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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니 Jun 21. 2024

통찰력

반도체 인문학



중국 삼국시대, 촉나라 제갈량은 정세의 흐름파악이 뛰어나 정치·외교·군사·경제 분야의 통찰력이 깊었으며 심지어는 천문학, 지리학을 토대로 기상을 예측까지 하는 당대 최고의 군사였다.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는 거시적인 흐름을 빠르게 파악하고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여 유비를 도와 촉나라를 건국하여 힘의 균형을 이루는 데 성공했다. 어릴 적 60권짜리의 삼국지를 많이 읽었는데 가장 멋져 보이는 캐릭터는 역시 제갈량이었다. 그 중 제일 닮고 싶은 능력은 몇 수나 앞을 읽고 곳곳에 기습공격을 할 수 있는 군사들을 적기적소에 배치하여 적군을 초토화시켜 사기를 완전히 꺾는 것이었다. 상대가 이 진영을 피해서 어디로 회군할 것인지, 그 이후 반격의 시점은 언제인지, 반격에 실패하면 다시 어디로 몸을 숨길지 등등 모든 것을 이미 꿰뚫고 있었으며 심지어 배치하는 장수의 인품과 능력치까지 고려하여 순서를 정하는 모습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대만계 일본인 카네시로 타케시가 연기한 제갈량 (영화 적벽대전)


가끔 일을 하다 보면 이러한 제갈량의 몇 수 앞을 보는 능력이 필요할 때가 많이 있다. 반도체 산업이 돌아가는 모습이 나의 업무에도 영향을 주는 것을 보면 내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을 흘러갈 때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시장을 읽고 업의 방향을 잡는 마케팅 쪽에서는 더욱더 어려워 보인다. 마케팅 개념 중에 마켓 센싱Market sensing은 ‘다른 경쟁자 보다 시장의 변화를 빨리 인지하고 이를 자사의 마케팅 전술에 활용하는 것’으로 매우 중요한 활동으로 이를 통해 기업들은 저마다 고객을 확보하고 영업이익을 극대화한다. 모든 산업의 마켓 센싱은 어렵지만 그 중 반도체 산업은 말 그대로 모든 분야에서 사용이 되기 때문에 극악의 난이도라고 할 수 있다.


단기적 사건을 보면 2021년 CODIV-19(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신규차량의 구매 시 차량용 반도체 수급 불안으로 차량 인도가 늦어져 전 세계가 비상이 걸렸다. 재택근무와 비대면 수업비중의 증가로 PC, 노트북 수요가 폭발을 하며 소비 위축을 예상한 반도체 기업들이 자연스레 수요에 맞는 반도체를 생산에 집중하게 되고 영업이익률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차량용 반도체 생산을 후순위로 미루었기 때문이다. 당시 친구 중 한 명이 차를 하나 구매하였는데 인도받는데 1년을 훌쩍 넘긴 기간을 기다려서 나에게 울분을 토한 적이 있다. 한술 더 떠 반도체 수급의 문제로 차량의 스마트키를 한 개만 받아서 나머지 한 개는 3개월 후에 받을 수 있다며 나보고 왜 이 반도체는 이렇게까지 기다려야 하냐며 내게 물은 적이 있었다. 21년도에 실제로 독일의 벤츠를 시작으로 미국의 포드 영국의 재규어 등등 생산 라인이 반도체 수급의 문제로 중단했다. 2019년 말 중국의 한 시에서 폐렴이 유행하고 있다고 뉴스가 매일 보도되었는데 당시 이로 인해 반도체 수급 때문에 자동차 생산라인이 멈춘다고 생각이나 했을까?


다른 예를 하나 더 보면, 2019년 7월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며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필수 소재들의 수출을 규제하기 시작했었다. 2018년 10월에 있었던 일본의 강제징용건에 대해서 한국의 대법원이 신일본제철에 배상을 하라는 최종 판결을 했고 이에 대한 보복성 조치였다. 작스러운 일본의 소재 주요 소재 수급 불가로 관련부서는 대혼란이 왔으며 대안을 찾기 위해  대체 소재를 위해 다른 업체들을 찾아 부리나케 평가를 하였고 규제 전 최대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일본으로 긴급 출장이 필요했다. 관련된 엔지니어들은 고객 쪽에 소재를 변경해야 한다는 설득을 같이 준비했어야만 했다. 물론 한일 갈등이 이러한 문제가 된다고 예견한 사람들도 있지만 현실화되리라고는 상상하기도 싫었을 것이다. (정치적 견해나 판결에 대한 잘잘못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자)


2021년 미국 조지타운의 도요타 RAV4 생산라인이 멈춰있는 모습 (TOYOTA)

이렇듯 반도체 업계에서 전략을 짜기 위해서는 반도체 관련 지식은 물론 고객사와 경쟁사 동향에 더해 거시환경 특히 정치, 외교, 사회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사건도 연관이 되는 것을 파악하는 인사이트Insight가 필요하다. 반도체 사이클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호황기 불황기가 일정하지 않은 주기로 그리고 그 기간도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변화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또한 완제품인 모바일, 컴퓨터, 가전과 자동차가 빠르게 변화하는 IT Trend를 따라가야 하며 우주, 항공, 군사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사용되기에 전 분야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전 세계 어디든 항공으로 3일 만에 납품이 가능한 반도체만의 공급망 관리SCM 특성을 잘 이해해야 한다.


통찰력이 들어있는 주머니가 필요하다.


업계에서 지난 10여 년간 세계의 크고 작은 변화가 나의 연봉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직접 느껴보니 간혹 이 시대에 거시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었던 제갈량의 통찰력이 절실해진다. 어릴 적 삼국지를 볼 때 가장 압권이었던 것은 제갈량이 군사 작전 시 장수들에게 가장 힘들고 최후의 순간일 때 주머니를 열어보라고 한다. 한참 후 그 주머니를 열어야 하는 순간이 올 때 확인해 본 장수들은 상황에 대한 해결책이 적혀있는 것을 보며 적군보다 오히려 제갈량의 통찰력을 무서워했다. 여러 가지 사건을 조합하여 다음의 매출이 극대화되는 시점과 제품을 찾아 선행 개발하여 시장에 출시하는 기업만이 살아남고 있다. 항상 플랜 B, C 등을 준비하면서 일을 하지만 그마저도 빗나갈 때가 너무나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가끔은 제갈량의 주머니가 나에게도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열어 이 산업에 대한 통찰력을 보고 싶은 상상을 해본다. 많은 변수에도 불구하고 바람의 방향까지 바꾸며 적벽대전을 대승으로 이끈 제갈량이 있었다면 반도체 업계에 전설적인 마케터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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