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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니 Jun 18. 2024

세상을 지배하는 수도꼭지

반도체 인문학



고대 로마시대의 절대 권력을 유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 상수도 시스템을 빼놓을 수 없다. 도심으로부터 먼 곳의 물을 끌어오기 위해 로마인들은 건축학과 유체역학을 총 동원하여 수도교를 건설, 물이 수원지로부터 도심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오도록 수많은 수도교를 건설했다. 당시 로마에서 사용되는 1인당 상수도의 양은 180ℓ로 오늘날 이탈리아의 1인당 물 사용량인 234ℓ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풍부했으며 이는 도시의 인구 밀집도를 늘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정복지 곳곳에 동일한 상수도 시스템을 건설하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도록 세계를 지배했다.


로마 수도교 Pont du gard 30210 Vers-Pont-du-Gard, France


물이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흐르듯 전류 또한 전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물을 흐르거나 흐르지 않도록 제어할 수 있듯, 전자의 흐름을 제어한다면 전류도 흐르거나 흐르지 않도록 조절이 가능하다.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 건전지에 전선을 연결하여 스위치를 눌러 전구에 불을 켜고 스위치를 누르지 않으면 전구에 불이 꺼지는 아주 간단한 원리이다. 이 아주 간단한 원리를 사용하여 현재 디지털 세상에서는 0과 1, 단 두 가지를 사용하여 현존하는 모든 것을 이진법으로 표현할 수 있다. 아무리 방대한 연산이어도 모든 숫자는 이진법으로 변환이 가능하고 매우 빠른 속도로 가능하며, 우리의 목소리나 음악도 주파수로 변환하여 이를 이진법 숫자로 전달이 되니 통화도 하고 음악도 듣는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으면 색상을 RGB 혹은 CMYK 등의 숫자 정보로 변환되고 이를 이진법으로 바꾸어 저장된다. 우리가 인터넷을 사용할 때 발생되는 모든 데이터는 0과 1로 변환되어 데이터센터를 통해 해당 정보를 불러오거나 남에게 전달된다. 이렇듯 0과 1이라는 것을 제어할 수 있다면 모든것이 가능하다. 디지털 논리회로Logic circuit, 0과 1로만 이루어져서 계산이 되는 회로를 구현하기 위해 "전자의 흐름을 수도꼭지처럼 제어한다면 많은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에서 시작된다.

수도꼭지를 여는 힘을 가하면(1의 힘을 가하면) 물이 흐르고(1을 표현)
수도꼭지에 힘을 가하지 않으면(0의 힘을 가하면) 물이 멈추고(0을 표현)

전자에 힘을 가하면(1의 힘을 가하면) 전류가 흐르고(1을 표현)
전자에 힘을 가하지 않으면(0의 힘을 가하면) 전류가 멈추면(0을 표현)


1900년대 초 이를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은 전구의 모양을 한 진공관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포탄의 탄도를 예측하기 위한 계산기인 애니악ENIAC은 진공관 18800개로 만들어 무게만 30톤에 가까웠고 크기와 전력 소모가 매우 커서 이를 축소하는 연구가 많았다. 1925년 오스트리아-헝가리 물리학자인 릴리엔펠드Julius Edgar Lilienfeld는 전계효과를 이용한 작은 수도꼭지인 트랜지스터Transistor(전송Transfer + 저항Resistor의 합성어로 즉, 전류를 제어한다의 의미)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생각해 냈지만 당시 기술력으로는 이를 구현하기에는 불가능해 조용히 업계에서 묻혔다.


시간이 지나 1947년 미국의 통신회사인 AT&T의 벨 연구소의 소속 윌리엄 쇼클리William Bradford Shockley, 월터 브래튼Walter Houser Brattain, 존 바딘John Bardeen 3명의 물리학자가 세계 최초로 입력된 전류로 출력되는 전류의 양을 조절하는 트랜지스터를 개발해 내었다. 수도꼭지를 여는 양을 조절하여 물을 적거나 많게 흐르도록 적은 전류의 양으로 많은 전류를 제어하도록 했다. 이는 증폭의 원리로 당시 트랜지스터를 이용한 각종 계산기와 라디오로 상용화를 이끌었다. 이를 더 작고 하나의 칩으로 만든 것이 지속 연구가 되었고 마침내 1959년 같은 곳인 벨 연구소에서 이집트 출신의 모하메드 아탈라Mohammed John Atalla, 그리고 대한민국의 강대원 박사가 하나의 판 위에 전류를 제어하는 작은 수도꼭지인 MOSFET Metal Oxide Silicon Field Effect Transistor를 세계 최초로 개발 및 제조하게 된다. MOSFET은 모든 현대 반도체의 기반이며 뿌리이다. 전자에 힘을 가해 전류를 흐르거나 끊을 수 있는 전자수도꼭지를 마침내 발명하게 된 것이다.


강대원 박사가 1960년 출원한 MOSFET 특허


최신 반도체 칩 하나에는 전자의 흐름을 제어하는 수도꼭지인 MOSFET이 모바일의 경우 약 200억 개, 노트북의 경우 약 1000억 개가 빼곡히 박혀 있고 이 숫자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 수백억 개의 전자 수도꼭지가 한 곳에 모여 산업의 쌀이라고 부르는 반도체가 되는 것이다. 앞서 개발한 쇼클리의 트랜지스터와는 달리 하나의 판 위에 생산이 가능하며 이는 대량 생산과 밀집도를 높일 수 있었다. 강대원 박사의 업적에 비해 대중들에게 알려진 바가 적지만 그의 발명이 없었다면 오늘날 전기전자정보통신의 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강대원 박사가 61세의 나이로 1992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만약 그가 더 오래 살아 있었다면 노벨상을 충분히 받고도 남을만한 족적을 남겼다는 것은 이 업계에서 부정하는 이가 아무도 없다.


세상을 지배하는 수도꼭지


고대 로마는 물의 흐름을 제어하는 공학으로 강력한 제국이 되어 유럽을 지배했다. 에디슨과 테슬라는 전기를 발명하고 전구에 불을 밝혀 산업을 지배했다. 오늘날은 전자의 흐름을 제어하는 수도꼭지인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이 수도꼭지를 설계할 수 있는가, 혹은 제조할 수 있는가. 이 두 가지 중 하나라도 할 수 있어야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으며 그렇지 못한 국가는 수입에 의존하여 엄청난 자금을 사용하며 이 수도꼭지를 구매해야만 한다. 2000년 중반에 대학교 전공을 정하는 시점에 아버지와 논의를 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기계공학을 전공하셨고 철강산업에 종사하셨는데 나에게 '이제는 기계의 시대가 아니라 전자의 시대인 것 같다'라고 얘기를 해주며 전자공학과를 추천하였고 나는 별생각 없이 선택했었다. 지나고 보니 아버지의 말대로 정말로 그 시대가 와버렸고, 그 크기는 너무 컸다. 모든 국가들이 전자 흐름의 산업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전자의 흐름을 지배하는 자, 상을 지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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