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집 구하기
주재원 2년 차의 폴란드 탐구생활
남편이 폴란드로 파견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알아보기 시작한 것은 집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일단 어디서든 살아야 하니까.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폴란드 내에서 통용되는 온라인 부동산 사이트 중에는 Otodom이 제일 유명했다. 그 뒤로 틈만 나면 해당 사이트에 들어가서 집 크기나 월세 금액 등을 검색조건으로 달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폴란드는 어떤 거주형태가 흔한가, 대충 시세는 얼마나 되나.
otodom.pl
그러나 주재원 신분으로 이곳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생활하게 된 우리는 훗날 이것이 시간낭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회사에서 따로 연결해주는 부동산 에이전트(외국인을 전문으로 상대하는)가 있어서 따로 온라인 중개사이트를 기웃거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에이전트가 소개해주는 집 대부분이 온라인 사이트에는 없는 물건들이었다. 에이전트가 소개해주는 집들은 온라인 사이트에 올라와있는 집들보다 가격도, 위치도, 조건도 더 좋았다. 아주 간혹 에이전트가 소개해 주는 집이 온라인 사이트에도 올라온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집들은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 누구나 마음에 들어할 만한 좋은 집은 공개적인 정보로 드러나지 않았었던 것. 만약 우리 부부 둘이서만 인터넷으로 집을 알아봤다면 아마 딱 사기당하기 좋았을 것 같다.
에이전트는 우리가 원하는 조건을 물어봤다. 금액은 회사 월세지원금을 에이전트가 이미 알고 있으니 그 범위에서 지나치게 벗어난 집들은 알아서 소개해주지 않을 터라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외에 우리는 방은 4개 이상일 것(기왕 5개면 더 좋고. 다섯 식구니까), 그리고 남편 회사와 가까운 모코토프 지역이나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빌라누프 지역일 것, 그리고 기왕이면 신축인 집을 희망했다. 우리는 집을 알아볼 때까지 아직 초등학생 첫째의 학교를 확정하지 않았는데, 당시 후보로 꼽은 국제학교 중에서 어느 학교에 아이를 보낼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아이의 학교와 가까워야 했다. 그러자니 세 곳의 국제학교 모두와 통학 가능 거리에 있는 빌라누프가 가장 1순위 후보군으로 올랐고, 왜 이 지역에 한국 교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지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처음에 에이전트는 43개의 집 후보들을 보여주었다. 과하게 많았다. 집의 위치는 번지수는 제외하고 도로명만 써서 보여주었는데 이곳 지리를 전혀 알지 못하니 대체 어디 있는 집을 뜻하는지 알 수가 없어 일일이 구글맵으로 찾아가며 지도에 표시를 해야만 했다. 가뜩이나 낯선 폴란드어를 검색하려니 계속 오타가 나서 골목길 이름을 제대로 타이핑하는데 5분이 넘게 걸린 적도 있었고 Wilanowska처럼 수천 가구가 모여있는 큰 거리는 대체 어디를 말하는 건지 감도 오지 않았다. 43개의 집을 일일이 다 방문할 수도 없었기에 직접 집을 보러 갈 후보를 추려내야 했다. 당시의 나는 먼 한국에서 집을 알아보는 처지이니 대부분 구글 지도에 의지해서 스트리트뷰를 보며 동네 분위기를 가늠해보고, 주변의 편의시설을 일일이 찾아보았다. 슈퍼마켓, 도서관, 공원, 놀이터... 이런 것들을 함께 지도에 표시해가며 내가 아이들과 걸어 다닐 동네길을 상상해봤다.
방이 많은 집을 알아보다 보니 자연스레 아파트보다는 주택이 더 마음에 끌렸다. 아파트는 기껏해야 방이 4개 정도가 최댓값이었지만, 주택은 구조에 따라 방이 여섯 개 이상 있는 집도 있었다. 남편이 특히 방이 많은 집을 더 선호했다. 워낙 야근이 잦은 직군이라 이곳에서도 비슷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지만, 야근에 최적화(?)된 한국 사무실과는 달리 현지에서는 저녁식사도 해결하기 어렵고, 주말에는 회사 건물도 닫혀 있기 때문에 많은 업무를 집에서 처리해야 했다. 따라서 남편은 아이들과 떨어져 오롯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자신만의 서재를 갖길 원했고, 그러자면 식구도 많으니 방도 많아야 했다. 이 서재가 훗날 코로나 재택근무로 인해 그의 온전한 1인 사무실이 될 줄은 당시에는 전혀 몰랐지만...
그래서 그렇게 추려낸 집들 중 스무 곳 정도를 현지에 있는 남편이 직접 둘러보았다. 대부분은 주택이었고, 아파트는 한두 군데 정도만 봤던 것 같다. 워낙 많은 집을 한꺼번에 보는지라 보는 남편도 헷갈리고, 정보를 전달받아 정리하는 나도 너무 헷갈렸다. 지금 이야기하는 집이 그 집이야 아님 다른 집이야? 그 F로 시작하는 그 길에 있는 집 말하는 거지? 이런 식의 대화가 심심찮게 오갔다.
남편은 엑셀 파일을 만들어 집 주소와 특징을 적어가며 내게 정보를 공유했고, 집을 보러 갈 때는 간단한 내부 동영상을 찍어 집 구조나 느낌 등을 내게 간접적으로나마 전달해주었다. 때로는 비고란에 '여긴 아님'이라는, 뭔지 모르지만 직접 본 사람이 단호하게 아니라고 하니 그렇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정보가 적혀있기도 했고, '집에서 아이들을 잃어버릴 것 같음'이라는... 대체 어떤 집이길래 이런 코멘트가 적혀있는 건지 궁금하게 만드는 집도 있었다.
주택을 중심으로 알아보다 보니 가격도 조건도 천차만별이었는데 딱 이거다 싶은 집이 없었다. 어떤 집은 다 멀쩡해 보이는데 5년 동안 세가 안 나갔던 집이라고 이야기를 들으니까 왠지 찜찜해서 싫었고, 어떤 집은 대궐같이 넓은데 주방이 코딱지만큼 작아서 마음에 안 드는 경우도 있었다. 그 당시 막내가 아직 두 돌도 되기 전인지라 계단 난간이 위험해 보인다든지, 깨지거나 다치기 쉬운 자재로 돼있다든지 하는 집들도 후보에서 제외되었다.
다들 어딘지 조금 아쉽고, 조금 부족한 집들 중에서 결정해야 하니 성이 차지 않았는데, 그래도 집을 스무 군데나 봤으니 이 중에는 결정해야겠다 싶어 고민 끝에 한 집을 골랐다. 3층 집이었고, 주택 3개가 연달아 붙어있는 Row House였으며, 우리 옆집이자 가운데에 있는 하우스에는 집주인이 살고 양 옆으로 붙은 주택은 세를 주고 있는 집이었다. 크진 않지만 마당이 있었고, 담장 너머가 다른 주택이 아니라 공원에 붙어있는 공공수영장이어서 프라이버시 문제도 괜찮아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다닐 유치원이 엎어지면 코 닿을, 도보 1분 거리였다.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집은 아니어서 몇 번이고 다시 고민하다가, 그래도 이만한 조건, 특히 위치에서는 따라올 집이 없다고 생각하고 에이전트에게 최종 의사결정을 해서 보냈다.
그런데 우리가 최종 의사결정을 한 다음날, 에이전트가 '정말 미안하지만 그 집이 딱 하루 전날 다른 사람이랑 계약됐다'라고 알려왔다. 석 달간 비어있던 집이라 같은 집을 두고 경쟁하는 다른 세입자가 있는 줄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마흔 개가 넘는 집 중에서 고민 고민하다가 딱 하나를 골랐는데 그걸 하루 전 날 남이 채가다니. 굉장히 아쉽고 속상했고 이미 마음을 굳힌 이후에 다른 집들 중에서 다시 고르려니 더욱더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러자 에이전트는 일곱 개의 집을 더 리스트에 추가하며 후보를 늘려주었다.
우리가 여러 가지를 알아보는 며칠 사이에 새로 세를 놓은 집이 추가된 것이었을까? 처음엔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역시 몇 달간 비어있던 집들도 있었고, 새로 세를 놓은 집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왜 처음에 에이전트는 그 집들을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을까? 남편이 새로 추가된 리스트의 집을 직접 방문하고 살펴보니 그 의문이 풀렸다. 에이전트가 추가로 알려준 집들은 '누가 봐도 살고 싶은' 좋은 집이었다. 그러니까 사실은 정말 좋은 집은 처음부터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이곳 생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같은 어리바리 초짜 외국인들한테는.
몇 군데의 집을 더 봤을 뿐인데 우리의 1순위와 2순위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전에 소개받은 집들과 위치도 조건도 모두 달랐다. 특히 지금의 집을 처음 만났을 때, 내게 보여주기 위해 동영상을 찍던 남편은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집이 정말 마음에 드는 걸 숨기지 않고 아낌없이 드러냈다. 뒤늦게 녹화된 동영상을 전달받아 화면으로만 집을 보는데도 내 눈에 이 집이다(!) 하는 느낌이 왔다. 이번에는 정말 다른 경쟁 세입자에게 뺏길 수 없다. 우리 부부는 빠르게 의견 합치를 보고 이 집에서 살고 싶다는 결정을 에이전트에게 전달했고, 심지어 집주인은 회사 월세지원금보다도 조금 더 저렴한 가격으로 집을 내놓은 터였다. 계약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동안 어쩌다 보니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그리고 다시 폴란드로 이사오느라 2년 주기로 이사를 했었다. 만약에 귀임 전까지 이 집에서 쭉 살게 된다면, 우리 가족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살게 될 집이었다. 아이들이 '나의 유년기'를 추억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될 집이기도 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집 선택이 중요했다.
예전 글 <단독주택에 살고 있습니다>에도 썼지만, 그래서 그렇게 최종적으로 선택하게 된 이 집을 우리 가족을 정말 마음에 들어한다. 한국 음식을 사랑하고 한국의 문화를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도... 그래서 상대적으로 폴란드는 싫지만 집은 좋기 때문에, 한국에 가면 다시 아파트에 살아야 하니 그게 제일 아쉽다고 말한다. 사실 아이들은 그새 아파트에서 사는 생활을 까먹었다. 방학에 한국에 있는 할머니 집에 가면 왜 할머니 집에는 계단이 없어요? 왜 마당이 없어요?라고 물어본다. 단독주택 중에서 마음에 집을 고르느라 스물일곱 개의 집을 발품 팔아 보고 다닌 남편이 정말 고생했지만... 우리 가족은 덕분에 모두가 마음에 들어하는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바르샤바에는 단독주택이 많은 만큼 정말 다양한 크기의 다양한 구조를 가지고, 그리고 위치나 주거조건 등이 천차만별인 주택들이 널려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당신이 마음에 쏙 들어할 만한 집도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이다. 그러니 겉으로 드러난 정보만 믿지 말고 열심히 찾아보시기를.
보석은 무릇 숨어있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