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아이들

엄마 한국에는 왜 이렇게 산이 많아요?

by 주정현

양평에 있는 친정아버지 별장에 놀러 가는 날이었다. 서울에서 강원도 방향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탔고 하남 지역을 벗어나면서 차창 왼편으로도 오른편으로도 산이 병풍처럼 둘렸다. 산이 빼곡하니 그만큼 터널도 많았다. 터널을 벗어나면 다시 나타나는 것은 산의 능선. 이내 가다 보면 다시 터널. 아이들은 이런 바깥 풍경이 신기하다는 듯 연신 창밖을 두리번거리며 물어본다.


"엄마 산이 왜 이렇게 많아요?"

"한국엔 진짜 산이 많다. 폴란드에는 산이 하나도 없는데."




산을 너무 오랜만에 본 아이들은 산이 신기한지, 차에 타는 내내 "우와아 여기도 산이다!", "우와아 저기도 산이다!", "산, 산, 산이 여기저기에 있어!"하고 감탄한다. 삼 남매가 동시에 여기저기서 감탄하니 감탄사도 세 배로 메아리가 되어 차 안을 가득 채운다. 차창 너머의 산이 신기하다고 외치는 아이들. 이 외침에 되려 내가 신기했다. 이 고속도로에 빼곡한 차들 중에서 아마 이런 감탄사로 가득한 차는 아마 우리밖에 없었을 것이다. 토종(?) 한국 아이들이 보면 이런 우리 아이들의 외침이 오히려 더 특이해 보였을 테지만, 폴란드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산'은 신기한 존재였다.


폴란드 Poland. '폴'은 폴란드 사람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말이라 폴 민족이 사는 땅이라고 해석해도 되지만 원래 '폴'이란 단어의 어원은 '평평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니 폴란드는 말 그대로 '평평한 땅'이라는 뜻이 된다.

평평한 땅, 그러니까 폴란드에는 산이 없다. 체코와 슬로바키아 국경지대인 동남부 지역에는 그래도 산이 조금 있는 편이지만 우리가 사는 바르샤바 인근에는 정말 전혀 산이 없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스키장도 4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야 한다). 폴란드어로 산은 góra(구라)라고 부르는데 지도에서 góra라고 쓰여있는 곳에 가 보면 실제로는 산이 없다. 아니, 적어도 한국인인 내 눈엔 산이 아니다. 야트막한 언덕이거나 혹은 조금 봉긋 솟아오른 숲 정도? 이 정도면 우리 동네 공원에 있던 아주 작은 동산만큼의 사이즈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이지만 폴란드 사람들은 그 공간에 당당히 '산(góra)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러니 오랜만에 한국에 온 아이들의 눈에는 정말 뾰족뾰족한 한국표(?) 산이 신기할 수밖에.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선 청계산, 대모산, 남한산 등등하여 산봉우리가 모두 다섯 개나 보였는데, 산이 그렇게 많이 보이던 창밖의 풍경은 홀라당 까먹고 어느새 아이들의 기억 손엔 폴란드의 풍경이 당연한 기본값이 되었다. 한국에서 살던 30년의 세월을 무시할 수 없어 내겐 아직까지 '한국'이 기본값인데, 말랑말랑하고 유연한 아이들의 머릿속은 나와 다르게 지어지고 있다. 그러니 내겐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들이 아이들에게 신기하게 여겨진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아이들.




베트남에 살던 한 지인은 현지에서 운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엄청난 수의 오토바이와 외국인이 이해하기 힘든 교통문화로 인하여) 항상 운전기사를 대동하고 다녔다고 한다. 아마 다른 한국인 주재원들도 모두 그러하리라. 그런데 운전기사가 있는 삶이란 집 앞 마트를 갈 때도 마트 로비 앞에서 내리고, 쇼핑이 끝나면 로비 앞으로 기사가 데리고 오는 삶이다.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나 학교나 친구네 집에 갈 때도 항상 문 앞에서 내리지 주차장에서 내리진 않는다. 그래서 지인의 아이들에게 '주차장'은 일상 속에 없는 공간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엄마가 주차 공간을 찾겠다며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빙글빙글 도는 일은 그 아이들에게 너무나 신기하고 생경한 경험이었다.


이 이야기를 나누자 어제 만난 미국 엄마는 '지하' 공간에 대한 아이의 컬처쇼크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넉넉한 땅 덕분에 모든 상업시설을 지상에 설립하지 굳이 지하공간을 개발할 일 없는 미국에서 '지하'의 의미란 토네이도가 오거나 여러 재난상황에서 도피해야 할 '피난처'의 의미와 같았다. 그런데 비행기가 내린 인천공항의 넓은 지하주차장에서부터 시작해서 도시를 달리는 지하철, 코엑스와 같은 지하쇼핑몰, 곳곳에 설립된 지하 상업공간은 아이에게 실로 신기한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이 문화충격에 화룡정점이 되었던 공간이 있었으니 그곳은 바로 '롯데월드'. 넓은 지하공간에 설계된 도심형 놀이공원의 풍경은 아이에게 "서울은 정말 지하에 뭐든지 다 있는 지하도시야!" 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언더그라운드 헤븐 서울. 사실 한국에서보다 외국에서 산 기간이 더 오래된 우리 아이들도 비슷한 포인트에서 감탄하는 중이다.


이번 여름방학에 다니고 있는 미술학원 건물에는 지하 3층까지 주차장이 있다. 엘리베이터서 만난 B3이란 숫자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너무 생경하다. 일단 살고 있는 집이 주택이라 엘리베이터가 없는 데다가, 그나마 지하주차장이 있는 가장 큰 쇼핑몰도 지하 1층 주차장이 전부이다. 폴란드 쇼핑몰에서는 엘리베이터에 타면 -1, 0, 1, 이렇게 세 개의 층만 표시되는 단출한 엘리베이터 버튼이 행선지를 물어본다. 그런데 지하 3층에서부터 지상 5층까지 있는, 한국에서는 아주 평범한 동네 아파트 상가 엘리베이터는 무려 버튼이 8개나 있는 것이다. 예전에 우리 살던 아파트에는 버튼이 서른다섯 개나 있었는데? 하고 되받아치면 아이들은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이 있느냐는 듯 입이 떡 벌어지곤 한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우리가 내려야 하는 층이 몇 층인지도 모르고 둘째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반사적으로 앞사람을 따라 내리려고 해서 식겁했었다. 아이는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그저 문이 열리길래 발을 앞으로 내밀었을 뿐이다. 폴란드에서 우리가 탔던 엘리베이터에서는 '타고 내리는' 옵션만 있었을 뿐(1층에서 타면, 2층에서 내린다. 끝), 다른 층에서 내리는 사람을 바라보는 경험은 없었기 때문이다. 5층에서 내려야 하는데 2층 즈음에서 스윽 내리는 아이를 보고 나는 너무 놀라 아이를 붙잡겠다며 냅다 뒷 멱살(?)을 움켜쥐었는데 너 그렇게 그냥 막 내리면 금방 미아되는 거야, 하고 혼내는 나를 같은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들이 오히려 더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이제 곧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 둘째는 누가 봐도 이제 와서 그런 주의를 듣기엔 너무 큰 어린이였으니까.


이것 말고도 횡단보도에선 차가 지나간 다음에 건너야 한다든지(폴란드에선 보행자가 있으면 먼저 차가 멈추기 때문에 한국처럼 횡단보도 앞에서 내가 멈춰있으면 그 차는 사람이 건너가기 전까진 영원히 멈춰있을 것이다...), 옆에 사람이 우리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니 말조심을 해야 한다든지(엄마, 저 아저씨 콧구멍 진짜 커! 이런 말을 그냥 면전에 대고 해선 안된다. 폴란드에선 많이 했....) 여러 가지로 한국 시스템에 맞춰 재교육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값'과 이 사회가 가진 '상식'이 여러 가지로 많이 다르니까.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나고 자란 나는 뼛속까지 한국인이라 이 어긋나는 순간을 아이들이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 나 스스로 알아채기 힘들다는 것이다. 항상 일이 벌어진 다음에 뒷수습을 하기 바쁘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아이들. 산과 주차장과 지하공간과 엘리베이터를 신기하게 생각하는 아이들. 그러나 외형적으로는 아이들의 그 생각과 경험이 드러나지 않기에 더 오해받을 수 있는 지점이 많은 아이들. 몇 년 더 지나서 한국에 오면 아이들이 자란 만큼 사회적 영역은 넓어질 것이고, 혼자서 견뎌야 하는 순간도 많을 것이고, 그만큼 아이들이 부딪히고 힘들어하는 접점들이 늘어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런 경험이 늘어날수록 내게 당연한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자각을 스스로 하게 되는 계기가 될 테고 그것은 이 사회에 함께 살고 있는 외국인이나 장애인이나 다른 소수자들을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자산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이 삐그덕거림이 고맙다. 오히려 조금 더 삐그덕거려도 괜찮을 것 같다. 그리고 좀 더 당당하게 삐그덕거리며 그 생경함을 공유하는 우리끼리 실컷 웃고 즐겨보고 싶기도 하다.


다른 거 이상한 거 아니야. 다른 건 그만큼 신기하고 재미있는 거야. 그래서 이렇게 한국이 즐겁고 재미있고 신기하잖아. 그러니까 우리 폴란드로 돌아가서도 또 즐겁고 재미있고 신나게 '다름'을 즐겨보자. 다른 나라에서 산다는 건 이렇게 다채로운 경험이니까, 충분히 즐기고 행복해하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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