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도서관은 무엇이 다를까?

by 주정현
이 글은 작년에 발행한 #SEESAW매거진 #해외특파원이 발견한 제3의 공간의 게재글을 최근 시점에 맞춰 짧게 편집한 글입니다. 좀 더 자세한 도서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폴란드, 우리 동네 도서관> 글을 참고하세요



요즘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밀폐된 실내공간을 기피하는지라 한동안 도서관에 가지 못했다. 그러나 작년 한 해동안 아이와 함께 주중에 단 하루도 빠짐없이 제 집처럼 드나들던 공간은 도서관이었다. 5살 둘째는 유치원에 다니지 않는 대신 매일 엄마와 도서관을 방문해서 한 시간씩 책을 읽다 왔었다. 우리 모녀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었고, 지금도 무척 그리워하는 곳이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에 갈 때는 꼭 어린이도서관을 찾아갔었다. 어쩌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도서관을 방문할 때면 입구에서부터 조용히 하라고 한 번 주의를 주고 나서야 도서관 문을 열었다. 그런데도 아직 어린아이들이라 혼자서 신발을 벗는 게 어렵다든지 문손잡이가 무겁다든지 아이들이어서 생기는 어쩔 수 없는 부산스러움이 있었다. 그런 어려움을 한 차례 겪고 나면 왠지 시선이 나에게 쏠리는 것 같았고 도서관의 다른 방문객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도 어렴풋이 그걸 느꼈는지 혼자서 먼저 문을 연다거나 하지 않고 "엄마, 들어가도 돼요?"하고 조심스레 물어왔었다.

폴란드에서 처음 도서관에 갔을 땐 아이들이 들어가도 되냐고 먼저 물어본 적이 없었다. 이미 복도에서부터 통유리창을 통해 바라본 도서관의 모습은 흡사 '키즈카페'에 더 가까웠으니까. 누가 봐도 이곳은 아이들의 공간, 어린이들이 격하게 환영 받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입구에서부터 풍겼다.

이미지 출처: Remigiusz Grudzien


한국에 있는 도서관에서 어린이 서가는 가장 안쪽, 제일 구석진 자리에 따로 마련된 경우가 많았다.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의 일반 서가를 지나야지만 어린이 서가에 다다를 수 있었다. 폴란드의 도서관은 거꾸로다. 이곳에서는 어린이 서가를 지나치지 않고서는 일반도서 책장으로 갈 수가 없다. 어린이도서관이 아니라 성인과 청소년을 포함한 모든 연령대를 위한 공공도서관인데도 도서관 문을 열면 꼭 어린이 전용도서관 같은 느낌이 있다. 그리고 아이들은 신발을 벗고 자유롭게 도서관 안을 활보하며 책을 읽거나, 그냥 논다. 놀이매트, 인형, 어린이 의자, 빈백 등이 사방에 흩어져 있는 공간에 들어가며 아이들은 '이곳은 나를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신기한 건 어린아이들이 많이 모여있어도 크게 소란스럽거나 부산스럽지 않았다. 사실 도서관 입구와 사서 데스크 앞은 출입하는 방문객들과 대출, 반납 서비스로 인해 가장 소음이 많이 발생하는 공간이다. 어차피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런 소음들과 아이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책 읽어주는 엄마들의 목소리가 그냥 한 공간에 어우러져 있었다. 아이들이 서로를 더 배려하며 조심스럽게 활동할 수 있었던 건, 사서 데스크가 어린이 서가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바로 눈 앞에 사서 선생님이 앉아계시면 아무리 장난꾸러기 어린이라도 책을 찢거나 구기지는 못할 테니 말이다.



이 아름다운 공간에 아이들과 처음 갔을 땐, 사실 책은 단 한 권도 읽고 오지 못했다. 대신에 우리는 인형놀이를 실컷 하다 왔다. 이곳의 도서관에는 책만큼이나 인형이 잔뜩 있었다. 크기도, 종류도 다양한 동물 인형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래서 4살 둘째와 2살 셋째의 눈에는 책보다는 집에서 한 번도 가지고 놀지 못한 처음 보는 인형들이 더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자꾸 반복해서 도서관에 가다 보니 자기가 좋아하는, 특별히 정이 가는 도서관 인형도 생겼다. 엄마가 책을 읽어줄 때면 자기가 좋아하는 인형을 꼭 껴안은 채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집에 와서 함께 침대에 누우면 가끔 "도서관에 있는 그 호랑이 인형은 잘 있을까?" 하며 인형의 안부를 궁금해하기도 했었다.

처음에는 집 근처에 있는 일부 도서관만의 특징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거의 모든 도서관의 어린이 서가에는 이렇게 인형이 있었다. 덕분에 아이는 새로운 도서관에 갈 때면 새로운 책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렘과 함께 새로운 인형을 만날 수 있다는 기쁨도 크게 느꼈다. 어른의 시선으로 보기엔 별 거 아닌 소품이었는데, 아이들에게는 도서관과 친해질 수 있는 큰 계기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인형은 도서관에서 큰 소음을 내지 않고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놀잇감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동물 모양의 빈백이나 소파 위에서 아이들은 자유롭게 도서관을 탐색하며 즐기다 갔다. 때로는 책에서 방금 읽은 이야기를 동물 인형들을 가지고 역할놀이를 시연해 보이기도 했다. 도서관에는 꼭 책만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니 아이들에게는 더 매력적인 공간이 되었다. 나도 아이들이 다 커서 집에 많은 인형이 필요 없어지는 날이 오면, 이곳에 인형들을 기증하고 싶었다.


폴란드에 와서 아이와 함께 매일같이 도서관을 방문하면서 아이는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한국에서보다 더 편안하고 즐겁게 받아들였다. 나도 아이를 동반한 엄마의 입장에서 이곳에서는 더 환영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널브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경직되지 않은 자유로운 공간 속에서 좀 더 놀이에 가까운 자유로운 활동으로 '독서'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좀 더 자주 도서관을 방문하고 싶어졌고 아이들이 좀 더 책과 가까운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도 생겼다.


도서관 빈백에서 아이와 함께 뒹굴거리며, 창문 밖으로 스며드는 햇살을 느끼던 그 순간이 그립다. 옆집 사랑방 같았던 그 공간에, 또다시 매일 출석도장을 찍을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이전 14화한국 카페에는 없지만 폴란드 카페에는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