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퇴직 후에도 부지런히 일자리를 찾으러 다녔다.
공무원 퇴직 후 여유롭게 사나 싶었는데 아빠에겐 여전히 돈이 문제였나 보다.
나이가 들수록 베풀 곳은 많아지는데 공무원 연금에서 아빠 몫으로 쪼개져 나온 용돈으로 베풀고 사는 삶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단다. 종종 엄마의 구박도 있었다. 그렇게 밥 사주고 다니면 우린 뭐가 남느냐는 뭐 그런.
아빠는 퇴직 동기들과 함께 굴삭기 교육(?) 같은 걸 들었단다. 여하튼 자격증을 취득해서 취업을 시켜주는 프로그램이었다. 60이 넘은 퇴직자가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잠시 딴짓을 하자 강사가 아빠한테 그랬단다.
‘그렇게 해서 취업할 수 있겠어요?’
아빠는 그날 이후 교육받는 걸 포기했다. 생계가 달린 일도 아닌데 그렇게 굴욕적인 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여차저차 초등학교 안전지킴이로 취업하게 되었다. 거의 40년 만에 면접이란 것도 봤단다. 면접 합격 통보를 받고 아빠는 당시 무직자인 내게 말했다.
‘아빠가 니보다 면접 잘 본다’
아무튼, 자원봉사자 개념이라 최저시급도 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적당히 용돈을 벌기엔 충분했고, 일도 여유로웠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편지 받는 행복도 느끼고 아이들과 먹을 걸 나눠먹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또 아빠의 자존심을 건드린 건 학부모들의 경비원 취급이었다고 한다.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게 아니라 경비원에게 했어도 기분 나쁠 명령을 아빠에게 한 것이 문제였다)
아빠는 1년의 계약기간이 끝나고 못해먹겠다며 초등학교를 나왔다.
그렇게 한 달 정도가 지나고 아빠가 뜬금없이 선언했다.
‘나 절에 갈 거다’
우리 가족에게는 뜬금없기도 하고, 또 자연스럽기도 했다. 우리 가족여행의 부제는 매번 사찰여행이었으니까.
그렇지만 단순히 절이 좋아서 결정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