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삼베학교 에피소드.27

by 루화


눈을 떴을 때 방 안에 빛이 내려앉았다.

노란빛이었다.


커피를 따뜻하게 내려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연극이 될 거라고 상상하며 쓰고있는데 한 권의 책이 돼도 좋을 것 같다.


국민학교 1학년 때 담임이었던 국어선생님을 따라 나도 작가가 될래요라고 했던 어린 나.

나는 지금 두 번째 유년시절을 겪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의 나를 떠올리며 퍼즐 맞추듯 삶의 조각을 맞춰가고 있는, 서서히 그림이 보이기 시작하는 삼십 대의 끝자락.


그동안 참 뿌옇게 살아왔다.

이제 좀 선명하게 살기로 마음먹고 나는 내 삶의 방향을 생각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여러 갈래의 길 중에 한 방향으로 가고 싶은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내가 더 행복한 길.

금전도 명예도 찬사도 아닌 걸을 때 내 마음이 편안한 길.

지금 안동에 와 있는 이유이기도 한 직조. 그 길이 내가 걷고 싶은 길이다.


-


“선생님, 제가 혼자서 삼베 한 필을 짤 수 있을까요?”


삼베학교가 종강하면 이제부터 집에서 혼자 삼을 삼아야하기에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선생님께 묻는다.


“혼자 하면 더 낫지. 내가 나를 알거든. 어떻게 삼았는지, 어떻게 날았는지, 어떻게 맸는지 내가 아니까

지금처럼 여럿이 할 때보다 실이 고르고 작업도 일정하니 훨씬 더 수월할 거야.”


“제가 할 수 있을까요?”


“그럼, 루화씨 할 수 있어. 모르는 건 언제든 물어봐.”


정말 혼자서는 할 엄두가 안 났기에 고민이 많았는데 선생님의 한마디가 큰 힘이 된다.


1년 동안 삼이 삼베가 되는 전 과정을 보고 배우는 동안 나에게 가장 크게 와닿았던 건 무엇일까?

그동안 여러 상황에 대한 에피소드와 무릎을 탁 치며 ‘아하!’ 하는 깨달음의 순간들이 많았지만 결론적으로 삼이 삼베가 되는 과정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과정을 이해한다는 건 단순히 기술을 터득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다. 삼베를 매개로 과거의 사람들, 지금의 사람들과 만나지는 경험이기도 하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삼베의 고장, 금소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며 베 짜는 삶의 순간들을 계속 함께하고 싶다. 결국 내 마음은 사람에게 닿는다.


직조를 업으로 하고 있기에 직물을 더 잘 짜고 싶은 욕심도 많다.

내년에는 삼베 한 필을 짜보자는 다짐을 해보기도 하고, 이수자를 목표로 앞으로 5년간 더 배워볼까 하는 무모한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그런데 옛 어른들이 꿈은 크게 가지라고 하지 않았나,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현실로 가능케 하는 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아닐까?


삼베길쌈의 전 과정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자연과 사람의 만남으로 새로운 것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연에게서 행복감을 느끼고 자연에게서 위로받고 회복되듯이 흙에서 난 ‘삼’이라는 자연이 인간의 한 생애 동안 몸을 감싸는 옷이 되고, 생을 마친 이에게 입히는 수의가 되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자연과 관계맺고 사는 인생과도 같다. 나는 삼베를 통해 삶을 이해하고 싶다. 이것이야 말로 무모한 도전일까?


나는 늘 ‘직조가 좋아’라고 말했다.

그랬을 때 누군가는 비웃기도 하고, 누군가는 걱정하기도 하고, 정말 그래?라고 묻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직조를 사랑하기로 선택했다고.


-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노을이 질 때 산책을 나갔다. 나는 매일 이 길을 걸으며 지는 해를 바라본다. 노을을 바라보니 무언가 안에서부터 울컥하고 올라온다. 아침저녁으로 수없이 오간 산책길에서 느낀 여러 감정들이 다시금 떠올라서일까?


왜 눈물이 나는 걸까? 이유 모를 눈물이 막 펑펑 쏟아지는데 아낌없이 울었다. 눈물을 닦은 후엔 애썼다는 말이 남았다. 자려고 누웠는데 어렸을 때 엄마가 어둠 속에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던 기억이 났다. 그때의 엄마처럼 나를 토닥여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베 짜기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