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에 사는 아이들에게서 인종차별적인 말을 들었고, 우리는 산책을 나섰다
오늘 폴란드에 살면서 처음으로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들었다. 칭챙총Chingchangchong.
코로나 때문에 집 밖에 나다니질 않으니 적어도 낯선 사람들에게서 상처받을 만한 말은 들을 일 없다고 생각했는데, 버젓이 내 집 대문 안에서 이런 말을 들을 줄이야.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저녁 여섯시 무렵, 남편은 마당에서 바베큐 고기를 굽고 있었고, 나는 함께 곁들여 먹을 야채절임을 부엌에서 만들고 있었다. 아이들은 마당과 집 안을 오가며 자유롭게 놀고 있었는데 그때 우리집 바로 앞 골목길에서 옆집 아이들(로 추정되는 아이들)이 자전거와 킥보드를 타며 시끌벅적하게 놀고 있었다. 바로 옆옆집에 그리스 사람이 새로 이사왔다고 들은 건 석달 전. 아마도 그집 아이들인듯 했다.
거기도 우리처럼 모국을 떠나 해외를 오가며 사는 가족인건지 초등학생쯤 되어보이는 아이들 셋이 서로 영어와 내가 모르는 어떤 제3의 언어를 섞어가며(아마 그리스어일까) 시끌벅적하니 놀고 있었다. 그집 아이들이 우리집 앞을 서성이며 놀다가 대문 사이로 마당에서 놀고 있는 우리 아이들을 보았다.
"헬로, 칭챙총!"
처음에 나는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아이들이 뭐라고 떠드는 지는 자세히 듣지 못했고 다만 남의 집 앞에서 참 시끄럽게 노는구나, 하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계속해서 우리집 앞을 서성이며 우리 아이들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헤이, 칭챙총! 하이, 칭챙총!"을 수도 없이 외쳐가며 드르륵 드르륵 바퀴를 굴리고 있었다. 10미터 남짓한 거리를 끝도 없이 왕복하며, 계속 우리집 대문 앞을 뱅글뱅글 돌면서. 너무 많이 반복해서 그 아이들이 하는 말이 집 안에 있는 내 귀에도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을 때, 나는 당장 현관문을 박차고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에 있던 큰 애가 나에게 와서 말한다.
"엄마, 쟤네들이... 나 중국사람 아닌데 자꾸 중국사람이라고 놀려."
아니, 지금 우리가 중국사람이건 한국사람이건간에 지금 쟤네들이 저런 말은 하면 안되는거야.
왜 안되냐고, 그게 무슨뜻이냐고 아이가 물었다. '칭챙총'은 일단은 중국 사람을 뜻하는 말이 맞긴 한데, 그들을 굉장히 깔보고 낮춰서 부르는 말이야. 그리고 사실 여기 사람들에게 우리 모습은 중국사람이든, 한국사람이든, 일본사람이든 다 비슷하기 때문에, 우리는 한국 사람이니까 그 놀림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만은 없어. 이건 유럽 사람들이 자신들과 다르게 생긴 아시아인을 보고 놀리는 말이야. 굉장히 예의없는 말이고, 해서는 안되는 인종차별적인 발언인거지.
여기까지 말하고 있는데, 또다시 한 아이가 "헬로, 칭챙총!"하고 소리치며 대문 앞을 지나간다. 이녀석, 잘 걸렸다. 바로 현장검거에 나섰다.
"거기, 너희들. 잠깐 이리 와봐. 너희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한국에서든 폴란드에서든, 해서는 안될 짓을 한 아이들을 볼 때마다 하는 나의 첫마디는 이거다. 너희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보통 학교 다닐 나이 즈음의 머리 큰 아이들은 자기가 잘못을 하면 했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 부모님에게만은 꼭꼭 숨기고 싶어한다. 열서너살쯤 되어보이는 무리 중 가장 큰 아이가 쭈뼛쭈뼛하더니 앞으로 나와서 묻는다. 왜요?
"너, 방금, 너희가 한 말 무슨 뜻인지 아니?"
"아뇨. 모르는데요. 무슨 뜻인데요?"
(남편은 이 부분에서 이 애들이 모를리가 없었다고. 모른다는 말은 그저 핑계일 것이라고 나중에 얘기했다.)
"모른다고? 너희가 한 말은 굉장히 무례하고 인종차별적인 말이야. 우리가 비록 중국인은 아니지만, 중국인이든 그렇지 않든 모든 동양계 사람들에게 해서는 안될 말이기도 하고."
"저희는 그 말이 그런 뜻인 줄 몰랐어요."
"그럼 너희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그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막 하고 다니니? 너희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적어도 말하는 본인은 알고 있어야지."
사실은 대문 앞에서 붙잡고 10분은 더 혼낼 수 있었는데... 내가 직접 불러다 몇 마디 하니까 아이들 기가 죽는게 확 눈에 띄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애가 열서너살 정도, 제일 어린 애가 열살쯤 되어 보였다. 내친 김에 직접 나가서 옆집 문을 두드리고 부모에게도 말할까 하다가... 애들이 모르고 그랬다는데 그냥 믿어주고 넘어가자 싶었다. 이러다 부모 싸움이 되면 오히려 일이 더 커질 수도 있고, 그래도 이웃이니까.
"다시는 그런 단어를 남들한테 쓰지 마."
사실 몇 마디 조금 더 하면 그 중에 한 아이라도 울까봐 내심 내 가슴도 콩닥거렸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저 애들이 영어가 능숙하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폴란드 애들이었으면 말이 안통해서 한 마디도 못했을텐데.
엄마가 호쾌하게(?) 옆집 아이들을 혼내는 걸 지켜보던 아이가 나를 보고 씨익 웃었다. 그러고 잠시 바깥을 내다보았다. 아까와는 다르게 아무 소리 내지 않고 조용하게 드르륵드르륵 바퀴를 굴리며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아이가 내게 물었다.
"엄마. 근데 나도 쟤네들처럼 대문 밖에서 놀면 안돼?"
아무 목적 없이 그저 집 주변 한바퀴를 돌았을 뿐인데 아이는 신이 났다. 골목 입구에 있는 성모상을 향해 성호경도 오랜만에 그어보고, 아무도 없는 길을 끝에서 끝까지 달려보기도 했다. 어느 골목에선가 다른 집 개가 갑자기 컹컹 짖어대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지만, 그런 놀랍다는 감정마저 너무 오랜만이었다. 15분정도 집 근처 길을 산책했는데, 다행히 오가는 길에 아무도 스쳐지나가지 않아서 마스크를 하지 않아도 되었고, 지나다니는 차도 없이 한적한 길을 맘껏 즐기다 올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살짝 상기된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내가 그동안 놓치고 살고 있던 게 무엇인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최근 2주동안 유럽 내 확진자 발생이 가장 많았던 국가는 영국과 폴란드. 그러나 내일 예정된 대통령 대선으로 현 정부는 정권유지에만 관심이 쏠려 이 상황을 관리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이번 주 남편의 회사에서는 현지 직원 중 확진자가 발생하였다. 그러나 확진자의 가족에게도, 다니고 있는 회사에도, 그 어떤 접촉자에게도 보건국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각자도생의 길. 폴란드인들은 이미 코로나에 익숙해졌다며 완전히 긴장의 끈을 놓은 듯 해서 더 불안한 시국이다. 대통령 후보들은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은 수만명의 지지자들을 모아 집회를 열고, 이제는 슈퍼마켓에서 장갑과 마스크를 전혀 착용하지 않은 사람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오늘같은 직접적인 계기가 없었다면, 나는 과연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을까? 과연 이 타국생활의 결말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산책길에 바라본 하늘은 눈물날 정도로 예뻤고, 그 아름다운 하늘을 아이들에게 더 자주, 더 오래 보여주고 싶었다. 부디 성실하고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손해보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는 세상을 꿈꿔본다. 누구에게도 피해가 갈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듣지 않았어야 할 말을 들은 오늘. 그리고 오히려 내집 앞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며 씁쓸한 마음이 들었을 아이.
그 모든 장면들을 하나씩 다시 떠올려보니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