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베학교 에피소드.15
샤라락-
“우와, 뱀 지나가는 소리 같아요.”
삼을 훑을 때마다 작은 뱀이 공간을 잽싸게 가르는 소리가 난다.
삼 훑기는 벗겨낸 삼껍질에서 겉껍질을 따로 훑어내는 작업이다. 이는 보드라운 속껍질을 얻기 위함인데 생냉이 직물은 겉껍질을 훑어낸 속껍질인 계추리로 실을 만들어 짜기 때문이다.
보존회 안에 어르신들이 서로의 작업을 돕기 위해 모였다. 양팔로 감싸 안으면 꽉 차는 두께의 단을 시기 내에 훑으려면 고수들의 손길이 절실하다.
작업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먼저 바닥에 커다란 돗자리를 깐다. 직사각형 나무판에 검은색 고무판을 올린다. 물에 담가놓은 삼껍질을 한 줌 씩 건져내 물기를 뺀 후 몸의 왼편에 놓고 한 가닥씩 빼내 삼톱으로 겉껍질을 훑는다.
“훑을 때도 순서가 있다. 삼에 마디가 있지? 그 첫마디에서부터 꼬리방향으로 쭉- 삼톱으로 시원하게 훑어. 그런 다음 머리 부분을 판에 올려 훑고 꼬리에 남은 삼껍질을 마저 훑어서 자기 몸 왼편에 깐촐하게 놔.”
어르신이 끝을 맞춰 가지런히 놓아둔 속껍질은 손에 눌린 자국이나 구김도 없이 매끈하고 반듯하다.
“어떻게 이렇게 가지런히 놓으세요?”
“깐촐하게 끝을 맞춰서 놓지 않으면 삼이 흐트러져서 다음 작업을 할 때 손이 한번 더 간다.”
어르신의 동작엔 그리하는 이유가 있다.
한 과정 한 과정이 바로 다음 과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삼이 삼베가 되기까지 어느 한 과정을 딱 떼놓고 볼 수 없이 모든 과정이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어느 과정이라도 제대로 되지 않으면 다음 과정에서 그리고 그다음 과정까지 계속 손 볼 부분이 늘어나게 된다. 모르는 걸 자꾸 물어야 하는 이유도 과정의 흐름과 과정을 이루는 구체적인 이유를 알고 해야 함에 있다.
“과정이 제대로 되어있으면 삼이라는 게 어려울 게 없다.”
처음이다. 어려울 게 없다는 말. 그동안 삼베가 쉽지 않다, 힘들다는 소리만 들었는데 어려울 게 없다니. 물론 과정이 제대로 되어있으면이라는 전제가 있지만 그래도 이 말이 왜 이리 반가운지 나에겐 꼭 희망처럼 들린다.
“네, 해보겠습니다.”
어르신은 쉽게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막상 하니 생각보다 힘을 많이 줘야 껍질이 벗겨진다. 좌식으로 바닥에 앉는 자세도 익숙지 않은데 앉아서 힘을 주려니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처음에 배울 때 습관을 잘 들여야 한다는 말을 상기하며 나는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부동의 자세로 얼마나 있었던 걸까. 다리가 저려온다. 반면, 어르신들은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앉아서 하염없이 훑는다. 오전부터 해질 때까지 한 번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훑는 작업은 유독 몰입을 부른다.
나는 굳은 몸을 살살 풀어준다. 어느새 내 왼편에도 속껍질이 차곡차곡 쌓였다.
삼의 속껍질은 연노랑빛으로 맑고 투명하다. 뱀이 허물을 벗으면 이렇게 맑고 뽀얀 모습일까? 얇은 나무껍질 같은 겉껍질을 탈피하니 이렇게 맑은 면이 드러난다. 오돌토돌한 껍질 안에 하얀 알맹이를 품은 망고스틴처럼. 귀찮아도 껍질 까먹는 게 더 맛있는 땅콩처럼. 겨울에 따순 이불 안에서 까먹는 귤처럼. 훑는 작업은 손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다.
“어르신, 저 다음 주에도 또 연습해 봐도 될까요?”
“이제 삼아야지, 다 훑었으면 이제 삼는 걸로 넘어가야 한다. 그래야 날이 맞아. 서늘해지면 훑기도 힘들어.”
“다 때가 있다.”
아차차, 과정의 흐름을 또 거스르려고 했구나. 삼이라는 게 아무 때나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게 이런 의미구나. 변화하는 자연의 흐름에 보폭을 맞춰 가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자, 다 훑었으면 이제 마당에 걸린 줄에다가 쭉 널어보자.”
속껍질을 며칠 동안 햇빛에 말리고 밤이슬을 맞히면 금빛의 계추리가 된다. 계추리를 곱게 째서 짠 직물이 바로 생냉이 직물이다.
“이번 삼이 참 좋다, 보드랍다.”
“올해는 열새해도 되겠다.”
“예쁘다. 예뻐.”
손길이 잔뜩 닿아서 유독 예쁜 걸까.
좋은 걸 보면 침을 바르고 싶듯이 삼에도 그런 마음으로 침을 바른다 하셨는데 마당에 널린 계추리를 보고 어르신들은 연신 예쁘다 예쁘다 하신다.
예쁘다. 예뻐.
그 말이 참 듣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