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 매기

삼베학교 에피소드.20

by 루화


새벽 5시.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가을비다.


버스 첫차를 타고 금소에 도착하니 저 멀리 산 중턱에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있다.


귀뚜라미가 우는 계절.

오늘은 고대하던 베매기 하는 날.


벳불을 피워 베를 매는 게 늘 신기했던 터라 베매기 전에 벳불 피우는 방법도 배우고 싶어서 집에서 일찍 나와 삼베학교 작업장으로 향했다.

직접 해볼 생각에 마음이 설레었던 걸까 너무 일찍 작업장에 도착해 버렸다.


추적추적 비가 오는데 벳불을 피울 수 있을까?

걱정과 함께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멍하게 바라봤다.


반장선생님과 스승님이 오셨다.


“일찍 왔네.”


“버스 타고 왔는겨?”


“네. 좀 일찍 도착했네요.”


“장하다, 들어갑시더.”


서둘러 작업장으로 들어가는 반장선생님.

벳불을 두 개를 피워야 하는지라 바쁜 걸음이다.


반장님은 손에 들린 신문지와 라이터를 바닥에 툭 던져놓고, 길고 낮은 양철통을 야외작업장 쪽으로 끌어다 놓는다.


“자, 여기에 왕겨를 담자.”


양철통에다 왕겨를 쏟아붓는다.


“살살 펴서 밑에 쫙 깔아.”


갈색 빛의 포슬포슬한 왕겨 껍질.


“그런 다음 나뭇가지를 올려.”


“이건 무슨 나무예요?”


“사과나무. 가지 친 거 모아둔 거야.”


스승님은 옆에서 나무가 너무 적다, 더 올려라 진두지휘를 하신다.


양철통에 왕겨와 나뭇가지가 한가득 쌓였다.

반장선생님과 스승님은 신문지를 한 장씩 빼내 길게 구겨접고 신문지 끝에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쌓여있는 나뭇가지들 속으로 불이 붙은 신문지를 넣고 나무에 불을 피운다.


“앗, 손 안 뜨거우세요?”


반장선생님과 스승님은 맨손으로 솟구치는 불길에 거침없이 손을 넣는다.


‘완전 멋있어. 다들 전사 같아’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그들에게 우산을 씌워드린다.


나는 겨우 신문지를 한 장씩 빼는 일손을 거들며 벳불을 피우는 광경을 바라본다. 언젠가는 나도 혼자서 할 수 있는 날을 상상하며.


나무 전체에 불이 붙고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보며 올 초에 있었던 산불이 생각났다. 나는 불길이 옮겨 붙지 않게 주변을 살핀다. 불길이 어느 정도 잠잠해지고 양철통을 작업장 안으로 끌고 가 벳불 위에 재를 솔솔솔 뿌린다.


“선생님, 재를 왜 뿌려요?”


“그래야 벳불이 은은하게 오래가.”


은은한 열기로 풀을 말려가며 베를 매야하기 때문에 불이 오래가는 게 중요하다. 벳불을 하나 더 피울 때쯤 다른 교육생 선생님들이 하나 둘 작업장에 도착한다.


“일찍 나와 고생이 많이십니더.”


“비가 와서 고생했겠다.”


“아이고, 쫄딱 젖었네.”


따뜻한 벳불 주변으로 모여 앉아 젖은 옷을 말린다.

선화선생님이 직접 싸 온 맛있는 김밥과 두유를 든든하게 나눠먹고 본격적으로 베매기 작업에 들어간다.


지난 시간에 미리 쑤어놓은 된장풀을 작은 그릇에 적당히 덜어낸다.


된장풀은 보리, 조, 된장을 섞어 밥솥에 찌고 소금으로 간을 한다. 보리 대신 밀가루나 쌀을 넣기도 하는데 찰기가 있는 건 섞으면 안 된다. 찰기가 너무 강한 곡식을 삼실에 바르면 실이 떡처럼 달라붙어 못쓰게 된다.


된장풀에서 구수하면서 시큼 털털한 향이 난다.


도투마리를 차리고 날아 놓은 삼실을 추에다가 길게 건다. 도투마리와 추에 무거운 돌을 올려 삼실이 팽팽하게 당겨지게 놓고, 바디에 끼워놓은 삼실을 도투마리에 연결하면 베맬 준비가 끝난다.


바디에 미리 삼실을 끼워오신 반장님 덕분에 베매기가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스승님이 그릇에 담긴 된장풀을 손으로 푹 뜨고 삼실에 골고루 문질러 펴 바른다.


“스승님, 된장풀을 왜 바르는 거예요?”


“마르지 말라고 바른다. 건조해지면 이은 실이 똑하고 떨어져뿐다.”


“강원도는 삼실에 귀리풀을 바르던데 안동은 왜 된장풀을 발라요?”


“여기 된장이 좋거든. 그래서 안동은 된장으로 풀을 쑨다.”


그 지역에서 많이 나는 좋은 재료로 풀을 쑨다는 게 흥미롭다. 풀에서 나는 특유의 향이 지역마다 다를 테니 같은 삼베 직물이라도 미세하게 다른 향이 나겠지? 재밌다 재밌어. 직물의 세계는 정말 깊고 넓구나.


벳불을 삼실 아래 두고 풀을 말려가면서 매는 동안 나와 선화선생님은 파트너가 되어 길고 팽팽하게 늘어진 삼실가닥들을 미리 한 올 한 올 정리한다.

이를 ‘뒤를 봐준다’고 표현한다.


“루화씨랑 내랑 손발이 착착 맞네.”


“제가 잘하고 있나요?”


“잘하고 있다, 호흡이 잘 맞아.”


선생님의 칭찬에 흥겨워서 나의 두 손이 삼실 가닥 위에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


노년의 스승님은 두꺼운 삼솔을 한 손에 쥐고 연신 삼실 가닥을 팽팽하게 쓸어내린다.

삼솔 끝에 물을 살짝 묻히고 쓱쓱 빗어 삼실에 묻은 풀을 고르게 펴 바른다.


옛날에는 삼솔로 실을 빗는 걸 보고 옛 어른들이 ‘복을 다 쓸어버린다’며 부정 탄다고 했다고 한다.


내 보기엔 복을 가지런히 정돈하고 정성스럽게 빗는 행위인데 옛날에는 왜 나쁘게 얘기를 했을까.

잘 모르지만 아마도 삼베길쌈이 너무 힘들어서 자기 딸에게 물려주지 않으려고 부정의 표현을 한 게 아닐까. 실제로도 딸은 절대 안 시키고 며느리만 시킨다는 게 삼베길쌈이었으니 말이다. 그만큼 힘들고 고된 작업이다.


삼베길쌈 과정 중 특히 ‘베매기’가 가장 다이내믹하면서도 고된 작업이다.

오전에 벳불 피우는데 이미 체력이 바닥이 날 정도였으니...


“아침엔 비에 젖고 오후엔 땀에 젖는다.”


스승님은 벳불의 은은한 열기에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 이 같은 명언을 툭 뱉는다.

가느다란 나뭇가지인 ‘베비’를 끼워가며 도투마리에 실을 감는다.

중간중간 삼실이 끊어지면 여분의 삼실인 ‘마재이’로 연결해서 이어간다.


빗어 내리고 감고, 빗어 내리고 감고, 떨어지면 잇고, 이것의 반복.

한마디로 무아지경이다.


스승님과 선생님들을 한시도 쉬질 않으신다. 나는 무릎이 너무 저려서 몇 번을 앉았다 일어섰다 스트레칭을 하는데 노년의 선생님들 체력이 대단하다.


“거의 다 매 간다.”


“와, 드디어 끝이 보여요.”


어느새 40자 한필을 도투마리에 모두 매고 끝실까지 남김없이 풀을 발라 고르게 빗어내린다. 실이 바디에서 빠지지 않게 실끝을 짤롱하게 묶는다.


도투마리에 감긴 삼실이 두툼하니 그 무게가 상당하다.


“자, 어려운 거 끝났음니더.”


“다들 고생많았습니더.”


“이제 신나게 베 짜봅시더.”


“루화씨, 전통 베틀에선 안 짜봤지?”


“네, 저는 서양식 베틀에서만 짜봤어요.”


“여기 있는 동안 루화씨 많이 짜 보십시더.”


생냉이반 스승님과 교육생 선생님들의 응원과 지지를 받으며 삼베를 배우는 나날이 이어질수록 삼베에 대한, 직조에 대한 배움과 열망도 점점 깊어져간다.


올해 딱 일 년만 배우자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생냉이반 선생님들과도 정이 들어 버렸다.


계절이 바뀌고 날이 갈수록 자연에서 온 삼베라는 직물을 좀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져만 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안동포’라는 이름 함부로 쓰지 마시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