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에게 가는 길
늘 이렇다니까. 꼭 한 발씩 늦어.
전날 저녁, 스모선수의 이름이 무엇인지에 대해 모자가 얘기를 했었지만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나중에야 스모선수의 이름이 떠오른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의 영화는 일상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걸어도 걸어도’(2008)는 나쁘지도 그렇다고 착하지도 않아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는 보통의 가족 이야기를 담아냈다.
나는 고모를 사랑하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그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 고모가 중증 치매에 걸려 4년을 요양원에 누워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고모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버스를 타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 스쳐가는 풍경 속 작은 빵집이 보였다. 빵은 나에 대한 고모의 애정을 느끼는 유일한 매개체였다.
고모에게 치매는 아주 조금씩 조심히 가족들에게 찾아왔다. 그것이 치매임을 의심하긴 했으나 인정하기까지는 참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러다 고모가 길거리에서 길을 잃는 횟수가 늘고 물건을 훔치고 식탐이 늘어나는 등 명백한 증상이 나타나자 우리 모두는 고모의 치매를 인정했다.
치매 증상 초기에 고모는 이상하게 우리 집에 자주 왔다. 역시 고모는 자주 길을 잃었다. 우리 동네에서 길을 잃은 고모를 찾아오는 일은 항상 나의 일이었다. 열 번 중에 열 번은 고모를 만나러 가는 반가움보다 귀찮음이 더했다. 자신을 찾으러 온 나에게 처음에는 구조가 바뀌었다느니 잠시 헷갈렸다느니 겸연쩍은 변명을 하더니 아주 나중에는 초점 없는 눈동자로 길바닥에 털썩 앉아있기도 했다. 그때는 내가 먼저 고모가 했던 변명들로 괜히 고모를 안심시키려 들었다.
집에 도착하면 고모가 가방을 열어 크림 가득한 모카빵을 나에게 건넸고 나는 반가운 웃음으로 그걸 받았다. 그 마지막까지도 고모 가방 속엔 나에게 줄 빵이 들어있었다. 내가 집에 없어서 고모를 뵙지 못했을 때도 집에 돌아오면 식탁 위에 크림빵이 올려져있었다. 그럼 나는 ‘고모 오셨었어?’라고 엄마에게 물었다.
‘고모가 네 거라고 손도 못 대게 하더라.’
고모를 보러가는 버스 안에서 평소보다 자주 눈을 깜박이며 또 눈을 크게 뜨며 눈물을 참았다. 고모를 보러가는 병원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고모가 있는 303호 병실로 들어섰다. 6개의 병상 중 환자의 팔 다리를 묶어 놓은 병상은 단 하나였다. 그리고 그 곳에 나의 고모가 있었다. 고모의 머리 위에는 ‘욕창 고위험군’이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길바닥에 앉아있던 고모가 내가 본 가장 불행한 고모의 모습이길 바랐다. 하지만 그 한계는 고모가 나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순간까지 오더니 다시 최고를 경신했다. 요양사의 허락을 구하고 고모를 묶고 있는 끈을 모두 풀었다. 고모도 나에게 나도 고모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곤 내 손으로 다시 고모의 팔다리를 묶고 병원을 나왔다.
고개를 들고 걸을 힘이 없었다. 길을 터덜터덜 걸으며 고모를 생각했다. 사실 고모는 사랑한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는 내 가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