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가 주는 편안함

나는 한국이 그리울 땐 스타벅스를 찾는다

by 주정현
모든 인간에게는 살아가면서 가끔씩은 맛보지 않으면 안 되는 반복적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가까운 사람들과 만나 안부를 묻고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갖는다거나, 철저히 혼자가 된다거나.

여행의 이유 | 김영하


아홉 살 때부터 살았던 친정집 근처에는 스타벅스가 있다. 물론 아홉 살 때부터 있었던 건 아니고 정확히 언제 생겼는지 또렷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어쨌든 내가 밖에서 사 먹는 비싼 커피에 돈을 들일 수 있을 때쯤, 그러니까 대학생이었던 시절부터는 항상 스타벅스가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대학생 때는 토플 단어를 외우고, 대학원생이 되어서는 GRE 단어를 외우고, 아기 엄마가 되고 나서는 유모차에 잠든 아기를 태운 채 혼자만의 여유로움을 즐겼다. 집 근처 공원에서 횡단보도만 하나 건너면 바로 나오는 곳이 그 스타벅스였다. 아이가 어릴 때는 낮잠을 재우는 게 매번 곤욕이어서,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공원을 수십 바퀴쯤 빙글빙글 돌곤 했었는데, 그러기를 수십 분째 아이가 드디어 잠들면 유모차를 조심스레 끌고 가서 꿀맛 같은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못해도 그 스타벅스에는 수백 번쯤 들락거렸던 것 같은데, 유모차에 타던 그 아이가 자라 초등학생이 되어 첫 운동회를 하던 날에도 그 스타벅스에서 같은 반 학부형들과 아이스커피를 사 마셨다.


그렇다고 내가 스타벅스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옛날에는 다이어리 값보다 수십 배는 비싼 돈을 커피값으로 탕진하며 새해 다이어리를 득템 하기도 했지만, e-프리퀀시로 전환된 이후에는 한 번도 모아본 적이 없다. 커피값을 아껴서 사야 할 것이 더 많은 아이 셋 엄마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굳이 스타벅스가 아니더라도 아파트 상가에는 더 저렴하고 더 맛있는 커피를 파는 집들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스타벅스는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니라 공간을 파는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제는 그 공간에서 영어단어를 외울 일도, 노트북으로 리포트를 쓸 일도 없으니 더 이상 자주 찾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폴란드에 와서는 다시 스타벅스 애호가가 되었다. 아주 가끔씩 스트레스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 미칠 것 같을 때, 마치 비타민 주사를 맞으러 가는 것처럼 스타벅스를 찾는다. 그곳에서 늘 마셨던 아이스커피를 주문해서 먹는다. 그러면 좀 살 것 같다. 적어도 20대 초반부터 10년 넘게 먹었던 내가 아는 그 맛의 커피. 고국의 음식도 아니고, 고국의 커피도 아니지만, 전형적인 폴란드 카페에서 얼음 한두 개만 넣다가 마는 맹숭맹숭한 커피가 아니라 내가 알고 있고 기대하는, 커피보다 얼음이 더 많이 들어간 그 커피다. 머리가 지끈 거릴 정도로 차가운 커피를 단숨에 한 모금 들이키고 나면 드디어 숨통이 좀 트인다.


지난 토요일에 출근했던 남편에게, 퇴근하자마자 아이들 셋을 맡기고 숨통을 좀 트여야겠다며 외출을 했다. 아니, 외출이라기보다는 탈출이라 부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집에 있던 책 세 권을 챙기고, 그것도 모자라 집 근처 서점에서 읽지도 못하는 폴란드어로 된 책을 두 권 더 사고(지르고), 그대로 가장 가까운 스타벅스로 향했다.


그 공간에 앉아있으면 20대 초반의 나로 돌아가는 것 같다. 토플과 GRE를 공부하던 시절에는 매일 출퇴근 도장을 찍었고, 어쨌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시간을 때울 때면 가장 만만하게 들리곤 했던 장소. 근데 폴란드 스타벅스에서도 그곳에서 들리던 에스프레소 머신 소리, 커피 냄새, 인테리어, 그리고 귀에 잘 들리지 않는 소음 같은 음악이 묘하게 어우러져 한국에 있는 스타벅스와 똑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래서 내가 잘 알고 있는 익숙한 장소에서 받아들여지는 기분이 든다. 이곳은 너는 왜 폴란드어로 주문하지 않느냐는 날 선 눈빛이 없는 곳이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익숙한 커피맛이 있다. 자신 있게 메뉴판의 쓰인 메뉴를 만국 공통어로 주문할 수 있다. 아이스커피 프라푸치노 그란데 사이즈. 한국어도, 영어도, 폴란드어도 똑같다. 이곳에서 나는 외국인이기보다는 그냥 한 명의 손님으로 대우받는 느낌이다.


어떤 동네에 머무는 게 좋을까? 이건 항상 고민하는 문제인데, 나는 스타벅스를 나름의 기준으로 잡는다. 구글 맵을 켜고, 눈여겨보는 숙소 주변에 스타벅스가 있는지(있다면 얼마나 가까운지) 체크한다. 세계 어느 지점에 가든 인테리어도 배경음악도 메뉴도 한결같아서 스타벅스에 앉아 있으면 묘하게 마음이 차분해진다. 여행은 일탈이라고 하지만 24시간 내내 붕 떠 있기는 어렵다. 그 안에서 일상을 찾아야 한다. 게다가 와이파이도 빵빵하고, 어지간해선 꽤 오래 머물러도 눈치 볼 일이 없어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쓰기도 좋다.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 신예희

해외 살이 5년 차. 그리고 앞으로 3년 혹은 그 이상이 더 남았다. 그리고 그 시간이 아득하게 느껴질 때마다 이런 장소를 찾아 잠시 도망쳐 본다. 아주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이마저도 없는 곳도 많을 텐데. 하고 스스로를 달래 본다. 프랜차이즈가 주는 안도감이란 이런 것일까. 여기까지 와서 기껏 찾아간다는 카페가 스타벅스라니, 유럽 감성이 가득한 로컬 카페를 가보란 말이다! 하고 누군가는 타박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편안한 느낌을 버릴 수 없어 결국엔 스타벅스로 가게 된다. 집 앞에 스타벅스가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이 그리울 땐, 스타벅스를 찾는다. 이곳에는 내가 찾는 그리움의 한 조각이 그대로 스며들어 있으니까.

이전 12화진정한 'from scra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