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껍질 벗기기

삼베학교 에피소드. 13

by 루화


“무궁화가 피고 100일 뒤면 추석이 온다.”


스승님은 자연과 가까이 살며 깨달은 일상의 지혜를 무심코 툭 내뱉는다.


삼베학교로 향하는 짧은 등굣길에서 나는 스승님을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낀다. 약쑥이 자라는 달엔 약쑥을 캐며 뜸뜨는 얘기, 노란 서양꽃이 와서 분홍 코스모스가 못 자란다는 얘기, 밭에서 자라나는 다양한 작물의 상태를 살피며 비를 기원하기도 하고 가끔은 몰래 하나 따서 내 손에 쥐어주기도 한다.


오늘은 등굣길에 무성하게 피어난 분홍빛 무궁화를 보며 그 주변을 날아다니는 한 쌍의 호랑나비도 만난다. 호랑나비가 무궁화 주변을 팔랑 날았다가 꽃잎에 살포시 내려앉는 움직임이 신기하다. 나비의 단순한 움직임 속에도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시간이 녹아있겠지.


“저는요, 안동에선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 많아요. 특히 절기마다 변하는 자연풍경이요.”


스승님은 미소를 띠고 무심히 툭 말씀하신다.


“좋은 것 실컷 보아라.”


삼베학교 등굣길에 변화하는 풍경들을 보며 스승님과 함께 걷는 이 시간이 삼베 배움만큼이나 즐겁고 소중한 시간이다.


“삼은 물에 담가놨는겨?”


오늘은 삼 껍질을 벗기는 날이다. 6월 말에 밭에서 수확해 찌고 말린 햇삼을 물에 불려서 대삼의 껍질을 벗기는 작업이다. 대삼은 삼껍질을 벗기기 전의 삼을 뜻하고 벗긴 껍질로 삼실을 만든다.


“어제 오후에 담가놨지요.”


“날이 더워 잘 불었겠다.”


“네, 이제 가서 벗겨봅시더”


챙 넓은 모자와 장갑을 들고 나선다. 학교 앞마당에 물에 잘 불은 대삼이 은색 틀 속에 누워있다. 삼을 골고루 불리기 위해 눌러놓은 돌들을 꺼내고 대삼을 한 줌씩 물에서 건져낸다.


햇빛을 막아주는 나무그늘에 자리를 잡는다. 물에서 꺼낸 대삼을 하나씩 앞에 놓으면 양손에 장갑을 끼고 대삼을 묶은 삼끈을 풀고 껍질을 벗기기 시작한다. 나는 스승님 앞에 자리 잡고 삼껍질을 벗기는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먼저 삼 끝을 자기 몸 왼쪽에 두라. 그런 다음 왼손으로 삼끝을 잡고 오른손으로 대를 살짝 비틀어, 그러면 껍질을 숩게 벗겨진다. 오른손 검지손가락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듯 껍질을 쭉 벗겨내, 왼손은 삼껍질 끝을 잡은 동시에 재릅을 쭉 당겨서 벗겨, 빼낸 재릅은 끝을 맞춰 깐촐하게 땅에 놓고.”


나는 반복적으로 보여주시는 스승님의 동작을 계속 관찰하며 눈에 익힌다.


“삼은 어떤 과정이든 하나도 허투루 하는 것이 없어. 이 과정이 옳게 돼야 다음 과정으로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다. 자, 이제 벗겨봐라. 자꾸 해봐야 알지.”


나는 물에서 대삼 한 줌을 꺼내와 발아래 놓고 삼끈을 푼다. 삼 하나를 집어 들고 선생님의 동작을 머릿속에 복기하며 삼 껍질을 벗긴다.


“끝을 먼저 벗기고 검지손가락을 넣어 쭉 당겨 벗긴다. 아이코, 끝에 재릅이 안 빠졌다. 스승님, 이렇게 하는 게 맞나요?”


“골고루 끝까지 벗기는 게 중요하다. 껍질이 너무 찢기지 않도록 해라.”


삼을 때도 그렇고 삼껍질 벗기는데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처음이라 서툰 게 당연한데 잘하고 싶어서 움직임을 서두르게 된다. 그럴 땐 숨을 한 번 고르고, 움직임을 아주 천천히 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동작의 순서와 흐름을 하나씩 짚어나가며 천천히 삼껍질을 벗긴다. 한참 껍질을 벗기는데 특유의 쿰쿰한 향이 코로 올라온다. 물에 불어 축축한 대삼을 코끝에 대고 향을 맡아본다.


“선생님, 이게 무슨 향일까요? 시래기 향 같기도 하고”


“그래, 시래기 냄새랑 비슷하다.”


푹 찌고 말려져 물에 불은 대삼. 이 특유의 향을 말로 설명하고 싶은데 어떤 표현이 적절할까?

지금 아니면 맡지 못하는 향. 나는 대삼을 코에 대고 향을 깊이 들이마신다.


‘하, 달인 약초 향에 풀향이 섞였는데, 살짝 묵은 듯 쿰쿰하기도 하고.’


“아우 더워, 얼른 벗기고 들어갑시더.”


사라락 삼껍질 벗기는 소리, 땀을 식히려 펄럭이는 옷자락, 느리게 흘러가는 뭉게구름.

나무에 붙어 온몸으로 진동하는 매미소리가 들린다.


싱그러운 여름 한복판에 어느새 안동에 온 지 반년이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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