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베학교 에피소드.26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여니 뿌옇게 물안개가 가득하다.
안개가 산능선에 머물러 있는 풍경을 바라보며 오늘도 삼베학교로 향한다.
삼베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베틀이 있는 방을 열고 환기시킨다. 구수하다 못해 꼬릿하게 묵은 된장냄새를 날리기 위해서다.
늘 그렇듯 믹스커피 한잔을 뚝딱 마시고 베틀에 오른다.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부지런히 짜야한다.
짜는 속도를 높이기 위해 오늘은 점예선생님이 베틀에서 내려오지 않을 예정이다.
“선생님, 오늘은 실이 잘 안 끊어지는 것 같아요.”
“그렇지, 날이 촉촉해서 실이 녹는다.”
날이 촉촉해서 실이 녹는다. 아침에 내려앉은 물안개의 영향이다.
안동을 처음 방문했을 때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가 아침에 피는 물안개였는데 촉촉하게 내려앉은 물기가 삼실을 부드럽고 유연하게 만들어 오늘은 한참 동안 실이 끊어지지 않는다.
“삼실이 정말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네요.”
“그렇지, 삼실이 자연이라 그렇다.”
한 번을 안 떨어지고 베를 짜는 이 쾌감. 보는 내내 속이 다 시원하다. 신기하게 터래기도 잘 안 생기고 실이 아주 반듯하다.
한참을 짜는데 회장님이 들어오신다.
“자, 수고가 많으십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더. 삼베 교육이 이제 다음 주 목요일이면 마칩니더.”
“벌써요?”
“다음 주면 11월 중순이네요.”
“이번엔 작년보다 조금 더 일찍 마치게 되었습니더. 혹시 한필 다 짜려면 얼마나 남았습니꺼?”
“이제 반필 정도 짠 것 같습니더.”
“개미 표시한 부분이 나옵니더.”
“개미요?”
“여기 이 까만 자국 보이지?”
날실에 검은색 사인펜으로 표시한 부분이 있다. 정말 개미 몇 마리가 모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까만 표시가 곤충의 개미 닮았다고 해서 개미예요?”
“그래, 옛날부터 어른들이 삼을 날 때 이렇게 절반 부분을 표시했거든. 이제 반필 짰다는 걸 이렇게 알 수 있는 거지. 이렇게 까맣게 칠한 게 마치 개미 같아 보인다고 해서 개미라 한다.”
“참 옛 어른들이 머리가 좋아.”
나는 개미라고 해서 옛날말인가 혹은 안동사투리인가 했는데 곤충의 개미라니. 옛 어르신들 귀엽다.
“자, 그럼 부지런히 짜시고 다음 주까지 못 짜시면 그 이후에라도 나오셔서 이번 달까지 삼베 한 필을 잘 완성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더.”
“네.알겠습니더.”
“종강식은 12월 중에 있을 예정이니 다시 공지해드리겠습니더. 그럼 수고하십시오.”
벌써 다음 주가 교육의 마지막주라니 갑자기 일 년이 훅 지나가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루화씨 보고 싶어서 어쩌나.”
“선생님, 저도 많이 보고 싶을 것 같아요.”
종강하면 선생님들 못 볼 생각에 퍽 서운해진다.
“루화씨, 이제 종강하면 뭐 하나?”
“종강하면 집에 틀어박혀서 삼만 삼으려고요.”
“그래, 열심히 삼아봐라.”
“그리고 선생님들 댁에도 놀러 갈래요.”
“그래, 와라.”
“언제든지 놀러 와. 올 때 앞에서 전화하면 행복택시 불러줄게. 우리 집이 저 꼭대기다.”
“행복택시가 뭐예요?”
“나라에서 시골 노인들에게 해주는 게 있어. 그거 우리는 공짜다. 그러니 오기 전에 말해주면 내가 택시 불러놓을게, 그거 타고 우리 집으로 올라오면 돼.”
“네, 그럴게요 선생님. 미리 연락드리고 갈게요. 편하실 때 만나요.”
선생님들과 나는 어느새 친구가 되었다.
삼베학교 등하굣길에 걸은 마을 길과 정류장 벤치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며 도란도란 나눈 이야기들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있을 것 같다.
오늘은 버스에서 내릴 때 스승님의 손을 꽉 맞잡았다. 스승님의 손은 무척이나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