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삼기

『삼베학교』 에피소드.9

by 루화


6월 말, 어느덧 해의 중반을 지나고 있다.


삼베교육을 들은 지 3개월째.

안동생활에 루틴이 생기고 나름 삼베학교 분위기에도 잘 적응해가고 있다.


어느새 파란 바구니 안에 삼실이 많이 쌓였다.

선생님들이 바구니를 여러 번 비우고 채우는 동안 신입생인 나는 바구니를 한 번 채우는데 석 달의 시간이 필요했다.


굵기는 제각각, 꼬임을 덜 줘서 풀린 실들. 미숙한 손놀림일지라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삼은 삼실이 바구니를 가득 채우니 마음만은 뿌듯하다.


삼삼기는 삼베 공정 과정 중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스승님, 언제쯤 삼매기를 하나요?’ 여쭤보면

“다 삼으면 맨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런데 이 삼삼기란게 참 묘한 게, 삼을 삼다 보면 거의 완벽한 몰입의 상태로 들어간다.


그래서 나는 삼삼기를 좀 더 파해쳐보고자 한다.

묘하게 빠져드는 움직임, 삼삼기란 도대체 무엇인가?


‘삼삼기’는 삼베를 만들기 위해 쪼갠 삼 올들을 이어 실을 만드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특히 삼베 짜는 과정에서 중요한 작업 중 하나로, 가늘게 쪼갠 삼 올들을 손으로 비벼서 이어 길게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라고 AI가 대답한다.

나는 삼삼기를 직접 삼으면서 느끼는 것들을 다양한 감각으로 풀어본다.


먼저, 삼을 삼으면서 내가 하는 동작을 시각적으로 해설해 본다.


삼뚝가지에 걸린 삼가닥 하나를 빼낸다. 가닥에서 갈라져 나온 잔털들이 있다. 가닥을 입에 물고 침을 발라 쭉- 훑어 잔털을 말끔하게 정리한다. 침을 바른 가닥을 비빔대에 놓고 위로 비벼서 꼰다. 꼰 가닥을 엄지와 검지로 잡고 한번 훑어서 과하게 꼬인 부분을 편다. 가닥의 꼬리 부분에 상대적으로 굵기가 굵은 부분을 찾는다. 그 부분을 이로 물고 반을 가른다. 아래가닥, 윗 가닥, 이렇게 두 가닥으로 갈라진다. 아래 가닥을 윗 가닥보다 더 굵고, 길게 둔다. 다음에 이을 비슷한 굵기의 가닥을 삼뚝가지에서 골라 빼낸다. 이을 가닥의 머리 부분에 침을 바르고, 아래 가닥에 먼저 비벼꼰다. 비빔대에 놓고 아래로 비벼 확실히 꼰다. 이은 가닥을 윗가닥과 합쳐 아래로 비빈 다음, 바로 위로 올려 비벼 마무리한다. 이게 한 사이클이다.


삼을 삼을 때는 소리보단 행위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몰입을 하다 보면 소리가 잘 안 들린다. 그런데 고요 속에서 정적을 깨듯 유난히 크게 들리는 소리 하나가 있다. 바로 ‘퉤,’ 하고 침을 뱉는 소리다. 삼가닥을 입으로 더틸 때(입에 물고 훑는 것을 ‘더티다’라고 한다.) 삼 보풀이 입에 걸리는데 이를 뱉어내는 소리이다. 그리고 또 하나, 바로 선생님들의 폭. 풍. 수. 다. (언젠가 기회가 나면 수다의 역사를 파해쳐보고 싶다...)


삼을 삼을 때 가장 흥미로운 건 다양한 신체부위에서 느낄 수 있는 촉각적 감각이다. 특히 양 손가락과 오른쪽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삼의 질감은 정말 다양하다.


거칠고 보드랍고 뻣뻣하고 부슬한 삼의 질감.


1. 삼가닥을 이은 꼬임 부분의 뻣뻣하고 거친 질감은 마치 나사의 회오리 결을 만지는 것과 비슷하다.

2. 바구니에 실을 날 때 삼실이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옮겨질 때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마찰과 미세한 진동.

3. 자리를 정리할 때 바닥에 떨어진 삼가닥들을 뭉쳐 작은 공처럼 만들 때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부슬한 질감.


삼실을 더틸 때 입에서 느껴지는 촉감은 어떤가?

질긴 삼을 이로 끊어낼 때 이와 이 사이에 걸리는 삼 보풀의 간지러운 질감, 입에 물고 더틸 때 혀나 입술을 베는 날카로움. 그리고 약간의 텁텁함과 가끔씩 올라오는 피맛?을 느끼며 삼을 삼는다.


그렇게 몰입하며 삼을 삼다가 가끔씩 고개를 들어 스승님을 바라본다. 스승님의 동작은 아주 유연하고 막힘없다. 입에서부터 손과 손가락으로 연결되는 동작이 끊김 없이 계속 흐른다. 그 동작을 한참을 보다 보면 경외심이 든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들이 긴 세월을 대신 말해준다. 삼삼기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 내가 가장 발견하고 싶은 건 삼삼기의 정서적 감각이다. 옛 어른들에게 삼삼기는 어떤 의미였을까? 그걸 느끼고 싶고 알고 싶다. 신체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감각들을 스승님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직접 해보니 하나 이해가 가는 건,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육체적 고통을 덜어내고자 수많은 말들과 노래가 오갔을 거라는 것.


몰입 후에 어김없이 올라오는 신체의 고통을 느끼며 오늘도 잘 삼았다 속으로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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