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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니 Jul 06. 2024

레시피

반도체 인문학



고대부터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먹을 수 있는 음식 재료를 선별하고 조리하는 법을 후손에게 전달하여 지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게 하였다. 제철에 먹을 수 있는 음식 종류를 정리하고, 영양의 흡수를 극대화하고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요리법을 개발하여 문서화했다. 오늘날 우리는 집에서 음식을 만들 때 인터넷에 나와있는 수만 가지의 레시피Recipe를 보고 맛있는 요리를 할 수 있으며 유명 음식점들은 본인들만의 비밀 레시피를 유지하며 맛집의 명성을 이어간다. 이처럼 식문화에 있어서 레시피는 매우 중요한 자산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튀김우동을 만든다고 가정해 보자. 우선 극강의 탄성을 가지며 식감이 우수하고 영양가가 높은 면을 만들기 위해 고품질의 밀가루로 반죽을 해야 한다. 우동의 면만 전문으로 만드는 셰프를 모셔와 밀가루와 물의 비율을 정확하게 계량해야 할 것이고 이때 반죽하는 셰프의 팔의 강도나 반죽하는 방향도 중요할 것이다. 감칠맛 나고 깊은 맛의 국물을 위해서는 국물의 장인을 데려와 몇 대째 내려오는 유명한 간장과 깊은 바다에서 다랑어 중 가장 활동성이 좋은 놈으로 만든 가쓰오부시를 몇 날 며칠이고 만들어서 이를 가지고 여러 비법의 소스와 함께 오랜 시간 국물을 고아내어야 한다. 튀김 또한 대충 만들 수 없다. 튀김을 전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셰프가 완벽한 제철의 재료를 가지고 정제가 잘 된 우수한 기름에 정확한 온도와 정확한 시간 그리고 식히는 법까지 철저하게 지킬 것이다. 총괄 셰프는 이 모든 것을 한데 어우러지도록 완벽한 타이밍과 순서를 지키며 조리를 한다면 가장 맛있는 우동이 탄생할 것이다.


어릴적 본 이 만화는 늘 최고의 요리를 만들며 시식할때마다 우주를 갔다오게 한다... (요리왕 비룡)


각 분야의 전문 셰프의 레시피들이 모여 하나의 완벽한 요리가 완성되듯 반도체 또한 수백 개의 레시피를 거쳐 완성된다. 반도체 공정 하나를 진행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마찬가지로 공정 레시피라고 부르며 이 하나의 레시피를 탄생시키기 위해 수많은 엔지니어가 달라붙는다. 가장 고순도의 가스Gas나 케미칼Chemical를 구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장을 찾아가 수급하고 이를 공수하기 위해 이동 경로와 보관법 또한 연구한다. 가스가 도착했다면 원하는 맛을 내기 위해 정확한 계량과 타이밍을 예측하고 이 중 몇 개를 골라 수십 번 테스트하여 가장 맛있는 맛이 날 때까지 연구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레시피가 수백 가지가 모여 요리를 진행하게 되면 가장 맛있는, 아니 가장 성능이 좋고 우수한 반도체가 탄생하게 된다.


레시피를 만드는 반도체 엔지니어들의 정성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동일한 레시피를 수백 번 진행했을 때 맛이 틀어지지 않을지도 검증하며 마치 프랜차이즈럼 다른 셰프들에게도 동일하게 맛을 내기 위해 다른 엔지니어들을 끊임없이 교육한다. 반죽의 방향과 속도에 따라 면의 탄성이 달라지듯 엔지니어만의 공정 노하우 knowhow 또한 레시피에 녹아들어 간다. 이 레시피들을 한데 모아 라면을 먼저 넣을지 스프를 먼저 넣을지 고민하듯 공정 레시피 순서를 고민하는 엔지니어들도 계속해서 수백 가지의 레시피 순서를 밤 새우며 조합해 본다.


나 또한 입사 이후로 늘 신규 제품에 알맞은 레시피를 개발하고, 개발된 레시피를 최적화하기 위해 수많은 평가를 했었다. 또한 레시피가 지속적으로 동일한 맛을 내기 위해 조리기구들을 손보았다. 이러다 보니 나만의 손 맛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 정도 맛을 내기 위해서는 대략 어느 정도 조미료가 들어가야 하며 어느 온도에서 끓여야 하는지 말이다. 반도체로 치면 케미컬의 비율이나 공정 온도 범위가 이제는 머릿속에 박힌다.


실력 있는 요리사가 권력의 상징


로마의 번성기에는 점령지가 넓어 각국에서 가져오는 처음 겪어보는 새로운 식재료들이 많아 이를 요리하기 위해 점령지에 있는 요리사들을 노예로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보니 이 노예 요리사의 수와 다양성이 각 가문의 힘을 상징하게 되었다. 2000년에 개봉된 벨기에 영화 <바텔> 은 샹티이 성에 오는 루이 14세를 접대하기 위해 샹티이 성의 집사이자 요리사인 바텔이 왕을 위한 음식과 연회를 준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요리와 실력에 감탄한 루이 14세는 바텔의 주인인 콩데 왕자에게 바텔을 걸고 포커한판을 치자고 제안한다. 이만큼 실력 있는 요리사를 데리고 있는 것이 권력의 상징이었다.


루이 14세가 샹티이 성주에게 집사 바텔을 걸고 한판 하자고 제안한다. (영화 바텔)


현대 반도체 산업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레시피 하나하나가 칩의 경쟁력을 올릴 수 있으며 셰프 격인 실력 있는 엔지니어들을 각 기업이 모시기 위한 포커판을 펼치고 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자국 반도체 맛을 끌어올리기 위해 연봉의 최대 최대 9배까지 제시하며 레시피를 잘 아는 엔지니어들을 스카우트를 했었다. 이 때문에 공정 레시피가 유출되어 국가적 손해를 봤다는 기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또한 다가올 다음의 반도체 대전을 준비하며 중요 레시피를 개발했었던, 혹은 다루고 있는 엔지니어들을 모셔오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도 움직이고 있다. 공정 레시피는 반도체 기업에서 중요한 자산이고 경쟁력이다. 우리 또한 이토록 중요한 레시피를 지키기 위해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엔지니어에 대한 대우와 인식이 더 좋아지길 바라본다. 후대에 먹을 수 있는 식재료를 알려주듯 우리 생존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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