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카페에는 없지만 폴란드 카페에는 있는 것

by 주정현
이 글은 작년에 발행한 #SEESAW매거진 #해외특파원이 발견한 제3의 공간의 게재글을 최근 시점에 맞춰 짧게 편집한 글입니다. 좀 더 자세한 폴란드의 카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스타벅스에 주방놀이 장난감이 있다?> 글을 참고하세요.



카페는 사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보기 어렵다. 일단 카페에서 파는 메뉴들 대부분이 커피나 홍차 같은 카페인 음료라서 아이들이 마시기에 적합하지 않고, 또 카페에서 중요한 미팅을 하거나 업무를 처리하는 다른 고객들에게 혹시 아이들이 방해가 되진 않을까 조심스러워지니까.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외출할 때는 카페 같은 '눈치 보이는' 장소보다는 비교적 안전한 공공장소인 놀이터나 키즈카페 같은 공간을 더 찾게 된다.


그러나 폴란드에 이사 온 후로는 카페나 식당 같은 공공장소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일이 전처럼 부담스럽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나 혼자 아이 셋을 데리고 외식을 하러 나간다는 건 꿈도 못 꾸는 일이었는데, 이곳에서는 세 아이들과 함께 카페나 식당에 가서 기분전환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사 먹고 온다. 그리고 이국적이고(왜냐하면 이국이니까) 힙한 카페에서 인스타그램용 사진도 아이들 방해 없이 얼마든지 건질 수 있다. 폴란드에선 왜 그게 가능할까?


코로나 이후로 넓은 야외좌석이 마음에 들어서, 그리고 맛있는 치즈케이크가 마음에 들어서 최근에 자주 찾은 비건카페 Szklanka. 그런데 아이들은 어디 있을까?


한국에 있는 카페에서는 흔하게 찾아볼 수 없는 공간이지만, 폴란드 카페에는 없으면 이상해 보이는 공간이 있다. 바로 어린이를 위한 놀이방. 거의 모든 카페에, 비록 손바닥만 한 작은 공간일지언정 빠짐없이 꼭 놀이공간이 있으니 놀이방이 없는 카페는 이제 왠지 이상하고 어색하다. 마치 카페 안에 화장실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이제는 어린이 놀이방이 '카페 안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내부 시설'로 생각된다. 어떤 카페들은 내부 공간이 부족해서 건물 내 공용 화장실을 이용하게 한다거나 외부의 다른 시설의 화장실을 빌려 이용하길 권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린이 놀이공간도 마찬가지다. 어린이 놀이방을 둘 여력이 없는 소규모 매장인 경우 놀이 공간이 없는 경우도 있었지만, 약간의 공간만 허락된다면 그곳은 어린이 고객들을 위한 전용공간으로 꾸며진다.

대부분의 좌석이 야외테이블인 szklanka의 경우 놀이공간도 야외에 있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 가족이 애용하는 카페가 되었다.




처음에 폴란드의 카페가 '심상치 않다'라고 느낀 건 스타벅스에서였다. 스타벅스는 글로벌 체인 브랜드이기 때문에 전 세계 어느 매장을 가도 비슷한 인테리어와 비슷한 메뉴를 제공하며 '복붙'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이곳 폴란드의 스타벅스에는 전 세계 다른 점포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시설이 있다. 그냥 밖에서 볼 때는 한국에 있는 매장과 전혀 다른 모습이 없었는데, 매장 안쪽의 작은 공간에는 아이들 주방놀이가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테이블 하나? 혹은 두 개가 나란히 들어갈 만한 작은 공간. 그런데 이 공간에 있는 소소한 장난감이 매장 안의 전체 분위기를 확 바꿔버린다. '우리는 어린이를 환영합니다.'라는 메시지가 공간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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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가장 가까운 스타벅스인 이 매장에 처음 방문했을 때는 추운 겨울이었다.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고 남편이 "스타벅스에 들러서 커피나 한 잔 하고 갈까?"하고 물었다. 날씨는 더없이 스산했고 따뜻한 커피와 아늑한 실내공간이 절실했지만, 한 손엔 뜨거운 커피를 들고 다른 한 편으론 아이들의 칭얼거림을 받아주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딱히 카페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모처럼의 외출인데 그냥 집에 가기에는 아쉬웠던 주말, '그래, 딱 10분만 있다 오자.' 하는 생각으로 매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매장 안에 있는 작은 놀이공간을 보자마자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그곳으로 향하면서 외투도 벗지 않고 장난감을 향해 돌진했다. 나는 자연스레 놀이공간과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여유롭게 커피를 주문하고, 아이들을 바라보며 뜨거운 커피를 위험하지도 부산스럽지도 않게 마실 수 있었다. 이날 아이들은 스타벅스에만 있는, 집에 없는 색다른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따뜻한 코코아와 쿠키를 먹으며 쉴 새 없이 조잘대었다. 아이들을 보고 조용히 하라며 눈치를 주는 어른은 없었다. 아이들은 그들의 공간인 놀이공간 안에 있었고, 그곳은 아이다운 적당한 소음이 허락되는 장소였다. 사실 그 누구도 스타벅스 매장의 에스프레소 머신과 고객을 호출하는 목소리보다 데시벨이 큰 소리를 내긴 어려울 것이다. 나도 모처럼 남편과 얼굴을 마주 보고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커피와 함께하는 편안한 휴식을 누렸다. 정말 많은 곳을 여행했고, 많은 나라에서 스타벅스에 가 봤지만 이렇게 어린이 놀이공간이 따로 마련된 매장은 처음이었다. 아이들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지만 아이들도 편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 아이를 동반한 고객도 스스럼없이 방문할 수 있고, 아이들도 즐겁게 모여 놀며 편안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 같은 스타벅스인데 한국에 있는 스타벅스와는 엄연히 다른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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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아이들과 함께 도장깨기 하듯 동네의 카페들을 탐험했다. 신기하게도 거의 모든 카페에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놀이공간이 있었다. 심지어 집에서 제일 가까운, 2인용 테이블이 딱 세 개만 들어가는 작은 카페에도 장난감 피아노와 어린이 그림책, 그리고 보드게임과 퍼즐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큰 규모의 놀이방이 있는 카페도 물론 좋아했지만, 이렇게 소소한 놀잇감이 있는 카페도 정말 좋아했다. 나는 새로운 카페를 방문할 때마다 그곳의 인테리어와 커피 메뉴를 탐색하고, 아이들은 놀이방의 장난감과 달콤한 디저트를 탐색했다. 모두가 행복한 외출이었다.


카페에 아이들 놀이방이 있다고 해서 꼭 나처럼 아이를 동반한 어른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곳에서도 업무 미팅이라든지, 독서라든지, 친구와 담소를 나눈다든지 하는 일상적인 카페의 모습이 연출되고 있었다. 누군가는 카페에서 공부를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대화를 나누고, 누군가는 편안히 휴식을 취하고, 그리고 또 누군가는 이곳을 즐거운 놀이의 장소로 탐색했다. 아이들이 이렇게 있으면 카페의 분위기를 망치거나 왠지 다른 손님들에게 방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건 나의 편견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폴란드에 살면서 한국에도 이런 카페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나라에서 박물관이나 과학관 같은 큰 장소들도 많이 놀러 갔지만 일상에서 소소하게 아이들과 자주 방문하는 공간, 가장 가볍게 외출할 수 있는 만만한 공간은 바로 동네의 카페였으니까. 일 년에 한두 번 방문하는 곳이 아니라 어제 가고 오늘도 또 갈 수 있는 그런 곳.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경험하는, 그리고 아이들도 하나의 고객으로서 소중히 대접받는 장소. 폴란드의 여러 카페들은 내가 이곳에서 가장 보물같이 여기는 공간이었다.


사실 카페에 마련된 놀이공간들을 보면 낡고 망가진 장난감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또 어떤 곳은 테이블 한두 개 놓을 수 있을 만큼 작은 공간이라 그다지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러나 어느 장소에서든 어린이를 동반한 보호자들이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배려심이 느껴진다는 건 정말 감사하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간직할 유년 시절의 기억 속에는 커다란 놀이공원, 박물관, 그리고 시간과 비용을 들여 찾아간 여행지만 있는 건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엄마 손을 잡고 산책하듯 다녀온 동네 카페에서 마신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이 더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지도 모른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한다. 아이들의 일상이 소소하지만 행복한 이벤트로 채워지려면 부모와 아이가 함께 여유로운 휴식시간을 보내기에 부담 없는 이런 동네의 카페가 더 많아져야 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면 주인공 김지영이 한 손에 커피를 든 자신을 보고 '맘충'이라 부르는 사람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어쩌면 폴란드에 사는 사람들은 그 영화 장면을 보며 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엄마가 맘충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폴란드와 가까운 북유럽에서도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아빠들을 부르는 호칭이 '라테 파파'가 아니던가. 어떻게 보면 커피라는 음료는 육아하는 자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기호식품인데, 그렇다면 카페라는 공간도 아이들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곳이 아니었을까.


사람에게는 누구나 집, 일터를 벗어나 격 없이 모여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편안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 누구나에 있어서 아이들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우리 양육자들도. 한국에서도 아이들을 배려하는 이런 카페들을 더 자주, 더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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