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베학교 에피소드.16
밭에서 자란 사과와 옥수수
텃밭에서 키운 오이와 감자
나무에서 딴 앵두와 블루베리로 만든 주스, 거기에 양봉한 벌꿀 한 숟가락
갓 담근 파김치와 묵은 신김치.
“안동 와서 고생하는 루화씨, 많이 먹어요.”
안동에서 자취하는 서울 아가씨에게 생냉이반 선생님들은 자신이 만든 음식을 이것저것 챙겨주신다.
옥수수는 바로 따서 씻지 않고 찐 게 가장 맛있고 갓 딴 사과와 복숭아의 향이 이렇게 진한 지 처음 알았고 세그렁한 앵두와 달콤한 꿀을 입안 가득 넣으면 그 향이 온몸에 퍼지며 내 몸이 건강해지는 게 느껴진다.
“루화씨, 집에 된장 있나?”
“시판된 거 사 먹고 있어요.”
“된장은 집된장 먹어야지. 내 좀 갖다 줄까?”
“정말요? 감사히 받겠습니다.”
다음 수업 때 된장과 반찬들을 바리바리 싸와서 주신다.
“대파김치 먹어봤나?”
“대파로 김치를 만들어요?”
“집에 남은 대파가 있길래 꽁지 부분으로 만들어봤어. 가져가서 먹어봐”
삼을 훑고 나면 기력이 다 소진돼서 배가 많이 고픈데 선생님들이 챙겨준 집반찬을 먹으니 힘이 난다.
“엄마가 캐나다에 있다며, 친정엄마 음식이 얼마나 먹고 싶겠어.”
“네, 엄마 음식 생각 많이 나요.”
“엄마 음식이다 생각하고 많이 드세요.”
이렇게 음식을 바리바리 챙겨주시는 교육생 선생님은 선화 선생님이다.
선화 선생님은 우리 반의 이야기꾼이다. 별일이 아닌 이야기도 아주 맛있게 말하는 재주가 있으신데, 선생님이 입을 열면 다들 눈이 반짝반짝하며 선생님의 얘기를 재밌게 듣는다.
오늘 오전엔 선화 선생님과 등굣길을 함께했다.
“선생님, 손이 엄청 멋있으세요.”
“아이고, 내가 이 손이 콤플렉스다. 내가 손이 두툼하잖아. 특히 이 엄지는 이리 짤똥하게 생겨서는, 이게 우리 아버지 손을 닮았는데 내가 장사를 할 때 손님한테 서빙할라 하면 손을 내놓고 하니 창피했어. 우리 아버지한테 내가 창피하다 그러면 ‘손이 이렇게 생긴 사람이 부자다’라고 말씀하셨어.”
“선생님은 정말 다양한 일들을 해오신 것 같아요.”
“내가 장사를 오래 했잖아. 안 해본 게 없다. 제과점 하며 빵 만들었지, 마트 했지, 그전엔 간호사도 했다. 세상에 내 별일 다했지?”
“선생님 요리도 잘하시잖아요. 선생님이 해 오신 떡, 블루베리 와인, 과일 스무디, 요거트 다 너무 맛있었어요.”
“내가 가만히 못 있는 성격이라, 우리 아저씨도 나랑 똑같아. 그래서 둘이 서로 좀 가만히 있으라고 난리다.”
“두 분이 다 부지런하신가 봐요.”
“게으른 것보단 낫다 싶지. 둘 다 부지런하니 싸울 일은 없어. 가만히 좀 쉬어야 하는데 내가 그걸 못한다.”
버스정류장에서 학교로 들어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린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수업이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선화 선생님이 싸주신 음식들을 냉장고에 차곡히 정리한다.
비어있던 작은 냉장고가 그새 꽉 찬다.
대파김치를 열어보는데 안에는 진미채가 함께 버무려져 들어있다. 대파와 진미채가 함께 버무려진 김치라니.
한입 집어 맛보니 눈물 나게 맛있다. 대파 김치엔 빨간 고추가 큼직한 무늬를 내고 있고 가지각색 액젓의 풍미가 느껴진다.
빨간 고추를 보니 안동에 오기 전 친구가 건넨 책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속 한 문장이 문득 생각난다.
[엄마의 부뚜막에는 늦여름만 되면 언제나 붉은 고추서 너 개가 말라가고 있었다. 무쇠솥 솥전의 열기로 물기가 완전히 가신 고추에선 달각달각 고추씨 소리가 났다. 우리 엄마가 찬장 안에 고춧가루를 따로 두고도 부뚜막에 말린 고추를 상비했던 건 그걸 손으로 비벼 넣을 음식이 따로 있어서였다. 김 오르는 솥에다 마구 비벼서는 안 되고 반드시 그릇에 푼 후에 손바닥을 일단 불에 한 번 쬐어서 습기를 완전히 없앤 후에 순식간에 활활 비벼 넣어야 했다.]
지금은 작고하신 김서령 작가가 쓴 안동음식의 관한 이야기와 여성의 인생이 담겨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여성이 뚝딱 만들어내는 음식이 얼마나 위대한지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캐나다에 있는 엄마와 보이스톡을 할 때면 늘 엄마에게 레시피를 묻곤 한다. 그럴 때 엄마는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자신만의 레시피를 알려주곤 하는데 조리과정이 가히 예술적이다.(그래서 따라 할 엄두가 안 나지만) 지난한 세월을 살아온 선화선생님의 레시피에도 선생님만의 역사와 예술이 담겨있겠지.
어머니는 항상 자신보다 먹는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어머니의 음식엔 치유의 힘이 있다.
할머니 음식, 엄마 음식, 선생님들의 음식.
여성이 버무린 음식엔 위로가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