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훑기, 내 마음도 훑기

삼베학교 에피소드.14

by 루화


날씨에 따라 내 기분은 왜 변덕일까?


한동안 비가 계속 내리고 나는 무기력증에 빠졌다.

몸이 무겁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저녁산책을 나갔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산책길엔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하, 시원하다. 나는 저물어가는 붉은 해를 바라보며 시원한 공기를 가득 마신다.


삼베수업 때 배운 기술들을 수업 없는 날에도 연습하고 싶어서 보존회 회장님께 말씀드리니 햇삼 한 단을 흔쾌히 내주셨다. 오늘 낮에 물에 담가놨으니 내일 오전에 가서 벗기고 훑는 작업을 해보려고 한다.


내일 고된 작업이 예상되니 오늘 푹 쉬어야 하는데 몸도 정신도 무기력하다. 이럴 땐 그냥 신나게 무기력하자며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든다.


다음 날 새벽 5시.

알람소리에 눈을 뜬다.


평소 루틴대로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물 한잔 마시며 창문을 열어 환기한다. 요가매트에서 태양경배를 마치고 찬물로 샤워를 하니 멍한 정신이 개운해진다. 머리를 간단하게 말리고 따뜻한 커피를 내린다. 커피를 텀블러에 담고 장갑과 팔토시, 모자를 챙겨 집을 나선다.


5시 50분.

버스 정류장에서 첫차를 기다린다. 금소마을을 지나가는 유일한 버스 610번. 6시가 되자 저 멀리서 버스가 온다. 그냥 지나칠 수 있으니 손을 살짝 흔들어 버스에게 신호를 보낸다.


“안녕하세요.”


버스에 올라 창 밖을 바라본다. 장마철이라 한동안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오늘따라 햇빛이 더 선명한 느낌이다. 버스는 용상에서 출발해 송천, 안동대학교를 지나면 금세 금소마을에 도착한다.


/이번 정류장은 금소, 금소입니다.


“감사합니다.”


버스에서 내리고 오늘은 삼베학교가 아닌 안동포 짜기 마을보존회로 향한다.


“안녕하세요.”


“루화씨 일찍 왔네.”


보존회 앞마당에는 벌써 이수자 선생님들과 마을 어르신이 삼을 벗기고 있다.


“몇 시에 나오셨어요?”


“우린 5시쯤 나왔어.”


“일찍 나오셨네요.”


“좀 있으면 더워지니까 해뜨기 전에 벗겨야지.”


“삼 벗길 때가 날이 제일 더워.”


“더워서 잘 불었겠다. 얼른 건져와서 벗기소.”


나는 자리를 잡고 어제 물에 담가놓은 대삼을 두 세줌 꺼내온다. 어제 낮부터 해가 뜨겁게 내리쬐더니 예상대로 잘 불었다. 물에 불려진 삼껍질의 촉감은 망캉하다. 투명한 막에 쌓인 듯 속껍질이 미끈하다. 담가놓은 대삼의 삼껍질을 모두 벗기고 끝부분을 말꼬리보다 짧게 묶어 물에 휘휘 헹군다. 삼꼬리 부분의 덜 빠진 재릅은 손으로 살살 빗어 떼어낸다.


물에 깨끗이 헹군 삼을 동그렇게 돌돌 감아서 대야에 담아 물에 불린다.


“이렇게 물에 담가놔야 훑을 때 겉껍질이 잘 벗겨집니더.”


물에 서 너 시간 불린다. 반나절이나 하룻밤 정도 담가놓으면 더 잘 벗겨진다.


“불릴 동안 아침 먹고 옵시더.”


“루화씨, 아침 안 먹었지? 우리 집 가서 먹자.”


나는 금소마을에 사는 어르신을 따라나선다.

2023년 6월쯤. 안동에서 리서치를 할 때 베매기 현장에서 처음 만난 어르신이다. 그때도 어르신께서 비빔국수를 맛있게 해 주셨는데 오늘은 달짝지근하고 짭조름한 반찬들과 신선한 야채들로 한 상 차려주신다.


“선생님은 안 드세요?”


“나는 아까 먹고 나왔어.”


“잘 먹겠습니다.”


고소한 집밥이다.


“삼베 배우는 거 힘들지 않아요?”


어르신의 말에 눈물이 핑 돌 것 같다.


“힘들기보단 재미있어요.”


“아마 낯설고 힘든 부분이 있을 거예요. 우리도 처음 왔을 때 그랬어. 마을 할머니들에게 삼베 좀 알려달라 하는데 다들 이거 해서 뭐 하냐며 안 알려줘. 그래서 애 많이 먹었다.”


“어떤 게 가장 힘드셨어요?”


“할머니들도 정식으로 삼베를 배운 게 아니고 다 주먹구구식으로 보고 따라 했으니 누굴 가르치는 게 서툰 거야. 게다가 워낙 없이 살기도 했고. 그땐 뭐 교육이 있었나, 말 그대로 밭일하고 식구들 맥이고 뜬눈으로 밤을 새 가며 베를 짜서 팔고 그랬으니 여유 있게 삼베를 배울 시간이 어디 있었겠나.”


“저도 그 부분이 가장 힘들어요. 여쭤봐도 잘 대답을 안 해주시는 부분도 있고, 사투리를 제가 못 알아듣기도 하고요. 저는 삼베보다도 어르신들과 소통이 가장 어려워요. 여긴 분명 대한민국인데 마치 다른 나라 같아요. 그런데 어르신들에게도 제가 얼마나 낯선 존재일까 싶은 생각도 들어요. 지금 말씀을 듣고 보니 조금 이해가 돼요.”


“루화씨가 많이 적응해야 될 거야.”


딱 1년. 올해 1년만 최선을 다해 배워보자 생각하고 안동에 왔다.

거주지를 옮기는데 생각보다 큰 결심을 필요로 했는데 막상 옮기고 보니 그렇게 두려워할 일이 아니었다. 확실한 목표가 있어서일까,


삼베를 배우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글로 기록하는 것.

나는 지금까지 기록하며 무엇을 글로 옮겨야 할지 나 자신과 사투를 벌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와 세대가 다른 어르신들과 스승님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막막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 고민은 유효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나 스스로 다짐한 게 있다. 공부하자. 공부해서 나와 다른 세대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이해하자. 그리고 끊임없이 관찰하자. 한 개인을 있는 그대로를 보려고 노력하자. 평가하고 판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자. 설령 상대가 나를 존중하지 않더라도, 심지어 상대가 타인을 존중하지 않더라도 나는 존중으로 대하자. 사람 사는 곳 어디든 비슷하다. 나는 내 할 일에 집중하자. 한동안 이어진 고민 끝에 나의 에너지가 다시 삼베로 향한다.


“자, 밥도 든든하게 먹었으니 이제 가서 훑어봅시다. 훑는 건 물일이라 밥을 든든하게 먹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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