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공동체만 경험하며 사는 아이들

폴란드에서 국제학교를 보낸다는 것

by 주정현


얼마 전에 한 식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식당 옆에는 아이들이 놀 수 있게 작은 놀이터와 놀이방이 꾸며져 있었는데, 우리 아이들이 오기 전부터 그곳에서 놀고 있던 한 무리의 아이들이 있었다. 그 아이들은 놀이터에 있는 플레이하우스 안에서, 놀이방에 있던 모든 레고 블록을 쌓아 탑을 만들고 그 안에서 전쟁놀이 비슷한 것을 하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그 옆에서 쭈뼛대며 자기들끼리 소꿉놀이 비슷한 것을 하며 놀다가, 자꾸 눈치를 보며 그 아이들을 쳐다보다 말다 하였다. 멀리서 아이들을 지켜보던 내가 "뭐 필요한 거 있니?" 하며 다가가자, 저 아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레고 블록이 자기들도 좀 필요한데 한 개도 안 남기고 다 가져가서 놀 게 없다고 말했다. 좀 나눠달라고 말하면 되잖아,라고 답하자 한국어만큼 영어가 능숙한 첫째가, 이미 말해봤는데 쟤들이 영어를 한 마디도 못 알아듣는다고 투덜거렸다.

블록을 나눠달라고 얘기하는 것은 어떻게든 눈치와 바디랭귀지로 되긴 할 텐데,라고 속으로 생각하긴 했지만, 폴란드에 살고 있는데 폴란드어를 전혀 못하는 아이들의 위축되는 마음이 이해되기도 한다. 게다가 왠지 이곳에서 참 이질적인 우리들, 전혀 다른 생김새의 동양인 아이들을 쳐다보는 저 아이들의 묘-한 으스대는 모양새를 보니 저기에 대고 뭔가를 당당하게 요구한다는 게 아이들의 어린 마음엔 참 어렵겠다 싶었다. 우물쭈물하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이럴 땐 엄마가 나선다.

"Poproszę jedno lego?"

문법이 틀렸던 걸까, 아니면 내 발음이 이상했던 걸까. 바로 알아듣고 순순히 레고를 내주긴 했는데, 현지 아이들의 입꼬리 모양이 이상하게 올라가고 뒤돌아서 자기네들끼리 키득거린다. 기분 나쁘다. 어른인 내 마음에도. 그렇지만 해외에서 살면서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일일이 마음에 담아두면 마음에 온갖 스크래치가 남아서 나만 괴롭다. 그냥 못되고 예의 없는 아이들을 재수 없게 만났을 뿐이라며 훌훌 털어버려야 한다. 그래도 열 받으니 그들의 부모가 있는 테이블을 한 번 쏘아보긴 했다.




우리 아이들은 이곳 폴란드에서 국제학교에 다닌다. 즉, 아이들이 학교에서 쓰는 말과 사회에서 쓰는 말이 다르다. 그리고 가정에서는 한국어를 쓴다. 모국어인 한국어가 가장 능숙하고, 그리고 영어도 웬만큼 하지만, 사회의 언어인 폴란드어는 전혀 모른다. 언어가 있어야 내가 살아가는 공간과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아이들에게는 집과 학교가 있지만 그 외의 공간, 제3의 공간이 없다.

예전에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며 2년 정도 살았던 적이 있다. 미국에서 살 때는 여전히 가정에서는 한국어를 썼지만, 학교와 사회에서는 한 언어, 영어를 썼다. 그렇기에 아이가 학교를 다니고, 친구들을 사귀고, 언어를 새로 배워 나간다는 것은 곧 그만큼 경험할 수 있는 사회가 넓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했었다. 아이의 영어 실력이 늘어갈수록 아파트 놀이터에서 사귈 수 있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그런데 폴란드에서는 그게 안됐다

이 곳에서 산 지도 벌써 2년이 넘었지만, 아이들의 세상이 넓어지는 데는 집과 학교, 딱 두 공간에 한정되어 있다. (올해는 코로나로 그 학교라는 공간마저도 제대로 영유하지 못했으니 사실상 아이들의 세상은 제대로 확장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여기에 폴란드어를 공부하는 시간을 늘릴 수도 없는 게, 아이가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있고, 학교에서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학습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부담이라 여기에다가 제3의 언어를 배우라고 추가할 수도 없다. 게다가 이미 교과 과정의 일부로 프랑스어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언어를 하나 더 늘리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아주 기본적인 인사말 외에는 아이들은 폴란드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


그나마 동생들은 초반엔 비교적 상황이 조금 달랐는데 비싼 학비 때문에 국제학교를 보내지 않고 현지 사립유치원을 보냈다. 큰애가 다니는 곳이 한국의 한남동이나 용인에 있는 외국국적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국제학교라면, 동생들이 다니는 곳은 동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립 영어유치원인 셈이었다. 유치원에서 영어만 사용하긴 하지만, 선생님은 폴란드인 선생님이고 다니고 있는 아이들의 절반 이상이 폴란드인이었다. 외국 국적의 다른 아이들도 헝가리, 루마니아, 러시아 같은 비교적 비슷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동유럽 국가에서 온 아이들이었다. 폴란드 아이들이 대부분인 그 유치원에서 우리 아이들은 숫자와 문자는 영어로 배웠지만 그 외의 것들은 모두 현지 문화에서 온 것들, 그러니까 예를 들어 폴란드 전통춤을 배우고 여러 가지 폴란드 노래를 배웠다. 어쩌면 아이들이 이 곳에서 좀 더 오랜 시간을 보냈다면 현지 아이들과 좀 더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었을까? 하지만 1년 넘게 이 유치원에 아이들을 보내면서 나도 외국인으로서 현지 유치원을 보낸다는 것에 대한 한계를 느꼈는데, 무엇보다 다른 학부모들과 소통이 전무했었다.


국제학교의 경우에는 다른 한국인 주재원의 자녀들도 많이 다니고, 심지어 한국계 선생님도 좀 계시고,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영어로 이루어지는 데다가, 폴란드인 학생들의 비중이 적었다. 그러나 사립유치원의 경우 과반 이상의 아이들이 폴란드인, 그리고 나머지 과반의 학생들도 폴란드인과 결혼한 국제커플의 자녀들인 경우가 많아서 유치원 안에서는 영어로 수업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그 외의 모든 의사소통은 폴란드어로 이루어졌다. 아이들의 놀이 시간에도, 선생님들의 안내문도, 그리고 학부모들의 whats app채팅창에서마저 폴란드어로 이루어졌다. 스승의 날 선물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 의논하는 날, 쏟아지는 폴란드어의 홍수 속에서 처음 몇 개의 대화는 번역기를 돌려보다가 결국 나는 그냥 슬쩍 읽씹. 했다. 아, 몰라. 선물 안 하고 말지. 수십 명이 모여서 선물을 준비한다는 데 나 한 명쯤은 빠져도 별로 티 나지 않겠지. 아이들의 사물함에 생일파티 초대장에 꽂혀있어도 갈까 말까 많이 망설여졌다. 가더라도 분명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고 말 텐데. 괜히 돈 쓰고 시간 쓰고 스트레스만 받다 오는 거 아닐까. 그렇게 아웃사이더로 살아오며 아이들의 세계도 나의 세계도 단단한 유리벽에 막혀 더 이상 확장되지 못했다.




동생들은 다음 달부터 국제학교에 다닌다. 1년에 천만 원이 넘는 비싼 학비를, 둘 이상이니 2천만 원으로 불어나는 그 학비를 아직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를 네다섯 살 아이들의 교육비로 써야 한다는 게 너무 부담스러워서, 게다가 어차피 코로나로 인해 학교를 보내지 않았을 때의 이점도 있어서 그냥 오랫동안 학교를 쉬었다. 그렇지만 멈춰버린 세상에서 가족이란 울타리 외에 아무런 사회적 접촉이 없는 아이들을 그대로 지켜만 볼 수는 없었다. 언어라는 장벽에 갇혀 놀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또래와 친구가 되기도 어렵고, 은근한 인종차별적인 시선과 그걸 무시하고 손을 내밀만큼 아이들의 마음이 대범하지도 못했다. 당분간 외벌이 남편의 월급은 잠시 통장을 스쳤다가 그대로 아이들의 교육비로 나갈 예정이다. 그래도 아이들이 마음 놓고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안전한 공동체가 필요했다. 실제로 살고 있는 사회와는 다른 언어와 다른 문화를 가진, 작고 한정적인 공동체일지라도.


결국 현지 유치원을 포기하고 국제학교로 들어선다는 것은 끝까지 이방인으로 남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국제학교마저 없는 작은 중소도시에 살고 있는 교민들도 있다. 우리는 그에 비해 '선택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으니 운이 좋은 편이다. 그러나 이 선택이 옳은 것이었는지, 나도 아이들도 힘들더라도 좀 더 용기를 내서 더 부딪혀봐야 했던 게 아니었을까 망설여지기도 한다. 현지 문화에 녹아들 수 '없는' 건지 녹아들기 '싫은' 건지 내 마음을 좀 더 들여다본다. 좀 더 자신을 믿어보라고, 아이들을 믿어보라고, 그리고 깊이 파고들어보라는 마음의 소리도 한편에서 들렸다. 그러나 싫다. 지쳤다. 나라도 싫었을 그 어색함을 아이들에게 강요한다는 것도 미안했고, 아웃사이더보다는 인사이더로 인정받는 경험을 아이들의 유년기에 채워주고 싶었다.


식당에서 만났던 현지 아이들의 이상하게 뒤틀렸던 입꼬리 모양을 떠올려본다.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얼굴. 그 자리에서 훌훌 털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자꾸 생각나고 그때마다 마음이 쿡쿡 쑤신다. 아무래도 응어리가 남은 게, 그때 부모들 테이블을 째려보기만 할 게 아니라 한소리 하고 왔어야 했나. 근데 무슨 언어로 하지? 영어? 폴란드어? 아니면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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