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에서 조성진을 만나다

by 주정현

일 년 전 이맘때, 나는 많이 우울했었다. 아마 계절성 우울증이었던 것 같다. 가장 해가 짧았던 12월에는 연말과 크리스마스의 포근한 느낌이 있어서 오히려 아무렇지 않았는데, 한참 계절의 변화가 느껴지던 시월 경에는 그 우울증이 가장 심했다. 결국 적응을 포기하고 폴란드 현지 유치원을 그만둔 아이와 24시간 붙어 지냈던 것도 아마 영향을 미쳤으리라. 여러모로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가을이었다.


내가 사는 이 나라를, 이 도시를 사랑하고 싶었는데 그게 힘들었다. 언어를 배운 지 1년이 넘었는데 진짜 간단한 인사말을 건네는 것조차 너무 힘들었고, 이 스산한 날씨는 어떻게든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보려 애썼지만 정말 눈곱만큼도 맘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이 땅과 궁합이 잘 맞지 않다고 느꼈다. 분명 이 도시를 사랑하며, 이곳에서 잘 지내는 한국인들도 있을 텐데 나는 그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


생각이 그렇게 흘러갔을 때, 문득 이 도시를 진하게 사랑할 것 같은 사람이 하나 떠올랐다. 조성진이었다.


2015년의 10월. 바르샤바에서 열린 쇼팽콩쿨에서 우승했던 피아니스트. 이 도시에서 인생 제2막의 개막을 화려하게 알렸던 사람. 그에게는 이 도시가 '가장 영광스러운 승리의 장소'로 기억되지 않을까. 그에게는 나를 한없는 우울로 끌어당기는 이 바르샤바의 시월 날씨가 그립고 청량한 느낌으로 추억되지 않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을 때, 나는 그날부터 조성진의 피아노 리사이틀 동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뭔가 위로가 될 것 같아서.


그는 유난히 이 도시와 궁합이 잘 맞는지(누군가는 쇼팽의 가호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항상 바르샤바에서의 연주는 호평뿐이었다. 2015년의 쇼팽콩쿨 동영상부터 시작해서, 사실 그 후로 매년 바르샤바에서 피아노 리사이틀을 가져왔던 그의 연주를 쭉 찾아들었다. 가장 많이 들었던 건 쇼팽의 폴로네이즈 op. 53, 그리고 모차르트의 피아노를 위한 론도 제3번 A 단조였다. 드라마 <밀회>에 나왔던 주인공의 대사를 회고하면서.


론도 A단조. 이 곡을 치면서 하루를 시작해요. 햇빛이 나건, 비가 오건, 기분이 좋건, 울적하건, 매일 그날의 얘기를 들려줘요. 또 그게 다 인생이라고 말해요. 모차르트의 비밀이죠.




매일 인터넷으로 피아노 연주 동영상을 찾아 듣다가, 문득 유튜브가 아닌 실제 공연장에서 연주를 들으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졌다. 마침 2020년은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쇼팽콩쿨이 있는 해였고, 딱 1년 전인 2019년 10월 1일에 티켓팅이 시작되었다. 늘 똑같았던 날들이었는데, 새로운 할 일이 추가되자 일상에 활기가 생겼다. 10월의 첫날, 버벅대는 폴란드 인터넷과 씨름하다가 오후 1시가 넘어서야 티켓 일곱 장을 예매할 수 있었다. 그때쯤이면 아이들도 다시 유치원이 되었든 학교가 되었든 다시 기관 생활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평일 오전 시간으로 네 장을 사고, 그렇지만 또 세상일은 알 수 없으니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주말 티켓도 세 장을 구매했다. 파이널 라운드 티켓은 경쟁이 치열해서 예매에 실패했지만, 나 같은 클래식 막귀에겐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스스로 만족했다.


원한다면 정말 훌륭한 연주자들의 공연을 쉽게 찾아 들을 수 있는 도시. 쇼팽의 도시 바르샤바다. 매년 여름이면 와지엔키 공원에서 열리는 피아노 리사이틀도 너무 좋아서 네 번이나 다녀왔지만, 필하모니 실내악 홀에서 듣는 연주는 또 다른 느낌이겠지. 내가 이 곳에 살고 있어서 정말 진심으로 기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향수병 따위는 훨훨 날려버릴 만큼.


그러나 코로나 19로 인해 쇼팽콩쿨은 2021년 10월로 연기되었다.



원래대로였다면 쇼팽콩쿨이 시작되었어야 했던 2020년 10월 1일. 바르샤바 국립 필하모닉에서 콩쿨은 열리지 않았다. 대신에 10월 한 달 동안 역대 콩쿨 수상자들의 피아노 리사이틀(przed wielkim konkursem recitlae mistzowkie)이 열렸다. 한 달 간의 공연 시작을 알리는 첫날의 주인공은 바로, 조성진이었다.



한국 시간으로는 추석이었던 지난 수요일. 나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고국의 피아니스트를 만나러 공연장으로 갔다. 고대하던 생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내가 상상했던 공연장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전체 콘서트홀 좌석의 50%의 티켓만 판매했었고, 옆 사람과 한 칸 띄워서만 앉을 수 있었다. 인터미션 때 화장실을 가거나 자리 이동을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그래서 피아노 조율사가 모두가 빤히 쳐다보는 가운데에서 조율을 해야 했던, 조금은 독특한 풍경이 연출되었다. 정말 많은 것들이 달랐던 콘서트 풍경이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그의 연주를 직접 들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피아노의 첫 음이 공연장에 울려 퍼진 순간, 그동안 유튜브에만 익숙해졌던 내 귀에게 너무 미안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들이 온라인으로 대체되고, 언택트의 시대에 정말 많은 공연들을 녹화본으로 감상했지만... 이 느낌은 '온라인 따위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곡의 해석, 연주의 기법, 이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만한 수준 높은 청중이 아니어서 그날의 연주에 대해 글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실제 연주가 이루어지는 홀에서 연주자와 실시간으로 그 자리에 함께한다는 건, 피아니스트가 아주 오랫동안 갈고닦아 준비한 최절정의 순간에 함께한다 걸 체험했다. 그의 연주는 사소한 기교나 잡다한 생각 따위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것은 몸으로 익힌 완벽한 몰입의 상태였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 앞에 앉아 수백, 수천번을 반복했던 연마의 시간. 그리고 그 응축된 시간의 힘이 무대 위에서 터져 나오듯 쏟아졌다. 세계 최정상 피아니스트의 몰입의 현장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나는 숨 쉬는 것도 까먹은 채 그의 연주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K94 마스크를 쓰고 숨 쉬는 걸 까먹으면 심각한 호흡곤란이 올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콘서트홀에서 실제로 울려 퍼지는 그랜드 피아노의 음색과 마치 흐느끼듯이 쏟아지는 그의 연주는, 구차한 나의 글솜씨 때문에 '너무 감동적이었다.'는 문장 외에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너무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공연이 끝나고 무대 뒤에서 그를 직접 만나 인사를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너무 감동적인 연주를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뻔하디 뻔한 인사말밖에 할 수 없었다. 기다리면서 시라도 한 편 적어 그에게 헌사했어야 했는데....


기립 박수하는 관중 속에... 마스크를 쓴 내 얼굴을 1초 만에 발견하고 피식, 웃었다. 사진출처: @chopininstitut


그랬다. 공연이 끝나고 나와 일행 몇 명은 공연장 뒤에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개인적으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일행 중에 와지엔키 공원에서도 리사이틀을 가진 적 있었던 폴란드인 피아니스트 분이 한 분 계셨는데 그가 연주자들이 공연이 끝나고 나오는 뒷문을 알려주었다. 경비아저씨로부터 '아직 건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라는 첩보를 입수하고, 우리는 박스오피스 앞에서 서성대며 그를 기다렸다. 기다림이 길어지자 혹시 이미 밖으로 나온 게 아닐까 싶어 경비아저씨에게 거듭 물어보고 2층 실내를 비추는 CCTV도 확인했다. 공연이 다 끝났으니 퇴근하는 직원들의 눈빛도 감내하면서 기다린 지 30분째. 10대 때에도 안 하던 사생팬 짓을 30대 중반에 여기서 한다며 서로 웃었다. 딱 10시까지만 기다리다 가자, 했는데 아쉬움에 5분을 더 기다렸다. 그는 정확히 10시 3분에 공연장 밖으로 나왔다.


둘이 함께 나란히 찍은 사진은, 비록 얼굴의 절반은 마스크에 가려 있어서 아쉬웠지만, 쳐다만 봐도 우울감이 확 가셨다. 생각해보니 올해는 코로나 19로 가족 외에 사람들은 전혀 만나지 않고 두문불출했던 한 해였던지라 조성진과 찍은 이 사진이 올해 외간 남자(!)와 찍은 첫 사진이었다. 아마 마지막 사진도 되겠지. 올해 남편과 아들 외에 나랑 단둘이 사진 찍은 남자는 그가 유일하다... 고 자조하며 사진을 보며 피식피식 웃었다. 주책이다. 그런데 주책스러울 수 있어서 즐거운 하루였다.


이제 바르샤바의 10월이 어떻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날의 콘서트를 떠올릴 것 같다. 작년에는 콩쿨티켓을 예매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조성진의 연주를 찾아들었던 한 달이 바로 시월이었고, 올해는 그의 연주의 잔상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기억에 붙잡고 싶어서 또 열심히 연주를 찾아 듣는 한 달이 되었다. 내년에는 아마 연기되었던 콩쿨을 찾아가 또 다른 신예의 화려한 데뷔를 기대하며 연주를 찾아 듣는 한 달이 되겠지. 스산하고 쓸쓸한 폴란드의 가을 날씨 속에, 햇빛이 나건, 비가 오건, 기분이 좋건, 울적하건, 매일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피아노 연주가 있었다. 이건, 폴란드에만 있었다.

이전 19화폴란드 맥주는 여행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