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바느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작은 노력

by 밀크티

아버지는 가정적인 편은 아니었지만 유독 바느질 하는 것을 좋아하셨다. 내 옷에 구멍이 나거나 단추가 떨어질 때면 아버지는 항상 옷을 자신에게 가지고 오라고 하셨다. 그럼 나는 아버지가 어머니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 신기하고 또 기뻐서 조금 빠른 걸음으로 아빠에게 내 옷을 넘겼다. 아버지는 당신 앞에 딸을 앉혀놓고 바느질을 가르치며 옷의 빈 공간을 정성스럽게 채워주셨다.


‘아빠는 왜 바느질을 좋아해?’


아버지는 어린 자식의 호기심어린 질문에 묵직한 이야기를 꺼내셨다.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아버지. 작은 촌락에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연명하던 가족에게 아버지는 애물단지 같은 존재였다. 시부모님까지 모두 10명의 식구가 사는 집에서 그들의 성치 않은 옷은 항상 어머니의 몫이었다고 한다. 밤이 내리고 이내 잠이 든 식구들의 고른 숨소리가 들릴 때쯤이면 어머니는 홀로 깨어 식구들의 옷을 바느질 했다. 아버지는 졸리지 않다는 핑계로 그런 어머니 곁에서 바늘에 실을 꿰고 매듭을 묶는 일을 도왔다고 했다. 그런 아들에게 나지막이 내뱉으시던 어머니의 ‘고맙다’는 소리가 그렇게 기분 좋을 수 없었다고.


아버지가 미처 철이 들기도 전에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그래서인지 내 아버지께서는 할머니와의 추억을 이야기할 땐 항상 당신이 말썽을 부린 기억을 먼저 꺼내놓으신다. 밭에서 일하시는 어머니에게 돌을 던지던 철없던 아이, 기성회비를 잃어버렸다는 거짓말로 어머니가 이웃집에 고개를 숙여가며 돈을 빌리게 만들었던 중학생, 그런 어머니의 밥과 반찬을 뺏어먹던 가난한 집 막내아들. 항상 자신이 못나게 굴었던 일들만 기억하고 후회했던 아버지가 유일하게 반성하지 않아도 되는 추억이 어머니와 함께 바느질을 하던 그 시간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옷 바느질을 좋아하셨다. 그 시절의 어머니 곁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자식들은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으면서 아버지에게 좀처럼 바느질을 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우리는 예전처럼 단추를 자주 잃어버리지 않았을 뿐더러 옷을 기워 입기엔 세상이 많이 변했고 기워진 옷을 입고 싶지 않았다. 혹여 바느질거리가 생기더라도 정수리에 서리가 앉은 아버지에게 차마 맡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자식은, 나는, 바느질을 할 때마다 할머니를 추억하던 아버지가 생각나고 바느질을 잘해야 시집을 잘 간다고 하던 그 분의 너스레가 함께 떠오른다. 나에게도 옷 바느질은 나의 부모를 생각하게 만드는 매개체가 되었다.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집을 비운 어느 낮, 나는 집에 홀로 있었다. 조용한 공간의 틈 사이로 세탁완료를 알리는 알람 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괜스레 몸을 움직이기 귀찮은 그런 나른한 오후였다. 세탁물을 꺼내기가 싫었지만, 창 밖에 퍼진 햇살을 본 나는, ‘지금 옷을 널면 바삭하게 마르겠지’라는 본능적인 생각이 들자 결국 햇빛에 드리워진 그림자처럼 늘어져 있던 몸을 일으켰다.


물을 머금은 옷을 허공에 탈탈 털었다. 깊게 주름졌던 옷이 제 모양을 찾았고 그 형태 그대로 옷걸이에 옷을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뒤집어진 옷을 다시 뒤집고, 말려 들어간 팔소매를 꺼내던 나는 단추가 떨어진 어머니의 옷을 발견했다. 피케셔츠였는데 세 개의 단추 중 두 개가 떨어지고 한 개마저도 가장 위쪽 단추라 있는 것이 쓸모없을 지경이었다. 불현듯 단추를 모두 잠그지 않고 옷을 입고 나가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더워서 그랬으려니 했는데 실은 잠글 단추가 없었던 거였다. 나는 괜히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가족들의 옷은 부지런히 세탁소에 나르고 다림질 하면서 정작 본인의 것을 챙기지 않는 무심함이 나에게 꽂히는 비난의 화살 같았다. 나는 죄책감을 씻으려 반짇고리를 꺼내 제일 위쪽 단추를 제일 아래로 옮겼다. 그리고 택에 붙어있는 여분 단추를 떼어 내어 그 위에 옮겨 달았다. 그렇게 단추 두 개가 채워진 어머니의 옷을 햇빛에 다시 널었다.


다음날 바짝 마른 빨래를 걷어내던 엄마가 나를 불렀다. 옷에 단추를 네가 달았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엄마가 말했다. ‘고맙다.’ 나는 왠지 그 옛날 아버지가 졸린 눈을 비벼가며 당신의 어머니 곁을 지켰을 때의 그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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