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베 한 필이 고작 백만 원이라고요?

삼베학교 에피소드.18

by 루화


삼베학교 등굣길,

언제나처럼 스승님과 함께 610번 버스를 타고 금소로 향한다. 앞 좌석은 주로 어르신들이 앉기에 스승님과 나는 자리를 따로 앉는다. 스승님은 앞 좌석 나는 뒷 좌석.


버스에서 내리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오늘은 스승님 손에 뭔가 묵직한 게 들려있다.


정류장에 도착해 버스 뒷문이 열리고, 스승님은 묵직한 무언가를 바깥으로 휙 던져버린다.


“어맛, 스승님! 뭘 던지신 거예요?”


나는 깜짝 놀라 얼른 버스에서 내려 바닥에 던져진 물건을 집어든다. 묵직한 무언가는 은색 쿠팡 비닐 포장지에 싸여있다.


“뭐긴 뭐야, 삼베지.”


스승님은 무심히 말씀하신다.


“삼베요? 삼베를 이렇게 던지시면 어떻게 해요. 이 귀한걸.”


“귀하긴, 무겁다. 여기 유모차에 넣어라.”


“스승님 삼베 제가 들고 갈 수 있는 영광을 주세요.”


“별게 다 영광이다.”


스승님은 쿠팡 비닐에 싸인 삼베를 소중하다며 품에 안고 가는 제자를 보고 힘없이 웃어버린다.


나는 귀한 삼베를 쿠팡 비닐에 싸 오시고 그걸 또 휙 던져버리는 스승님의 무심한 태도가 잘 이해가 가질 않는다.


“스승님, 삼베 왜 가져오신 거예요?”


“지난번에 내가 삼베 엿새직물 판다고 그랬잖아, 보존회에 갖다 줘봐야지. 돈 백은 받을 수 있지 않겠나.”


“에? 백만 원이요? 삼베가 백만 원이에요? 말도 안 돼, 이거 정말 파시게요?”


“갖고 있음 뭐 하나. 팔아뿌야지.”


스승님이 쿠팡비닐에 삼베를 싸 오신 것도 놀랍고 삼베를 던지신 것도 충격인데 삼베 한 필(엿새직물)이 백만 원 정도라는 낮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이 더더욱 충격적이다.


“삼베 한 필을 짜려면 이 많은 수고와 정성이 들어가는데 고작 백만 원이라고요?”


“이제 누가 사는 사람이 있나, 그거라도 줄 때 팔아야지.”


삼베에 매겨지는 야속한 숫자에 삼베가 처한 현실이 확 다가온다. 이제 누가 사는 이도 없고 찾는 이도 없는 삼베직물.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스승님은 묵직한 삼베직물을 꺼내 보인다.

쿠팡비닐을 벗기자 그 안에 분홍 보자기에 고이 쌓여있는 금빛으로 빛나는 삼베직물.

겉은 무심하게 포장했지만 알맹이는 보자기에 고이 싸 오신 스승님. 무심함 속에 진심을 숨겨놓는 스승님의 표현방식에 나는 괜한 오해를 했다.


“세상에, 아고 예뻐라. 이거 몇 새에요?”


”엿새“


“옴마야, 아고 고와라.”


“어찌 이리 곱게 짜셨나요?”


생냉이반 교육생 선생님들의 감탄이 터져 나온다.

나도 그 옆에서 스승님의 고운 삼베를 경탄하며 넋 놓고 바라본다.


삼베 한 필이 만들어 지기까지 그 과정을 생각하면 이 삼베 직물이 얼마나 귀한가.


삼씨를 심고 100일 동안 삼이 자라면 수확하고,

찌고, 말리고 불리고, 껍질을 벗기고, 째고, 삼고, 날고, 베틀에 매고 한 필을 짜는 시간이 꼬박 1년이다.


작년 삼으로 베를 짠다 하더라도 삼베 한필을 짜기 위해선 숙련된 사람도 꼬박 반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그 과정 안에 깃든 사람의 숨과 온기, 온몸으로 빚어내는 금빛 실타래에 담긴 정성과 사랑을 어떻게 말로 다할 수 있을까?


너무나 터무니없는 숫자로 값을 매겨 그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 현실을 스승님과 이수자 선생님들은 어떻게 버텨오신 걸까. 지금까지 짜고 계신 그 동력은 무엇일까?


언젠가 스승님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 있다.


“스승님, 스승님 집에서 삼베학교까지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잖아요, 그 길이 멀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데 벌써 6년째 매년 이렇게 오실 수 있는 동력이 뭐예요?”


“나에게 약속을 했다. 15년. 15년 동안 삼베를 전수하는 것에 매진하자고 나 자신과 약속을 했어. 그래서 눈이 오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이 먼 길을 한 번도 안 빠지고 나갔다.”


삼베를 전수하기 위해 불편하신 몸으로 먼 길을 오가는 스승님이 다시 한번 존경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찾는 이 없어도 하는 이 없어도 묵묵히 자신의 소신을 지켜오신 스승님.


젊은 아가씨가 왔다고 반겨주시던 교육생 선생님과 스승님들 앞에서 나는 내 나이를 무기로 배움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한 건 아닐까.


나는 서울에서 삼베를 배우러 왔으니까 마땅한 배움과 가르침을 받아야 해라고 스스로 자만했던 건 아닐까.


생각은 돌고 돌아 나에게로 닿는다.


‘나는 왜 삼베를 배우지?’

‘나는 삼베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삼베를 배워서 정말 하고 싶은 게 뭐야?‘


나는 언제쯤 이 질문들에 답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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