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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니 Jul 14. 2024

거대한 먼지

반도체 인문학



나일강에서 꽃 피운 고대 이집트 문명인들은 '삶은 축제'라고 생각하며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가장 멋지게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청결을 위해 머리와 수염을 깎았으며, 민트를 이용하여 구취를 제거하는 노력을 했고 계층에 관계없이 모든 가정에서 매일 손과 몸을 씻을 수 있도록 세면기의 형태가 존재했다. 헤어브러시, 면도기 등 시대를 뛰어넘는 도구들이 있을 만큼 위생은 하나의 문화적 가치였다. 사후 세계를 믿었던 이들은 신체를 늘 깨끗하고 단정하게 유지하는 것에 특히 신경을 썼다. 몸뿐만 아니라 청소에도 예민했다. 야자수 잎이나 볏짚으로 빗자루를 만들어 공간을 청소하는 모습, 그리고 그 먼지가 날리지 않도록 물을 뿌리는 모습의 그림을 쉽게 볼 수 있다. 이토록 신체에서, 공간에서 먼지를 제거하는 청결한 활동이 신체적, 정신적 웰빙에 중요하다고 굳게 믿었다.


카이로 상류 도시 Armarna 시대 청소하는 모습의 석화 (뉴욕메트로폴리탄미술관)


청소에 온 힘을 다해 진심인 곳은 반도체 제조가 한창 진행되는 공장인 팹(Fabrication 의 약자인 Fab) 내부이다. 반도체 회로가 워낙 미세한 공정이기 때문에 아주 작은 먼지 하나에도 심각한 불량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먼지 제거를 전문적으로 하는 엔지니어들이 수없이 달라붙는다. 이들은 반도체 제조 공장 내부를 통상 클래스10(Class 10) 이하로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클래스는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ft(대략 30cm) 정도 되는 정입방면체 내 0.1um(마이크로미터) 파티클이 10개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흔히 초미세먼지라고 얘기하는 PM2.5는 지름이 2.5um로 이보다 1/25 정도 작은 먼지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작은 사이즈의 먼지들을 제어하기 때문에 우리는 보통 먼지라는 표현보다는 파티클Particle(입자) 제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팹은 수천 그루의 키가 매우 큰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다. 이 숲들이 외부에서 오는 바람 속 각종 중금속과 미세먼지를 자연의 힘을 빌려 1차적으로 막는다. 팹 건물 또한 엄청난 성능을 자랑하는 먼지필터들로 감싸져 있다. 외부 공기가 들어올 때 수십 겹의 필터들을 거치게 되면 초미세먼지보다도 작은 사이즈가 막아지게 되고, 수증기에 응고되어 들어오 먼지까지 차단하기 위해 수분도 제거되어 들어온다. 팹 내부는 외부보다도 1 기압 정도가 높게 형성이 되어있다. 혹시라도 들어온 먼지들이 기압에 의해서 공중에 떠있지 않고 빠르게 아래로 가라앉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공장 안에서 밖으로 공기의 흐름을 제어하는 목적도 가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가끔은 나도 업무를 위해 팹으로 들어갈 일이 있는데 그 안에서 장시간 근무하면 기압으로 인해 쉽게 피곤해진다.


엔지니어들이 팹으로 들어갈 때면 방진복을 입어야만 한다. 하얀색 우주복처럼 생긴 이 옷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몸을 드러내서는 안 되도록 여미고 눈만 보일 정도로 입는다.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 또한 파티클의 원인이기에 출입 전 화장은 불가능하다. 방진복은 먼지가 나지 않는 재질로 만들어지며 정전기로 인해 먼지들이 포집되는 것을 막고자 가느다란 전선 장치가 내장되어있다. 입는 과정에서도 강력한 공기바람으로 몇 번이고 에어샤워를 온몸으로 맞아 모든 먼지가 제거되면 그때서야 비로소 출입이 가능해진다. 이토록 철저하게 입는 이유는 내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도체를 나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다.


팹 내부에도 엔지니어들의 회의실도 별도 존재한다. 옷을 갈아입고 나가서 회의하기에는 시간이 아깝고 번거롭다. (Intel)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발견되는 먼지들이 존재하게 된다. 아무리 잘 닦고, 잘 거르고 들어왔지만 한 톨이라도 몸이나 업무 용구에 묻어서 들어온다. 공정을 진행할 수천수만 번 움직임을 반복하며 헌신하는 설비 안의 로봇들로부터 발생한다. 우리가 쓰는 가스나 케미컬의 반응에 의해서 발생하는 반응성 입자들 또한 주범이다. 이러한 먼지들이 단 하나라도 반도체에 달라붙게 된다면 곧 불량이다.


전자에게도 나에게도 이 먼지는 더 이상 작지 않다


반도체 공정은 전자가 다니는 길을 만드는 도로를 만드는 공사를 하는 것이다. 정보를 가지는 전자들이 잘 이동하여 서로 만나 연산을 하고 저장을 하며 회로는 구동이 된다. 그러나 가는 길이 먼지로 막혀있게 된다면 더 이상 갈 수 없는 전자들은 정보를 전달할 수 없게 된다. 자들이 보기엔 자신의 도로에 거대한 바위가 있어 길이 망가진 것처럼 보인다. 때로는 옆길과 같이 망가져 우회해서 가지도 못한다. 때로는 공정진행 시 먼지가 화학반응으로 제거되면서 길이 통째로 같이 뜯겨나가 땅이 움푹 파인다. 이 작고 작은 먼지가 반도체 입장에서는 너무나 거대하다.


반도체 회로 위 여러가지 먼지의 형태, 올라가는 순간 끝이다.


나 또한 이 먼지들이 어느 순간부터 거대하게 보인다. 실제로는 전자입자를 이용해야만 관측이 되는 너무나 작은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불량 사진들을 보면 숨이 막힌다. 연차가 쌓이고 제품과 공정의 책임이 나에게 주어지면서 파티클이 발생할 때마다 그 크기는 압도적으로 커져 보인다. 마치 길 위에 거대한 운석이 떨어져 모든 것이 파괴되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불량만 전문적으로 검출하는 부서에서 나에게 연락이 오면 전화받기 전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어디서부터 이 파티클이 나왔는지 빠르게 찾아내어야 한다. 이미 발견이 되었다면 이를 제거하기 위해 파티클에만 적절하게 반응하고 회로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화학반응을 계산하고 화학물질을 선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도체는 계속해서 죽어간다.


문명은 따뜻한 온도를 지닌 온대기후 대역에서 큰 강 근처로 수원을 얻을 수 있는 곳부터 발생하였다. 발생된 문명들이 생존을 이어가며 지속 번성하기 위해서는 질병을 제어할 위생의 개념이 필요했다. 하수도 개념을 도입한 로마는 질병률을 낮춰 문명을 제국으로 끌어올렸다. 또 다른 문명인 반도체 산업은 생존을 이어가기 위해 파티클이라는 불순물과의 사투를 이어간다. 반도체 칩메이커들은 서로 경쟁업체임에도 불구하고 이 파티클 제거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연구하는 연구소까지 존재할만큼 이 문명의 생존을 이어가기 위해 손을 잡았다. 파티클을 제어하고 정확하게 제거하는 엔지니어링도 점점 더 정교해지고 하나의 공학으로 잡았다. 이 거대한 먼지를 극한으로 낮추는 반도체만이 고도화된 문명을 이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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