하늘 같다.

20181203_101053.jpg 이건 해가 뜬 것도 아니고 안 뜬 것도 아니여

내가 폴란드에 처음 입국한 날짜는 12월 1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1년 중에 가장 힘든 계절에 생활을 시작했다. 어쩌자고 그때 왔을까. 회사에서 가라고 하니 갔지만. 가뜩이나 아이들은 시차적응이 안 돼서 매일 새벽 3시에 깨고, 마치 회사에서 일주일 연속 야근한 것 같은 피곤함이 온몸을 짓누르는데, 하늘마저 이 모양이니 말 그대로 미칠 것 같았다. 쨍한 햇볕과 새파란 하늘이 너무나 그리웠다. 왜 유럽 사람들이 여름만 되면 발가벗고 공원 잔디에 가서 드러눕는지 알 것 같았다. 한겨울에도 선크림은 필수 기초화장으로 바르고 나가는 한국사람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날씨였다. 더군다나 이전의 해외 살이 경험이 텍사스와 캘리포니아였던 나는 정말 상상도 못 할 극한 날씨였다. 제발, 제발 제게 햇볕을 주세요...


이 우울한 날씨를 SNS에 공유하니 북유럽으로 행정연수를 떠난 적이 있는 학교 선배가 '인공조명'을 사서 써보라고 조언해주었다. 코펜하겐에서 살 적에 필립스에서 나오는 인공조명을 사서 이탈리아 친구(!)와 함께 사이좋게 잘 썼다는 후기를 공유해주면서. 그래서 내가 폴란드에서 내돈내산 첫 번째 택배는 바로 인공조명이 되었다. 필립스 꺼는 너무 비쌌고, 독일 아마존 사이트에서 적당히 가격도 괜찮고 후기도 괜찮은 녀석을 골라다가 구매했는데 무려 1만 룩스의 LED 조명이었다. 사실 정말로 효과가 있었는지는 너무 주관적이라 모르겠고, 그냥 그때는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그래도 기왕 산 거 잘 활용해보자고, 매년 겨울이면 잊지 않고 창고에서 꺼내오고는 있다. 크리스마스트리와 함께 겨울이 왔음을 알리는 집안 인테리어 소품이 되었달까....

이제는 거의 애들 장난감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이렇게 희뿌연 낮마저 너무 짧다는 것이다. 일 년 중 해가 가장 짧은 동짓날에는 해가 3시면 진다. 그냥 어둑어둑해지는 게 아니고 말 그대로 한밤중처럼 깜깜해진다. 반대로 여름날 하지에는 밤 10시까지 해가 지지 않고 아침처럼 훤한데, 이 극과 극의 일조량의 변화를 요즘 같은 가을이면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마치 일몰시간이 앞당겨지려고 매일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느낌이랄까. 이 성급하게 짧아지는 일몰시간은 서머타임이 해제되는 11월 1일, 5시에 지던 해가 4시에 지는, 하루 만에 한 시간이라는 극한 변화를 던져주며 햇빛과 함께 우리의 마음마저 우울의 늪으로 주욱 끌어당긴다. 계절성 우울증에 걸리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조심, 또 조심해야 하는 시기다.


작년 연말에는 초등학교 3학년인 큰 애를 데리러 학교에 갔다가 기이한 풍경을 목격했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오후 3시 반에 모든 수업이 끝나는데, 밤하늘은 별이 보일 정도로 깜깜하고 반대로 학교의 조명은 지나 칠 정도로 환했다. 모든 복도와 교실에 켜져 있는 형광등. 그리고 교문에서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 어, 이거 어디선가 많이 보던 풍경인데... 하고 기억을 더듬던 나는 무려 20년 전 추억에서 똑같은 장면을 찾아냈다. 아 이거, 야자 끝나고 나오던 장면이랑 똑같다. 고등학교 때 밤 10시에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끝내고 나오면 학교 앞 광경이 딱 이랬다. 딱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내 기억 속에서 쏟아져 나오던 학생들은 공부에 찌들어 있던 고3 수험생들이었고, 지금 내 눈앞에는 딱 키가 절반만 한 초등학생 꼬맹이들이라는 것. 너무 귀엽고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과 한국사람만 공감할 수 있는 야간 자율학습의 추억이 겹쳐 보여 기분이 묘했다. 그저 이 신기한 겨울 풍경이 너무 웃겨서 헛웃음만 나왔다.


올해로 폴란드에서 맞는 세 번째 겨울이다. 여전히 일몰시간 씨께서는 마치 달리기 경주에 출전한 선수처럼 시간을 앞당기시겠다고 매일 5분씩 기록을 단축시키시는 중이다. 작년 가을에는 '겨울이 오고 있다'는 두려움에 짓눌려 너무 우울하기만 했었는데, 그래도 올해 가을은 두 번 해봤다고 조금은 의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우울하면 어쩔 수 없고, 또 기다리다 보면 봄이 오고 여름이 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이것도 계속 반복되면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날이 올까, 아니면 그래도 매년 반복되는 기본적인 우울감은 어쩔 수 없게 될까.


폴란드의 겨울을 보내며 긴긴밤을 집에서만 보내다 보면, 한국에서는 전혀 유명하지도 그다지 환영받지도 않은 폴란드 문학이지만 벌써 이 나라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다섯 명이나 배출되었다는 의아한 사실을 이해할 수도 있다. 그만큼 이 혹독한 겨울을 보내본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가 크다. 러시아에 대문호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와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나 역시도 아이들과 집콕 생활을 시작하면서 결국 끊임없이 책을 읽어주고, 읽어주고 또 읽어주게 되는데, 하루 종일 집에서 책만 읽어주다 보니 아이들에게 '버럭'할만한 일이 생겼는데 목이 쉬어서 제대로 된 '엄마 샤우팅'을 시전 하지 못했다. 아이들 입장에선 다행스러웠을, 이런 훈훈한 결말이라니. 올해는 코로나 19라는 변수 때문에 더 우울하려나. 아니면 날이 추워서 어차피 집에만 있어야 하는 현실이라 그냥저냥 이러니 저러니 똑같은 날이라며 더 씩씩하게 이겨낼 수 있으려다. 어쨌든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 것처럼, 그냥 기다리면 어느 날 다시 봄이 올 것이다. '기다림'의 계절이 오고 있다.


겨울의 옛말은 겨슬, '집에 있다'란 말뿌리를 가졌다. 그러니까 겨울은 '집에 있는 ' 시간이다. 담요를 덮고 이야기를 듣는 시간. 밤이 길어 아이들은 착해지고 이야기는 모자란 계절. 예로부터 전해지는 이야기가 자꾸자꾸 바뀌고 보태지는 철. 그런 날들의 이름이다.
김애란, <잊기 좋은 이름>
이전 06화석달 만의 첫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