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와 위로

『삼베학교』 에피소드.5

by 루화


산불은 길안면과 임하면을 타고 금소마을을 집어삼켰다.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싼 약산은 야속하게도 거의 다 타버리고 불에 탄 재가 마을 곳곳에 남았다.


4월의 봄. 한창 초록으로 옷을 갈아입을 때인데, 작년과는 다르게 검은색을 띠는 마을의 풍경이 너무 낯설다.

시원하게 마셨던 약산의 약수와 나비들이 반겨주던 약산의 둘레길을 언제 다시 오를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소의 햇빛은 화사하다.

마을 정화활동을 통해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자신이 살던 집과 일터가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구호물품을 나르고 마을을 쓸고 닦으며 씩씩하게 이겨내고 있었다.

정화활동을 마치고 국수와 막걸리를 나눠 먹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자리에서 마을 사람들의 강한 생명력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삼베수업은 한 달 만에 재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선생님들이 너무 반가워서 한 분 한 분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눴다.

늘 그렇듯 오늘도 테이블 가장자리에 둘러앉아 믹스커피와 집에서 싸 온 아침 참을 나눠 먹는다.


“강선생님 집이 피해를 입었어요.”


“아이고, 세상에.”


“체육관에 사람이 많아서 도산 근처까지 가셨다고 하네요.”


”아이고 멀다. 그래서 학교에 못 나오셨구나.”


”조립식 주택이 지어지면 그때나 오실 수 있을 것 같다네요.”


회장님이 들어오신다.


"다들 고생이 많으십니더.”


“아이고, 회장님 집은 괜찮은겨.”


”우리 집 뒤에 가스통이 있는데 그걸 한 손에 번쩍 들고 나르고 한 손으론 불 끄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습니더.”


”위급할 땐 그렇게 초인적인 힘이 나오는 거야.”


”그러게 말입니더. 그래도 다들 무사하니 다행입니더. 자, 오늘은 선생님 한 분이 더 오셨어요. 들어오세요.”


누군가 교실 안으로 들어온다.


“자, 우리 선생님은 이번에 문화재로 지정된 선생님 이십니더.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오셔서 교육을 진행하실 거예요. 잘 부탁드립니더."


작은 키에 검은색 파마머리. 꽃무늬 옷을 입은 문화재 선생님은 역시나 우리네 할머니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자, 그럼 오늘도 수고하세요.”


회장님이 나가시고, 문화재 선생님은 사람들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시곤 내 옆자리로 오신다.

다들 익숙하고 잘 아는 사이인 것 같은데, 나는 영 낯설고 어색하다.


“서울에서 왔다고? 어케 그리 멀리서 왔나?”


선생님은 자기 앞에 삼뚝가지를 놓고 파란색 플라스틱 바구니를 가져와 옆에 놓는다.


“자, 내 하는 거 보고 따라 해 봐라.”


선생님은 가늘게 짼 삼 한올을 삼뚝가지에서 빼내더니 삼을 입에 물고 침을 바른다.

고르게 훑어 침을 바르고, 삼의 끝부분을 이로 잘근잘근 씹는다.


“내 이가 옳챦아서 매가 잘 안 난다.”


‘이가 왜 안 좋으세요?’


“이가 내께 아니라 옳챦다.”


선생님은 자신의 이를 보여주신다. 선생님의 안쪽 이에 골이 나 있다.


‘어? 이골이다!’


‘이골이 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어떤 일에 아주 익숙해지거나 버릇처럼 몸에 밴 것을 의미하는데, 삼을 이로 째서 생긴 골에서 그 뜻이 유래된 말이다.

선생님은 정말 이에 골이 날 정도로 반복해서 삼을 째고 삼으며 베를 짜온 것이다.


‘이골을 실제로 보게 되다니, 신기해요.‘


“별게 다 신기하다.”


‘그런데 선생님, 매를 낸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삼을 이로 째서 반으로 가르는 거라. 이렇게 두 올로 갈라서 매를 내야 삼을 삼지. 자, 봐라.”


선생님은 삼의 끝 부분을 이에 물고 두 가닥으로 갈라 매를 낸다.


“자, 이렇게 매를 내서 삼을 삼는 거야, 자, 봐라, 이렇게.”


선생님은 매를 낸 부분에 다른 삼의 머리를 이어 비빔대에 놓고 비벼 삼을 삼는다.


‘이렇게요?’


”그게 아니고, 이걸 이래 잡아야지.”


‘휴, 쉽지 않네요.’


”그럼, 쉽지 않지. 삼을 바구니에 날 때도 이래 날아야지, 그리 날면 실이 엉켜서 다 빠져분다.”


나는 내가 해보는 건 일찌감치 포기하고, 선생님의 몸짓을 가만히 바라본다.


‘선생님, 시범 다시 보여주세요.’


삼을 가볍게 쥔 엄지와 검지.

동그랗게 말린 통통한 손.

구부려 세운 새끼 손끝.


삼을 삼고 바구니에 나르는 움직임이 마치 물이 흐르는 것 같다. 선생님의 동작은 막힘없이 유연하게 흐른다.

바구니에 나르는 손짓이 마치 사뿐히 나는 나비의 날갯짓 같기도 하다.


나도 모르게 감탄이 튀어나온다.


‘선생님, 정말 아름다우세요.’


호랑이 선생님 같은 표정으로 삼을 삼던 선생님의 얼굴이 환하게 풀린다. 꽃처럼 웃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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