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베학교 에피소드.17
한풀 꺾인 줄 알았던 무더위가 다시 시작인 걸까.
오늘도 덥다.
처서가 가까워 오는 8월 중순,
며칠 전부터 삼베학교 내에선 베날기가 한창이다.
삼실을 베틀에 걸기 위해 새수와 길이에 맞춰 한 올 한 올 정경하는 작업을 ‘베날기’라고 한다.
이 작업은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전통방법으로 베를 나려면 보통 3인 1조로 역할을 나눠 서로 도우면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작업이다.
지난주부터 삼베학교와 마을 곳곳에서 베날기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금소마을에 사시는 마을 어르신들과 전통삼베 이수자분들이 자기 베를 짜기 위해 삼삼오오 모인다.
삼베학교 안에는 베날기 작업장이 따로 있다.
기다랗고 널찍하고 사방으로 바람이 잘 통하는 작업장은 베를 날고 매기에 아주 좋은 공간이다. 작업장에는 ‘직조인을 환영합니다’라는 플랜카드도 걸려있다.
직조인 직조인 직조인.
나는 그 단어를 속으로 되새겨본다. 직조인은 직물 짜는 사람을 말하는 걸까? 직물을 짠다는 그 단순한 말속에 어떤 뜻이 숨어있을까?
삼베학교를 오가는 길에 자연스레 마주치는 할머니들의 베 짜는 모습은 낯설면서도 반가운 풍경이다. 반갑다는 표현보다 좀 더 벅찬 표현이 어울리겠다. 마치 꿈같은 풍경이다.
나는 생냉이 수업 쉬는 시간을 틈타 나이가 지긋한 마을어르신들이 베날기를 하고 있는 현장을 빼꼼 찾아간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지나가던 나그네인데요, 잠시 구경해도 될까요?”
“어서오이소.”
“구경할게 뭐 있는가.”
구경할 게 뭐 있냐는 말씀이 무색하게도 어르신들의 몸짓과 손짓은 나비처럼 우아하기만 하다.
할머니들의 꽃바지와 꽃무늬 블라우스 사이로 금빛 실이 오간다.
노랗고 반짝이는 이 빛깔에 반해 여기 오게 되었나 싶을 정도로 가느다란 금빛의 삼실이 길게 늘어져 너울지는 모습은 마치 햇빛에 반짝이며 은은하게 흐르는 물길 같다.
지금 여기, 이 계절이기에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마지막 한 떡 다 삼았으니 다음 시간에 베 날아봅시다.”
생냉이반도 삼베 한 필 양의 날실을 다 삼았다.
3월부터 장장 5개월 동안 열 명의 사람들이 모여 하루하루 성실하게 삼은 삼이다.
삼실을 바구니 가득, 동그랗게 날은 삼을 한 떡이라고 부른다. 열 떡이 모이면 삼베 한 필을 짤 수 있는 양의 날실이 된다. 베날기 풍경은 한 번도 본적이 없는터라 더욱더 기대되는 다음 수업이다.
하루 이틀 지나 목요일,
드디어 베를 나는 날이다.
반장님이 오전부터 준비하신 재료와 도구들이 작업장에 도착해 있다. 베날기를 할 때 필요한 날상, 베꽃이, 묵직한 돌, 모래, 돗자리, 끈, 칼 등이 준비되어 있다.
삼아놓은 삼실 열 떡을 돗자리에 고루 펴서 그 위에 모래를 살살 올린다.
날실 열 떡 가닥을 열 개의 날상 구멍에 한 올 한 올 끼우고 베꽃이에 날실을 쭉쭉 피며 길게 걸어 7새 직물에 맞게 베를 난다.
1새에 80올, 10가닥씩 4번 왕복하면 1새 80올이 된다. 1새마다 끈을 둘러 표시하고 끈 수가 일곱이 되면 총 560가닥, 7새의 날실을 날게 되는 것이다.
베를 나는데 자꾸만 날실에 있는 터래기가 걸려 작업을 더디게 한다.
“루화씨, 삼실을 삼을 때 왜 터래기를 잘 정리해야 되는지 알겠죠?”
스승님이 모든 과정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신다.
베를 날 때마다 돗자리에 펼쳐진 실떡이 마치 춤을 추듯 뱅글뱅글 돌아가는 움직임이 이 작업의 묘미다. 일정한 리듬에 맞춰 끊김 없이 유유히 흐르는 베날기 작업을 직접 보고 경험하게 되니 감개무량하다.
나는 지금이 아니면 올해는 따로 해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용기 내서 말한다.
“저... 저도 한번 해봐도 될까요?”
“시간 없는데, 얼른 하고 들어가자.”
“제가 처음이라 서툴겠지만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게 잠깐이라도 직접 손에 잡아보고 싶어요.”
“자, 그럼 얼른 해봐라.”
“감사합니다.”
날이 무더운지라 더욱 고된 야외 작업에서 신입생이 직접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서울에서 이걸 배우러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보는 걸로만 만족할 순 없어서 잠깐이라도 손에 감각을 남기고 싶다.
오른손에 장갑을 끼고 왼손으로 날실을 살살 당기면서 정돈해 끝에 있는 베꽃이에 걸고 다시 보낸다.
직접 해보니 3인 1조의 호흡이 잘 맞아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베날기 작업은 협동이 중요하네요.”
“그렇지. 우리가 지금 인원이 많아 말이 많고 어수선하지 세 명이서 하면 딱 좋다.”
“볼 땐 쉬워 보였는데 막상 하니 어렵지?”
삼베 짜기의 모든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지만 베날기 작업도 사람들 간의 호흡이 잘 맞고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하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은 작업이라는 것도 느낀다.
한 사람이 날상 앞에서 날실이 엉키지 않게 잡고, 한 사람은 베꽃이에 날실을 걸고, 한 사람은 날실을 쭉쭉 피며 길게 걸고.
베날기는 사람 간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한 공동작업이다. 내가 하는 방식이 맞고 네가 하는 방식은 틀렸다고 말하며 의견이 모아지지 않는 상황이 벌어질 때면 그걸 보는 나는 조금 답답한 마음이 든다.
사람 손으로 하는 것에 정답이 어디 있을까, 그저 묵묵히 견디며 그저 하는 각자의 인내와 즐거움이 있을 뿐인데. 서로의 작업방식을 존중하면 안 될까?
자꾸 작업을 망친다며, 삼베는 어렵다며, 날이 덥다며 신입생에게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좀처럼 안주는 선생님들이 오늘은 조금 야속하기도 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우는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원하는 사람이 자꾸 달라고 울어야지.
아주 잠깐이었지만 손에 남은 실의 감각으로 만족하며 금세 웃는 나도 참 별나다.
“감사합니다.”
스승님과 숙련된 선생님들의 수고로 무더운 날 7새 날실을 금세 날았다. 마지막에 베꽃이에서 날실을 끊어낼 땐 잘 갈린 칼로 시원하게 싹뚝 썰어낸다. 날실은 끈으로 잘 묶어 정돈한다.
“수고들 했니더, 이제 정리하고 교실로 들어갑시더.”
날실을 챙기는 것도 신입생에게 주어지는 영광이라 여기며 나는 묵직한 한 필의 날실을 들고 ‘곱다 고와’를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