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베학교 에피소드.22
베틀짜기실2.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오래 묵은 듯한 쿰쿰한 냄새가 풍겨온다.
어두컴컴한 공간에 개량베틀 두 대가 나란히 놓여있다.
“작년 이맘때쯤 오고 처음 들어오네.”
“자, 환기 좀 시키고 먼지도 털어냅시다.”
공간을 쓸고 닦고 베틀에 쌓인 검은 먼지를 털어낸다.
“작년에 한 필 짤 때 얼마나 애먹었는지.”
“올해는 잘 걸어봅시더.”
나무로 견고하게 만들어진 개량 베틀에 날실이 감긴 도투마리를 끼운다.
지난 시간에 뜨거운 불 앞에서 열심히 맨 날실이다.
7새 반필의 양.
날실의 무게는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다.
베틀에 달린 조명 스위치를 올려 불을 켠다.
탁-
불빛이 몇 번 깜박이더니 이내 환한 불이 들어온다.
“자, 이제 날실을 베틀에 걸어봅시더.”
날실을 베틀에 거는 것은 베틀에 장착된 수백 개의 바늘구멍에 날실을 한 올 한 올 끼우는 작업을 말한다.
날실을 끼우는 방식은 개량 베틀과 서양 베틀이 방법이 같아서 서양식 베틀만 다뤄온 나에게도 익숙한 작업이다.
“날실은 눈 잘 보이는 루화씨가 끼웁시더.”
“네, 실은 그냥 손으로 끼우면 되나요?”
“그래. 한 올 한 올 그 구멍에 맞춰 끼우면 된다.”
선생님들이 끼우는 순서에 맞게 실을 한 올 한 올 골라주면 나는 바늘구멍에 차곡차곡 실을 끼운다.
서양식 베틀에선 주로 혼자 작업을 하는데, 함께 실을 매만져주니 기분이 남다르다. 힘을 서로 나눠지니 훨씬 수월하다.
나이 지긋한 남순 선생님이 왼쪽에서, 선화 선생님이 오른쪽에서, 나는 가운데서
이렇게 셋이 협동해서 실을 끼운다.
“위에 뒤에”
“아래 앞에”
사침대 위로 올라온 실을 뒤에 종광 바늘에 끼우고,
사침대 아래로 내려간 실은 앞에 종광 바늘에 끼우고.
이렇게 위에 뒤에 아래 앞에를 반복해서 읊조리며 구멍에 차례대로 실을 끼운다.
실을 끼울 때는 마음이 차분해야 한다.
7새 한필 560가닥 중 한 가닥이라도 잘못 끼우면 처음부터 다시 끼워야 하기 때문에 최고로 집중해야 한다.
“선생님, 서양식 베틀에서는 갈고리처럼 생긴 실 끼우는 도구가 따로 있는데 그냥 손으로 끼워요?”
“그 도구로도 해봤는데 손으로 하는 게 익숙해서 나는 이게 더 편하더라고.”
바늘구멍이 작다 보니 나는 그동안 도구를 이용해 실을 끼웠었다.
이번엔 선생님처럼 도구 없이 손으로 끼우니 그것도 재밌다.
삼실 끝이 갈라져 있으면 침을 발라 가지런히 모은 다음 구멍에 끼운다.
구멍에 끼운 날실 가닥들을 손으로 쓱쓱 빗고 여민다.
풀을 먹여 빳빳한 삼실의 질감이 매력적이다.
쿰쿰한 된장냄새가 풍긴다.
‘꼬르륵’
“된장 냄새가 구수하니 배고파요.”
“절반까지 끼우고 간식 드십시더.”
위에 뒤에, 아래, 앞에.
손과 손들이 베틀 위에 모여 실을 고른다.
하나를 위해 협동하는 군더더기 없는 마음들이 모이니 금세 절반이 끼워진다.
“자, 다들 멈추시고 참 먹고 하십시더.”
한번 베틀 앞에 앉으면 좀처럼 엉덩이를 떼기가 힘들다.
“선생님, 우리 이제 참 먹고 할까요?”
“그르자, 먹자.”
오늘의 참은 구수한 밤이다. 교육생 선생님 중 순주선생님이 집에서 쪄온 밤이다.
밤을 반 가르니 노란 알맹이가 나온다. 봄에는 초록 쑥버무리, 여름엔 붉은 앵두, 가을엔 역시 노란 밤이다.
베를 짜며 중간중간 먹는 참으로도 자연의 흐름을 느낀다. 제법 날도 쌀쌀해지고 어느새 가을의 문턱을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