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네 쟁탈전이 없는 놀이터

by 주정현

한국에 살 때는 세대수가 많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 살았던 지라 놀이터가 정말 많았다. 바로 집 앞에도, 산책로 뒤에도, 작은 길 하나만 건너면 있던 신혼집 앞에도. 아이들은 '성 놀이터', '배 놀이터', '콩나물 놀이터' 등등 각 놀이터마다 있는 특색 있는 놀이기구의 모양을 보고 자기네들끼리 이름을 붙여 놀이터를 구분했다. (물론 어른들은 '327동 앞 놀이터'와 같은 매우 딱딱한 이름을 사용했지만.) 그러나 이 모든 놀이터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으니, 바로 그네 의자는 딱 2개밖에 없다는 거였다.

아이들이 많은 동네였다. 전국 최고의 초등학교 과밀학급을 자랑하는 동네였으니까. 나도 여기서 큰애와 막내를 낳았고, 신생아에서부터 사춘기 아이들까지 모든 연령대의 아이들이 버글버글했기에 날씨가 좋은 날에는 어김없이 놀이터가 북적였다. 그런데 미끄럼틀도, 철봉도, 목마도 모두 아이들이 스쳐 지나가는 놀이기구였던지라 비교적 회전율이 빨랐지만 그네만은 달랐다. 놀이터에 아이들은 수십 명인데 그네는 딸랑 2개. 그네 양 옆에는 늘 항상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었고, 때로 그 기다림은 5분, 10분을 넘어서 30분 이상 이어지기도 했었다. 일찌감치 그네를 포기하고 다른 놀이기구에서 노는 친구들은 저만치서 즐겁게 놀고 있는데, 그네를 포기하고 친구들에게 달려갈 것인가 아니면 끈덕지게 이 앞에서 기다려야 할 것인가... 아직 어린아이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선택의 갈림길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을 대신해서 그네 옆에서 차례를 기다려주는 엄마들도 있었다. "엄마가 여기서 줄 서고 있을 테니까 그동안 너는 저기서 놀고 와." 한 엄마가 그렇게 나서면, 다른 아이들이 자기 엄마 보고도 대신 기다려달라고 졸랐다. 큰 애가 일곱 살이었을 때, 나는 막내를 낳았다. 3살 둘째도 있었고. 나는 아이를 대신해서 가만히 그네 옆에서 차례를 기다려 줄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놀이터가 붐비는 평일 오후에는 아이는 그네를 탈 수가 없었다. 어른스러웠던 첫째는 다른 친구들과는 엄연히 달랐던 자기의 상황을 이해하고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럴 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가끔은 타이밍이 좋게 그네가 비어있을 때도 있었다. 빈 그네 의자가 내 레이더망에 포착되면, 나는 다른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슬그머니 큰애 옆으로 가서 지금 그네가 딱 비어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남들보다 달리기는 한참 굼뜬 큰애가, 항상 달리기 순위는 뒤에서 세는 게 훨씬 간편했던 그 애가 그네로 달려가기 시작하면 그걸 먼저 알아채고 잽싸게 달려와 그넷줄에 먼저 손을 올려놓는 아이가 있었다. 먼저 잡았으니 먼저 임자이긴 한데... '우리 아이가 먼저 그네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고!' 하며 속으로 소리 없이 절규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그네를 향해 한창 달려가던 첫째도 그네를 먼저 점유한 그 아이를 몇 번 쳐다보다가 슬쩍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동네의 친한 엄마들이랑 만날 때면 각자의 '그네 전쟁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내가 그냥 내 돈 들여서 아파트 놀이터에 그네 몇 개 더 두고 싶다고 성토하곤 했었다. "아유 진짜 그놈의 그네." 하고 들먹이면서.




그래서 폴란드에 온 첫 해, 나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놀이터에서 '올레!'를 외쳤다.

한 놀이터에 그네 의자가 다섯 개가 있었다! 아이들의, 혹은 가끔 엄마들까지 가세하는 그네 전쟁을 지켜보며 지인들이랑 이놈의 놀이터에 그네 의자를 한 대여섯 개쯤 주렁주렁 달아야겠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그 농담 속의 그네는 실재하고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이 머나먼 폴란드에. 지인들에게 사진을 공유하자 모두들 '꿈에 그리던 그네'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이 그네를 본 순간 한 가지를 확신할 수 있었는데, 이 놀이터의 설계자는 분명 아이를 직접 키워본 사람이었을 것이다.

다섯 개의 그네 의자 중 두 개는 허리에 안전바가 설치되어 있는 유아용 그네였다. 세 살 셋째는 유아용에, 다섯 살 둘째는 일반 의자에 앉았다. 아이들은 실제로 꽤 어렸을 때부터 그네를 타길 좋아한다. 집 앞 놀이터에 저런 영유아용 그네가 있었던 미국에서는 아이가 유아용 식탁의자에 앉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그때부터 그네를 태웠다. 보행기 의자와 똑같이 생긴 그네 의자라서 아주 어린 아기가 타기에도 안전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저런 그네의자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누나들이 하는 건 뭐든지 다 따라 하고 싶어 하는 막내 때문에 나는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그네를 태웠다. 한 손으로는 그넷줄을 붙잡고, 한 손으로는 아이를 붙잡고. 그러다 한 번은 그대로 균형을 잃고 뒤로 고꾸라져 엉덩방아를 찧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크게 다칠 뻔했으니 다시는 그렇게 타면 안 되는데, 그 뒤로도 아이는 끈덕지게 그네를 타게 해달라고 조르니 어쩔 수 없이 다시 그네에 올랐다.


아이가 혼자서 제법 그네의자에 앉을 수 있게 자란 뒤에도 엄마는 절대 그네 앞을 떠날 수 없었다. 그네를 밀어 달라는 아이의 요청에 등 뒤에서 서 있을 때도 엄마는 항상 잔소리쟁이가 된다. 그넷줄 꼭 잡고 있어. 꼭 잡아야 해! 그래서 다섯 개의 그네의자가 주렁주렁 달린 양적으로 충분한 저 그네도 참 반가웠지만 질적으로도 만족스러운 저 유아용 그네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유아용 그네가 이제는 갑갑하고 불편한 큰 아이들에게도, 안전하게 그네를 탈 수 있는 안전장치를 원하는 어린아이들에게도 모두 환영받을 그네였다. 여섯 살 아이도 아주 높이, 아주 세게 그네를 타고 싶을 때면 안전바가 설치되어있는 그네로 자리를 옮긴다. 아이들마다 가지고 있는 재미와 스릴에 대한 기준은 나이와 성격에 따라 제각각 다른데, 또래에 비해 조심성이 많은 우리 아이들에게 안성맞춤인 그네였다.




올해 여름에는 놀이터에 못 보던 벤치가 하나 더 생겼다. 가만히 다가가서 살펴보니 기저귀 갈이대가 연결되어 있는 벤치였다. 여섯 살 터울의 동생을 데리고, 유치원 하원길에 큰애의 놀이터 투어를 따라다니던 생각이 났다. 저 벤치가 3년 전에 내가 살던 동네에도 있었더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이러니 폴란드의 놀이터에 매번 반할 수밖에 없다. 역시, 이 동네엔 놀이터 설계자든 구청 직원이든 '부모'가 살고 있다니까. 직접 아이를 키워보고 양육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봐야만 생길 수 있는 시설이었다.


황선준, 황레나 작가의 <스칸디 부모는 자녀에게 시간을 선물한다>의 머리글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스웨덴에서 박사학위 공부를 마친 저자는 한국에서 직장을 알아보고 한국에서 살기 위해 아이 셋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다. 그런데 스웨덴에서 생활을 정리하기 위해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자마자 아내 황레나 씨는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선언한다. 한국에 다시 가서 살겠다고 부모님과 약속하고 오지 않았느냐고, 왜 이제 와서 돌아가지 않겠냐고 따지는 남편에게 아내는 "동생 집이 있던 아파트에 아이들 놀이터가 어디 있었는지 기억나요?"라고 묻는다.


나는 아내가 무슨 얘기를 할지 이내 직감하며 얼버무렸다. 그러자 아내는 우리가 차를 세워둔 주차장은 아파트 앞의 양지바른 곳이었고, 아이들 놀이터는 아파트 뒤쪽 응달에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아내가 점심을 먹은 후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갔을 때 너무 추워서 10분도 채 되지 않아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추운 1월인 데다 햇볕까지 들지 않았으니 얼마나 추웠을지 짐작이 되었다.

아내는 그것만 보고도 한국에서 아이들과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대우를 받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의 아버지들이 차를 주차하는 공간은 겨울에도 햇볕이 잘 드는 양지쪽인 데 반해 아이들 놀이터는 춥고 그늘진 곳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그 아파트를 설계한 사람은 분명 남자였을 것이고, 그렇게 아파트를 설계해도 누구 하나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며 살아가겠어요?"라고 했다.

황선준, 황레나 저 <스칸디 부모는 자녀에게 시간을 선물한다>


폴란드 어느 지역을 여행하든 가장 경치 좋고 아름다운 곳엔 꼭 놀이터가 있다. 이 아름다운 장소를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도 함께 느끼고 즐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듬뿍 담겨있다. 어른들이 즐길만한 술집과 카페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곳에서 함께하는 아이들도 행복할 수 있도록... 우리나라에도 이런 공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놀이터의 모습에서 아이들과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대우를 받는지 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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