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베학교 에피소드.24
“편안하게 해라, 편안하게.”
점예 선생님의 말에 급해지던 마음이 차분해진다.
선생님은 내가 동작이 급해질 때면 한 번씩 이렇게 말씀을 해주곤 한다. ‘편안하게’ 이 말 한마디가 참 위안이 된다.
삼베실은 터래기(잔털)가 잘 나서 베를 짜기 전에 실을 먼저 정리해야 베를 짤 때 수월하다.
“터래기를 잘 봐야 돼. 이렇게 삐죽 나온 터래기 한올이 대여섯 올을 물고 같이 떨어져뿐다.”
터래기 한 올을 그냥 넘기면 어김없이 짜다가 떨어져 버린다.
실이 떨어지면 여분의 삼실(마재이)로 매듭을 지어서 잇거나 누에고치의 껍질로 만든 풀솜을 붙여 이으면 된다.
잇는 방법도 그때그때 다르고 사람마다 달라서 배우는 재미가 있다.
특히 점예선생님은 성격이 차분하셔서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 선생님이 베를 짤 때 살짝 짓는 미소를 보는 것도 배움의 묘미다.
나는 직물을 짤 때 어떤 표정을 짓지? 종종 윽, 하면서 인상을 찌푸리는 건 기억나는데...
나도 선생님처럼 저렇게 미소를 지어봐야지.
어느새 선생님 이마에 땀이 송글 맺힌다.
텅, 철컥, 텅, 철컥
소리가 반복되고 거침없이 북이 공간을 가로지른다.
나는 몰입한 상태로 직물을 짜는 선생님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선생님, 진짜 멋있어요.”
“자, 이제 루화씨 짜 봐라.”
선생님이 나에게 자리를 넘겨주신다.
나는 계량식 베틀에 올라 페달을 하나씩 밟으며 베틀을 운전한다.
왼발로 페달을 꾹 누르면 벌어지는 공간 사이로 북을 쭉 날리듯 밀어 넣는다. 통과한 북을 오른손으로 받고 바디를 탕 하고 친다.
“더 힘 있게 쳐라.”
이번엔 베틀이 울리도록 탕탕 내리친다.
“한 번만 탕하고 쳐야지, 두세 번 치면 그거 습관 된다.”
선생님들이 짠 직물을 보니 틈 없이 촘촘하다.
내가 짠 부분은 성글까 봐 두어 번 내리쳤더니 힘을 주어 한번에 내리치라는 가르침이 돌아온다.
확실히 선생님들의 동작엔 군더더기가 없다. 내 동작엔 군더더기가 많다.
선생님들의 베 짜는 동작을 보며 나의 동작을 돌아본다.
최대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게 가장 아름답게 느껴진다.
내가 베틀 운전석에 앉으면 선생님들이 쪽가위를 하나씩 들고 뒷도투마리에 감긴 터래기를 정리하며 길을 터 주신다.
“이렇게 같이 하면 훨씬 수월해.”
“그러겠네요. 혼자 하면 터래기 정리하고 짜고 하는 시간이 지금보다 더 걸리겠어요.”
“그라지. 같이 하면 금방 짠다.”
벌써 삼실 두 꾸리를 비웠다.
한 꾸리에 감긴 실의 양이 한자 반 정도 되니 오늘 세자 정도 짠 것이다.
우리가 짤 양은 스무자. 삼베 반필이다.
지금까지 여섯 자 정도 짰으니 앞으로 부지런히 달려야 한다.
"이에도 참기름 좀 바릅시더." 실이 걸린 바늘귀에도 참기름을 발라준다.
"들기름 바르면 안 돼요?"
"누가 들기름 바릅니꺼."
"들기름은 바르면 안 돼. 찌글 해져 베가 절어진다."
"루화씨, 참기름 발라보소."
작은 붓으로 이에다가 기름을 바른다. 참기름 냄새가 고소하니 좋다.
나는 베틀에 기름칠할 때 올리브 오일을 발랐는데 다음엔 내 베틀에도 참기름을 발라봐야지.
“자, 베에다가 물도 골고루 묻혀가며 짜라.”
붓에 물을 묻히고 날실에 촉촉하게 발라준다.
“이러면 촘촘하게 짜인다. 물이 마르면 틈이 생겨. 그래서 물을 골고루 발라가며 짜야 돼.”
그동안 내가 다뤘던 실들은 아주 얇은 울실 말고는 실이 떨어지거나 끊어질 걱정은 안 했었는데, 삼베는 차원이 다르다.
그동안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자연의 재료. 특히 온도와 습도에 민감해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정말 새로운 직조의 세계다.
새삼 삼베를 배우길 잘했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동안 왜 삼베를 배울 생각을 못했을까,
삼베 한필이 짜이면서 나 자신도 성장하고 있는걸 느껴서일까 그저 이 시간이 참 감사하다.
어느새 11월이 다가오고 있다.
얼마 전엔 이 기록을 토대로 연극을 만들어보려고 지원서를 쓰는데 쓰다 보니 사람들에게 삼베직물이 짜이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과정 한과정 아름다운 이 순간들을 마음에 잘 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