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삼기

삼베학교 에피소드.21

by 루화


‘내가 직조를 시작한 지 얼마나 됐지?’


직조를 한 지 올해로 8년이 되었다. 어쩌다 보니 나는 매일 직물을 짜고 있다.

직조를 정말 재밌게 해 왔지만 이렇게 계속할 줄은 몰랐고, 전통 삼베길쌈을 배울 줄은 더더욱 몰랐는데 어쩌다 보니 여기 안동에 와있다.


안동에서는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주로 혼자 있다 보니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많다.

좋아하던 음악도 요즘은 잘 안 듣고 정적과 고요함 속에서 내가 걸어온 지난 길을 돌아본다.

나는 어떤 길을 걸었고 그 길에서 무엇을 느꼈나.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특히 죽음과 가까웠던 순간들이 떠올라서 자꾸 돌아보지 않으려 했는데 어느 날 한 번은 용기 내어 내가 회피하고 있는 감정과 마주한 적이 있다.


과거의 상황과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을 이해한 순간, 나 자신을 향한 연민의 감정이 피어올랐다.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차올라 쏟아졌고 두 팔로 나를 꼭 감싸 안았다.

아무도 없는 버스 안에서. 나는 나 스스로를 보듬으며 그동안 나를 옭아맸던 모든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났다.


나는 꺼져있던 내 안의 불꽃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를 깊이 배울 수 있기를 늘 꿈꿔온 나는, 가장 하고 싶은 어떤 것을 찾아 헤맸었는데 내가 고대하던 그 일, 가장 하고 싶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지금은 직조가 되었다.

그걸 깨달았을 땐 가슴에 요동치는 느낌은 없었다. 그저 덤덤하게 그 일을 소명처럼 받아들이는 나 자신에게 놀라울 뿐.

나는 그동안 생각에만 그치고 못해본 일들을 다 해보자고 결단한다.


이러한 생각들은 산책길에서 많이 떠오른다. 걷다 보면 문득 기도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럴 땐 잠시 멈춰 서서 머리와 가슴, 양 어깨에 성호를 긋는다.

신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느낌, 그 은은한 감각이 땅을 딛는 발끝부터 온몸으로 퍼지면 조금 안심이 된다.


안동에서의 일상은 자연과 가깝다. 변화하는 절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바람의 방향과 물의 흐름과 변하는 구름으로, 해와 달의 온기로 자연은 우리에게 늘 말을 건다.

자연이 보내는 기운에 감탄하고 그것을 충분히 느끼는 것 만으로 근사한 화답이 된다.


논에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고소한 밤이 주렁주렁 열린 가을,

삼베학교에선 어느덧 길쌈의 마지막 단계인 ‘베 짜기’만을 남겨두고 있다.


전통 베틀에 날실을 걸기 전에 먼저 씨실을 삼아야 한다.

지난번까지 삼은 건 날실이었고 오늘부터는 씨실을 부지런히 삼아야 베를 짠다.

실바구니에 가득 차 몇 번을 비워낸 날실처럼 씨실도 몇 번이나 비워야 한 필의 베를 짤 수 있다.


스승님은 날실을 ‘날’, 씨실을 ‘씨’라고 부른다.


“날은 빳빳하게, 씨는 보드랍게 삼아야 한다.”


오늘도 삼둑가지를 앞에 두고 바구니에 부지런히 씨를 삼는다.

씨를 삼는 방법은 날과는 조금 다르다. 씨실은 보드라워야 하기 때문에 날실처럼 비벼꼬지 않는다.

실의 끝과 끝을 잇는 작업만 하기에 날을 삼을 때와 비교해 훨씬 수월하게 느껴진다.


씨를 삼는 방법으로는 ‘꼽비벼삼기’가 있다.

꼽비벼 삼는 방식은 날실이 너무 가늘어서 매를 낼 수 없을 때도 쓰인다.

스승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꼽비벼 보는데 실과 실이 이어진 부분이 볼록하게 올라와서 만지면 티가 난다.

티가 나지 않게 굵기가 고르고 일정하게 삼아져야 하는데 오랫동안 매를 내 삼다 보면 저절로 익혀지는 기술이라 단번에 되지 않는다.


“자꾸 하다 보면 는다.”


스승님은 나의 맞은편에 앉아계신다. 내가 조금이라도 동작이 굼뜨거나 헤매고 있으면 매의 눈으로 포착해 주의를 주거나 시범을 보이며 가르쳐주신다.

스승님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그 눈을 매섭게 뜨면 뿜어 나오는 에너지에 움찔할 때가 많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사고로 등이 굽은 몸으로 먼 길을 버스 타고 유모차 끌며 삼베학교를 오가는 스승님을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어떨 땐 꼬장하고 고집 센 노인 같다가도 어떨 땐 힘없이 순수하고 나약한 사람 같기도 한 그의 이중적인 모습에 나는 스승님이 어떤 사람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이곳에서 선생님들과 어울리고 나이 지긋한 마을 어르신들을 마주치다 보면 나이 드는 모습도 제각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늙고 싶지? 훌쩍 나이 든 내 모습을 상상한다.

정갈하게 쪽진 머리에 손수 지은 옷을 입고 목가적인 분위기의 집과 공방에서 실을 매만지고 있는 모습,

깐깐하지만 따뜻한 심성을 가진 할머니의 모습으로 나의 미래가 그려진다. 나는 그렇게 나이 들고 싶다.


직조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내 모습도 썩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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