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베학교 에피소드.10
버스 첫차를 타고 도착한 삼밭.
오전 6시. 삼 수확이 한창이다.
“루화씨, 여기 이렇게 삼을 벤자리를 보시죠. 굵기가 다르지요. 밭의 가장자리에서 자란 삼은 옆에 빈 땅의 양분을 많이 빨아들여서 굵기가 굵고, 안쪽에서 자란 삼은 상대적으로 대의 굵기가 얇죠. 그래서 삼을 벨 때 가장자리 삼부터 베 놓고, 안쪽으로 차례대로 베나가는 겁니더. 대가 얇은 건 생냉이로 쓰고, 대가 굵은 건 무삼으로 씁니더. 이렇게 차례대로 베어야지 굵기와 길이에 따라 구분하기 수월하지요.”
회장님의 자세한 설명에 나는 삼을 벤 자리를 유심히 관찰한다.
낫으로 비스듬히 또렷하게 한 번에 잘려나간 삼의 밑동이 짤막하게 남아있다.
“삼을 베는 것도 요령이 있고 기술이 있습니더. 특히 삼베용으로 사용하는 삼은 밑동을 깔끔하게 베어야지 껍질을 벗길 때 수월합니더.”
수확을 하는 마을 어르신들의 움직임은 군더더기가 없다.
오랜 세월 저절로 몸에 밴 움직임이 무척 정교하고 깔끔하다.
나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혹시 작업에 방해가 될까 먼저 양해를 구한다.
“선생님, 저 삼베학교 학생인데요. 삼 수확하시는 거 멀찍이 떨어져서 관찰해도 될까요?”
“학생이에요? 네- 잘 보세요.”
“감사합니다.”
햇빛이 하늘에서 커튼처럼 내리쬔다. 그 햇살 아래 어르신들의 움직임은 마치 하늘하늘한 춤처럼 더욱더 아름답게 비친다. 삼과 바람과 지금 여기 축축한 땅에서 올라오는 향을 깊이 들이마신다.
왼발과 오른발이 땅을 딛는 스텝. 비스듬히 서서 잡은 삼을 살짝 뉘이고 낫으로 두어 번 베는 움직임에 가벼운 리듬을 탄다.
‘서걱서걱’
‘부슬부슬’
낫이 대에 닿는 촉감, 잎과 잎이 바람을 타고 펄럭이는 소리가 마치 청량한 빗소리 같기도 하다.
나는 땅에 가만히 앉아서 지금 여기를 느낀다. 이마와 볼에 닿는 바람. 나는 비로소 내 숨을 느낀다. 몸속에 깊이 담겼다가 내쉬어지는 고귀한 숨.
어르신들이 새참을 드시는 잠깐의 시간 동안 나는 삼 줄기가 무성한 곳에 자리 잡는다. 나는 더 깊이 삼을 느낀다. 잎의 펄럭임이 계속될수록 내가 딛고 있는 흙과 땅이 울창하게 울린다. 땅이 뜨겁다. 몸이 따뜻해진다. 자연 속에서 나는 살아있다. 이렇게 삼을 만지고 느낄 때마다 나는 이곳에 온 이유를 떠올린다. 자연 그 자체인 삼과 손을 잡고 그저 이렇게 머물고 싶어서 온 것일까? 한동안 숨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숨을 쉬지 못했던 나는 지금 내 숨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자연의 이치. 내 마음대로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를 나는 거스르고 싶지 않다.
‘아, 나는 흐름에 충실한 사람이구나.’
항상 나에게 벌어진 문제는 그 흐름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스르려고 할 때 일어났다. 누군가를 돌려세우려 하고 무언가를 손에 쥐고 놓지 않으려 하고 하지 못할 일들을 애써 하면서 나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꼈던 지난날들이 떠오른다.
놓아주자. 흘려보내자. 바람결에 흔들리는 삼잎처럼 잠깐씩 일어나는 마음의 파동을 품고 수용하며 언제 까지든 최선을 다하고 사랑하고 감사하고, 계속 흘러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