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적인 사랑을 믿나요?

영화 '500일의 썸머'

by 밀크티
It wasn't me you were right about.


운명은 믿지 않는다며 톰과 진지한 만남을 거부해 온 썸머가 갑자기 운명의 남자를 만났다며 톰을 떠나버리자 많은 관객들은 ‘썸머 나쁜X'이라는 감상평을 남기고 영화관을 떠났다.




어떻게 운명을 만났냐는 톰의 질문에 썸머는 “식당에 앉아서 도리언 그레이를 읽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가 내게 와선 책에 대해서 물어봤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만약 그 시간에 영화를 보러 갔으면 어땠을까?’, ‘다른 곳에 밥을 먹으러 갔었다면?’ 등의 이유를 덧붙여 운명의 명분을 더했다.


사실 썸머와 톰의 첫 만남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단 둘이 타게 된 엘리베이터, 톰의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썸머는 ‘그 음악 저도 좋아해요.’라고 처음 말을 걸었다. 이 영화가 운명적 사랑에 대해 말하는 영화였다면 ‘톰이 음악을 듣지 않았다면?’, ‘엘리베이터에 다른 누군가가 탔었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지며 둘은 영원히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둘은 헤어졌다.


썸머는 톰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고 헤어짐의 이유를 설명했지만 사실 귀책사유는 톰에게 있었다. 톰이 생각하는 운명은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불변의 것이었다. 그래서 사랑을 함에 있어 항상 수동적이었다. 썸머를 아주 많이 사랑하긴 했지만 그녀가 좋아하는 음악, 그녀가 하고 싶은 일 따위에 관심이 없었다. 무엇보다 썸머와 톰이 싸우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온 밤. 톰은 끝까지 썸머에게 연락하지 않았지만 썸머는 비에 잔뜩 젖은 채 톰의 집 현관을 두드렸다. 몇 번이나 끊어질 뻔 한 운명의 끈을 계속 잡고 있었던 것은 썸머였다. 톰은 운명적으로 찾아온 사랑을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고 여기며 지키려 노력하지 않았다.



나의 어머니 역시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다. 아버지와의 결혼이 그 생각을 갖게 만든 결정적 이유였다.


아버지를 소개팅으로 처음 만난 날, 어머니는 무례할 정도로 싫은 기색을 보이며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났다고 했다. 계속된 거절과 계속된 구애가 이어졌다. 어느 날 자신의 학원에까지 찾아온 아버지에게 모진 말을 내뱉고 나서야 만남을 끝낼 수 있었다고 했다. 1년 뒤 어머니가 운명을 믿게 된 순간이 찾아왔다. 잃어버린 지갑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고 경찰서에 간 어머니. 그녀의 지갑은 1년 전 모진 말을 뱉게 만들었던 소개팅남이, 경찰관이, 지금의 남편이 들고 있었다.


사실 어머니에겐 운명 같은 일이었지만 아버지에겐 그렇지 않았다. 그는 그녀에게 수없이 거절을 당했지만 또다시 고백을 했다. 그녀가 만나주지 않자 그녀의 학원 앞까지 찾아가고 기어코 모진 말을 듣고 나서야 돌아섰다. 1년 뒤, 당신이 싫어 죽겠다던 그녀의 지갑이 동료 경찰관을 통해서 자신에게 전해졌을 때 다시 한 번 지갑을 들고 그 여자를 기다렸다.


운명, 특히 사랑은 불현듯 오지 않는다. 그 운명이 오기까지 수많은 기회가 있었을 것이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비로소 나의 운명이 된다.


지금 운명적인 사랑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랑이 쉽게 이어지고 있다면 분명 상대방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중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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