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과학의 원리가 숨어있는 생일 이벤트

코페르니쿠스의 나라, 폴란드에서 이루어진 조금은 특별한 생일파티

by 주정현

지난 1월 4일은 막내의 세 번째 생일이었다. 폴란드의 모든 학교와 유치원은 크리스마스 전 주말부터 주현절이 있었던 1월 6일까지 모두 방학이었기 때문에 막내는 친구들이 아닌 가족들과 오붓하게 생일을 보냈다. 아니, 엄연히 이야기하자면 한국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와 엄마, 아빠, 누나들과 함께 생일 전야를 보낸 후 약 200여 명이 함께 탑승한 폴란드행 비행기에서 생일을 보냈다. 이제 겨우 만 3살이라 친구들과 함께 생일파티를 하고 싶다며 조를 나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맞벌이 부부가 많고, 그런 부모 덕분에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폴란드의 아이들은 사실 이 나이 때부터 유치원 친구들을 초대해 생일파티를 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그래서 그런 친구들을 지난 1년 동안 봐 왔던지라 친구들과는 다르게 여러 가지 일들로 우야무야 막내의 생일이 흘러가버린 것 같아 많이 아쉬웠다.

이런 아쉬운 마음을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조금 늦었더라도 유치원에서 생일 이벤트를 하자고 하셨다. '생일은 날짜 지나서 하는 것 아니다.'라는 한국적 미신은 이 나라에 없었다. 유치원 스케줄 상 가장 생일파티를 하기에 여유롭고 편할 것 같은 날짜를 담임선생님과 엄마가 상의해서 정했다. 생일보다 약 열흘 늦은 월요일 아침, 아이가 직접 고른 생일 케이크를 들고 유치원으로 갔다.

유치원 선생님이 보내주신 생일 축하 케이크 사진

전날 직접 색지를 잘라 케이크 토퍼도 만들고, 나이에 맞춰 초도 3개 보냈다. 간식시간 즈음 핸드폰으로 선생님이 생일 축하 케이크를 앞에 두고 다 함께 노래를 부르는 사진을 보내주셨다. 한창 케이크에 촛불 끄는 것을 좋아할 나이인지라 설레는 마음으로 케이크를 바라보는 막내의 표정이 마음에 들어 사진을 보고 또 보고 있는데 선생님이 연달아 사진을 몇 장 더 보내주셨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수업 사진을 덤으로 더 보내주신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아이들을 데리러 유치원에 갔더니 선생님과 아이들의 설명을 듣자 보내주신 사진 역시 생일 축하 이벤트 중 하나였던 것을 알았다. 가운데 펼쳐놓은 카펫을 자세히 보면 한가운데에 붉은 꽃 모양의 초를 켜 놓았다. 이것은 태양을 상징한다. 그리고 태양을 중심으로 주변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생일 주인공인 막내는 지금 계절(겨울)을 상징하는 그림 앞에 서서 선생님께 지구를 들고 세 바퀴를 돌아야 한다고 설명을 듣고 있다. 막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이 3년이라서 그동안 지구가 태양을 세 바퀴 돌았으니 생일 주인공이 지구를 들고 똑같이 세 바퀴를 도는 것이다. 아이들의 설명을 듣는 순간 단번에 이 사진이 이해가 되었고, 아니 뭐 이렇게 신박하고 과학적이고 심지어 교육적인 생일 축하 세리머니가 다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연이어, "아, 과연 코페르니쿠스의 나라 폴란드 답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페르니쿠스는 폴란드의 천문학자로 모두가 알다시피 지동설을 처음 주장한 과학자이다. 그는 16세기에 저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에서 지동설을 주장하였으나 당시 교회의 정설에 반하는 이론이라 이 책은 그의 사후에나 출판되었다. 그 전에는 당연히 지구가 세상의 중심인 줄 알았던 사람들에게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며, 지구가 행성의 하나로서 태양의 주위를 공전한다는 사실은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이론이었다. 그의 우주론이 수백 년의 시간을 거쳐 지금은 이렇게 세 살 어린이의 생일 축하 이벤트에까지도 활용되는 모습을 보니 뭔가 신기했다. 그리고 이렇게 위대한 이론을 발견한 과학자가 바로 이 나라, 폴란드 사람이라고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게 가르쳐 줄 수 있는 선생님이 좀 부럽기도 했다.

이제는 세 살 꼬마도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 아닌 것을 안다.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는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쏟는 관심이 아주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류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제는 우리가 속한 작은 행성계 안에서조차 우리가 중심에 있지 않다는 것을, 다른 행성계들처럼 우리 은하계의 주변부, 눈에 띄지 않는 변두리에 있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우리 은하조차도 수십억 개의 은하계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우리가 사는 지구가 우주 속에서 차지하는 의미란 광활한 아프리카 대륙에 사는 수천 마리 코끼리의 꼬리털 위에 앉은 벼룩에 코딱지 속 바실러스균 정도일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세상의 중심은 나다!라고 힘껏 소리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아이들이다. 먼 폴란드라는 나라로 이사와, 놀이터에서 노는 동네 5살짜리 꼬맹이만도 못한 폴란드어 실력을 가지고, 아이들 먹이고 입히고 재우며 그저 하루하루를 아등바등 살고 있는 나를 보면, 가끔 하는 일 없이 나이만 먹어가는 내 인생이 '수천 마리 코끼리의 꼬리털 위에 앉은 벼룩의 코딱지 속 바실러스 균' 같이 하찮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해외에서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의 삶이란 그 고립감으로 인해 때론 그렇게 자존감이 바닥까지 내려가는 날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하염없이 바닥으로 내려가는 내 자존감과는 다르게, 본인이 세상의 중심이며 우주의 중심인 것처럼 천진난만하게 행동하는 아이들을 보면 그 '세상의 중심을 키우는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게 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 지구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3년의 시간 동안 내가 갈아준 기저귀를 쌓아보면 아마 웬만한 건물보다 높이 쌓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동안 지새웠던 수많은 밤들, 태양이 저렇게 빛나는 순간이 아니라 내가 사는 이 땅 반대편으로 돌아갔을 시간마저 한밤중에 일어나 수유를 하고, 열이 나는 날에는 덩달아 잠 못 자며 밤새 간호하는 그런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저 3년이 그냥 평범한 3년은 아니었지, 하며.



그다음 날에는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모여 막내의 지난 3년 동안 찍은 사진을 모아 생애 연보를 만들었다. 태어난 다음날 찍었던 사진부터 지난달 놀이터에서 찍었던 최근의 사진까지. 한국에서 어린이집을 보내는 동안에도 매달 생일인 아이들을 모아 축하 이벤트를 열어주었다. 하지만 여러 과자와 과일과 떡이 한가득 차려진 알록달록한 생일상 옆에서 반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노래를 부르는 게 전부였었다. 저렇게 생일 주인공의 사진을 모아 포스터를 만들고, 반 아이들이 함께 모여 지난 3년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 걸 보니 그동안 아이를 키운 엄마도, 잘 자라준 아이도 지난 시간 동안 모두 수고했다고 응원해주는 것 같았다. 지난 시간을 추억하며 아이도 축하의 마음과 사랑을 가득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교육적인 효과는 덤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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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만든 포스터는 주인공의 생일이 있는 1월 내내 유치원 입구에 붙어있을 예정이다. 저 올망졸망한 낙서 같은 그림들을 볼 때마다 피식 웃음이 나와야 하는데 주책맞은 엄마는 아가시절 막내의 사진에 꽂혀서 자꾸 코끝이 찡해지곤 한다. 사실 유치원에 보낼 저 사진을 고르는 날에도 이 주책맞은 엄마는 사진첩을 뒤적이며 얼마나 눈물을 글썽거렸는지 모른다. 조금은 이 특별한 생일파티 속에서 막내가 주변의 사랑을 듬뿍 느낄 수 있길, 그리고 '우주의 중심은 역시 나!'라고 더 큰 목소리로 외치며 아이답게 씩씩하게 그렇게 자라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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