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포’라는 이름 함부로 쓰지 마시더!

삼베학교 에피소드.19

by 루화


“문자가 왔다.”


“문자요?”


“오늘 수업 마치고 대모 한다고.”


“무슨 대모요?”


올해 3월쯤, 공장에서 기계로 짠 기계직 삼베수의에 ‘안동포’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을 안동시 측에서 허가를 해줬다.


‘안동포’라는 것은 안동지역에서 전통방식으로 생산된 ‘생냉이 직물’을 뜻한다. 생냉이 삼베직물은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안동 지역에서만 직조되고 있고, 금소마을에서 오랫동안 명맥이 이어져온 삼베직물로 그 의미가 깊다.


내가 안동에서 삼베리서치를 시작한 2023년 즈음, 그때도 기계로 삼실을 뽑아내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올해 초 삼베 짜기를 배우기 시작할 때쯤 공장에서 실을 대량으로 뽑아내는 게 가능해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전에는 혼합사였는데 이번에는 100% 삼실이라는 데에 마을 주민분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커졌다.


올해 기계직으로 삼베직물을 짜서 수의를 만들어 판매하는 기업이 등장했다. 풍산 쪽에 2만 평 정도 되는 땅에서 삼농사가 진행되고 있다. 공장기술로 실을 뽑아내 기계로 직조하여 원단을 만들고 그 원단으로 만든 수의에 ‘명품’, ‘안동포’라는 수식어와 이름이 붙은 것이다.


게다가 보통 기계직물에 붙는 ‘수’라는 단위도 전통직물에 붙는 ‘새’로 표기되고 있었다.

안동포라는 명칭에 내포된 안동지역 고유의 오랜 전통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기계로 짠 직물에 붙는 것이 삼베 짜기가 삶이었던 안동포 짜기 장인분들과 마을 어르신, 명맥을 이어가는 이수자 선생님들은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소식을 접하고 내가 교육을 받고 있는 생냉이반 선생님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내 일이 아니라는 듯 무심한 반응,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분노하는 반응, 별다른 말 없이 대모에 참여한다는 반응.

신입생인 나는 그러한 상황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봤다.


생냉이 수업을 마치고, 대모에 참석하기 위해 남아있던 선생님들과 함께 처음 개강식이 열렸던 영상교육실로 향했다. 영상교육실에는 일찌감치 마을 주민분들이 모여있었다. 안동포 짜기 이수자 선생님, 마을 어르신, 생냉이반 무삼반 교육생들, 시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테이블에는 공장에서 기계로 뽑아낸 실과 기계직물로 만든 도포가 샘플로 놓여 있었다.

기계로 가공한 삼실과 직물은 전통 삼베직물과는 다르게 옅은 회색빛을 띄었다. 그 옆에는 손으로 짠 전통 삼베직물인 노란빛의 안동포가 함께 놓여있었다. 기계직물과 전통직물은 누가 봐도 완전히 다른 직물이었다.


시 관계자가 앞에 나와 안동포라는 이름의 정의가 변경되었다고 마을 주민들에게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에서 준비한 보고서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현행

“안동포 및 무삼” 이란 안동시에서 재배되는 대마를 이용한 전통직조방식으로 생산된 섬유를 말한다.


개정안

재배한 대마를 원료로 하여 안동시 관내에서 전통 직조방식과 기계 직조방식으로 생산된 섬유를 말한다.


안동포 짜기 이수자 선생님들과 삼베마을 어르신들은 한껏 상기되어 시 관계자에게 따져 물었다.


“안동포라는 이름을 어떻게 기계직에 붙이냐 이 말입니더.”


“명칭이 구분이 되어야지요.”


“기계직에는 안동포라는 이름 말고 ‘안동 대마 기계직 수의’라고 이름 붙이소.”


“아주 속에서 열불이 나요.

삼베 한 필을 짜려면 얼마나 많은 노고가 들어가는지 아십니꺼?

사계절, 1년 내내 이 모든 작업을 손으로 한단 말입니더.

삼베 한필이 만들어지는 전통 직조 과정을 알면 함부로 안동포라는 이름 쓰지 못하지요.

기계직에다가 안동포라는 이름 이미 허가 다 내주고 이제 와서 뭐해주겠다 뭐해주겠다, 말만 늘어놓는 게 이게 말이 되냐 말입니더.”


“우리가 원하는 건 안동포라는 이름을 돌려놓는 것입니더.”


한동안 마을 주민분들의 항의는 계속 이어졌다.


시 관계자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더니 안동포의 정의에 관해 정정된 부분은 시에서 이미 허가된 부분이라 변경이나 취소는 어렵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비교적 친절하게 말하려고 애쓰는 공무원의 태도만으로는 주민분들과 이수자 선생님들의 분노와 상실을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시 관계자는 전통 삼베직물에 지원되는 20만 원 정도 되는 장려수당금의 금액을 조금 올리는 방향을 제안했다. 그 밖에 삼베 교육에 관련된 것이나 건의하고 싶은 게 있는 분들은 말씀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입이 근질근질한데 꾹 참고 말을 아꼈다.

그때 우리 반 교육생 선생님께서 입을 열었다.


“제가 몇 년째 삼베교육에 교육생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더. 처음 듣는 신입생들도 있지만, 교육 듣는 사람들 중 절반은 삼베를 짤 줄 아는 사람이고 저 또한 그렇습니더. 그런데 몇 년을 해도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는 것 없이 계속 교육생 신분으로 이 수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더. 삼베를 짤 줄 아는 사람 중, 몇 년이상 교육에 참여하면 조교든 강사로든 직책에 변화가 있었으면 합니더.”


수업 내내 별로 말이 없으셨던 선생님이 이 자리에서 조곤조곤 꺼내시는 말씀을 듣고 그동안 말이 없으셨지만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고 계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리가 파하고 스승님과 나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걸어가는 내내 스승님은 유난히 숨찬 호흡을 내쉰다. 나는 무슨 말이라도 건네야 하나 싶어서 말을 꺼낸다.


“스승님, 그런데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기계 직물이요, 빛깔도 안 예쁘고 질감도 별로던데요?”


“거기다가 안동포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게 말이 되냔 말이다.”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는데 스승님의 매서운 한마디에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나는 기계직으로 삼베직물이 대량 생산되면 삼 생산량도 늘어나고 전통과 현대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기계직물 소식이 조금은 반가웠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짧은 생각이었다.


전통직물과 기계직물.

육안으로 봐도 확연히 다른 두 직물에 ‘안동포’라는 같은 이름이 붙는다는 것에는 고개가 갸우뚱 해진다. 게다가 기계직으로 생활 옷이 아닌 수의를 만들어 대량 생산한다니.


안동포는 수의가 된다. 수의, 수의. 수의. 수의의 대량생산?

수의가 지닌 본래의 의미가 뭐지? 전통이라는 이름아래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무엇일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전통을 이해할 수 있을까? 손으로 만드는 전통직물과 현대식 기계직물의 차이를 어떻게 둘 수 있을까?


과거에 삼베 짜기가 일상이고 중요한 생활터전이었던 금소마을 사람들은 지금의 전통삼베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현재 어떠한 연유로든 기꺼이 전통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을까?


전통의 지읒 자도 모르는 나는 머릿속에 생각만 많아진다.


610번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고 스승님과 나는 버스에 오른다.

우리는 버스 앞 좌석에 앞 뒤로 앉아 각자의 집으로 향한다.


나는 뒤에서 스승님의 축 처진 어깨를 달래며 말을 건넨다.


“스승님, 마음이 많이 안 좋으시죠?”


“괘안타.”


한동안 말이 없던 스승님은

가방에서 무언가 꺼낸다.


“이거 먹을래?”


“이게 모예요?”


”아까 거기 있는 거 몇 개 집어왔다. 초코과자. 달달하게 이거나 까먹자.”


스승님과 나는 방금 전의 일은 잠시 잊고 웃음을 터뜨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우리는 봉지 안에 들어있는 과자 두 조각을 나눠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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