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외이사 수난기

by 주정현

해외에서 이사를 한다는 것은, 한국의 포장이사와는 매우 다른 경험이다.

단 한 장의 사진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것은 오전 10시에 도착한 이삿짐 트럭이 하루 종일 짐을 나르고, 직원들이 모두 철수한 저녁 5시 30분에 찍은 사진이다. 나에게는 '배고프다'는 소리를 매일 30분마다 반복 알람처럼 종알거리는 세 아이들이 있고, 남편은 아쉽게도 이삿날 휴가를 내지 못했으며, 나에게는 이제 이 부엌에서 저녁밥상을 차려야 하는 미션이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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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그릇을 부엌 찬장에 넣어주는 이삿짐센터 이모님은 없었다. 그냥 근육질의 말도 안 통하는 장정 다섯이 와서 박스를 집안 여기저기에 쌓아두고 있었다. 부엌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박스를 보며, 3년 전부터 폴란드에서 주재 생활을 하고 계시는 선임분의 조언이 생각났다.

"여기서는 종이박스 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정말 큰 일거리니까, 꼭 이삿날 인부들에게 다 박스를 뜯어서 가져가 달라고 이야기해야 해. 안 그러면 그 박스를 버리겠다고 재활용 쓰레기장을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해야 한다고."

국내 이사보다 훨씬 더 짐을 꼼꼼하게 포장하고, 아주 작은 가구나 그릇들까지도 모두 박스 안에 담아야 하는 것이 해외이사의 규칙이다. 특히 깨질만한 물건이 많은 부엌살림들은 모두 다 비닐 뽁뽁이 포장이 되어있었다. 그 모든 물건들을 하나하나 풀어서 내가 정리를 하려면 하루 온종일 박스와 비닐만 해체하고 있어도 다 못 끝낼 참이었다. 그래서 직원에게 '모든 포장을 다 풀어주세요.'라고 부탁했더니 그는 정말 '포. 장. 만.' 풀고 퇴근했다. 나오느니 한숨뿐. 부엌을 쳐다보고, 또 쳐다보는데 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아니, 일단 찬장에 접근할 수 있어야 뭐든 시작할 수 있을 텐데 부엌 바닥 한가득 그릇을 펼쳐놓으면 나는 어떻게 들어가란 말인가.


잠시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아이들 놀잇감이 있는 서재방으로 갔다. 그리고 차마 현실로부터 도피하지 못하고 일거리만 더 잔뜩 싸여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박스 안에 책이 눕혀서 들어있다고 책꽂이에도 눕혀서 책을 넣는다는 건... 그렇다. 직원들이 제대로 일하기 싫었던 거다. 이렇게 일하고 품삯을 받아가다니. 이사 비용을 회사에서 지원받지 않았다면 아마 전화라도 걸어서 이삿짐센터에 따박따박 따졌을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폴란드어를 못 하기 때문에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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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주재원의 이삿짐이 들어오는 날이면 우리는 모두 이렇게 인사를 건넨다. 푹 쉬세요. 제발 일단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아프지만 마세요. 천천히 하세요.

한 집안의 살림살이가 두 달간 화물선을 타고 인도양을 건너 새로운 집에 들어온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동안 텅 비어있는 집에서 아주 최소한의 세간살이만 가지고 사느라고 간절히 그리워했던 물건들이지만, 또 너무나 많은 양의 물건들이 하나도 정리되지 않은 무질서한 상태로 내 눈앞에 우수수 쏟아진다.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고,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도 안 온다. 하나하나 내 손으로 마음에 들 때까지 정리하려 들다 보면 쉴틈 없는 강도 높은 노동에 엄마는 딱 드러눕기 십상이다. 목표를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야 한다. 천천히 하자. 그리고 아프지만 말자.


우리 회사에서는 이삿짐이 들어오는 날, 같은 회사 주재원 부인들이 각자 반찬 한 가지씩을 마련해서 가져다준다. 나도 이날 아홉 개의 따뜻한 반찬을 받았다. 잡채, 김밥, 만두, 닭강정, 불고기, 카레, 그리고 소고기 뭇국 등등... 따로 준비할 필요도 없이 그냥 식탁 위에 놓고 그대로 먹을 수 있도록 잘 준비된 음식들이었다. 우리는 같은 경험을 공유했던 사이이기에 그날 저녁에는 절대 부엌을 사용할 수 없을 거란 걸 이미 겪어봐서 알고 있다. 나는 이날 받은 따뜻한 음식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고, 내 이후에 오는 신임 주재원들의 이삿날이면 그들의 위해 반찬을 만들었다. 내가 받은 것을 다음 사람에게 베푸는 선순환. 먼 타국에서 지내는 일이 그래도 꽤 견딜만하다고 느끼는 것은 내 이전에 이곳에 살던 누군가가 서로를 배려해서 만들어놓은 이런 시스템 덕분일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는 다른 것도 아니고 딱 부엌 정리만 도와주고 싶은데 혹시 집에 찾아가도 되겠냐는 문자가 왔다. 괜찮다고 혼자 할 수 있다고 정중히 사양했지만, 그래도 너무 도와주고 싶다고 거듭 말씀하셔서 기꺼이 도움을 받기로 했다. 아이들이 학교와 유치원에 가고 난 시간. 이미 성년이 된 아들이 있는, 이모뻘의 사모님이 우리 집에 오셨다. 사진 속 그대로의 부엌의 모습을 보시고 '어머'하는 감탄사를 나지막이 내뱉으시며 해사하게 웃으셨다. 정말 오길 잘했다고 큰 보람을 느끼지 않으셨을까. 혼자 할 걸 두 사람이 함께 힘을 모아 해치우니 금방 끝났다. 사모님은 우리 집에 있는 올망졸망한 이유식 그릇들과 신기하게 생긴 야채 다지기를 보며 즐거워하셨다. 뒷정리를 끝내고 한국에서 건너온 아끼는 찻잔에 홍차를 내려 함께 티타임을 가졌다. 꿀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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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유치원에서 데리고 오는 길에 폭설이 내렸다.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새하얀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커다란 전나무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을 보니 과히 이국적이었다. 깨끗하게 정리된 부엌에서 따뜻한 코코아를 타다가 아이들과 함께 나눠마시고 마당에서 눈썰매를 탔다. 나머지 이삿짐은 급하지 않으니 천천히 정리하면 된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해외에서 살 때 가장 중요한 제1원칙은 바로 이것이다. 나머지는 좀 나중으로 미뤄도 된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면 솔직하고 감사하게 그 도움을 받고 말이다. 한국 같은 서비스가 그 어디에도 없어 모든 걸 떠안으려고 하다 보니 과로하기 십상이지만,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쉬엄쉬엄 일상을 살아내 보기로 했다. 여행지에서 보내는 일상이 그렇듯, 도중에 아프지만 않으면 어쨌거나 그 여행은 성공적인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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