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의 인생을 갈아 넣었다.

by 밀크티

나의 삶의 전반에는 엄마의 희생이 깔려있었다. 내가 원한 건 아니었다고 우길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막은 적도 없었다. 엄마의 인생을 갈아 나의 토양의 비료가 될 때 나는 그 따뜻한 땅 속에서 뿌리를 뻗히고 튼튼하게 자라났다.

그 방증은 엄마의 ‘이젤’이다. 엄마는 결혼 전까지 미술학원을 운영했다. 결혼을 할 때쯤 ‘여자는 집에서 소를 키워야 한다’는 집안 어르신들의 말씀에 손에서 붓을 놨다. 엄마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자라는 동안 엄마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지만 우리 집에 놓여있는 이젤과 물감들이 과거를 짐작케 했다. 엄마의 작품도 몇 점 있었다. 나는 엄마가 꽤 그림을 잘 그린다고 생각했다.

내가 6살이 됐을 때 우리 집은 지긋한 전세를 벗어나 번듯한 집을 마련했다. 전셋집에서 우리 집은 1시간 정도.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부모님이 부지런히 싼 짐은 트럭에 실려, 1시간을 달려 새집으로 왔을 거다.

그때 엄마의 이젤과 물감, 붓, 작품이 모두 실려왔다. 엄마는 족히 10년 동안 그림을 그린 적 없으면서 꾸역꾸역 본인의 짐을 챙겼다. 작지 않은 부피에 ‘그냥 버릴까 말까’도 몇 번 고민했을 거다. 그래도 ‘그것들’은 새집으로까지 왔다.

집은 훨씬 커졌는데 엄마의 이젤은 어쩐지 앞 베란다 창고로 갔다. 이따금씩 창고를 열고 닫다 물감이 굴러 나오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실수로 물감을 밟았다. 베란다 바닥에 하얀색 유화물감이 터졌다. 엄마는 잔소리 없이 그 물감을 닦고 버렸다.

우리 엄마는 가정주부로서 참 부지런히 살았다. 매일 바닥을 윤기 나게 닦았고, 매일 새로 어지러워지는 내 책상을 정리했다. 계절이 지난 옷들은 박스에 들어가고, 새 계절의 옷들이 정갈하게 걸렸다. 계절마다 이불이 바뀌었다. 내 흰색 운동화가 회색이 될 때쯤이면 다시 흰색으로 만드는 건 엄마였다.

그 시간 동안 엄마의 이젤에는 먼지가 쌓였다. 물감은 하나둘씩 야금야금 없어지더니 거의 대부분이 사라지고 말았다. 엄마의 붓은 딱딱해질 대로 딱딱해졌다.

십여 년 후, 부모님이 부지런히 살아온 덕분에 우리는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갈 수 있었다. 나는 그저 먹고, 자고 했을 뿐인데 우리 부모님은 부지런히 벌었고, 모았다. 신나는 마음으로 우리 가족은 각자의 짐을 열심히 포장했다.

짐을 모두 푼 새 집의 모습은 엄마도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자신이 한 인테리어에 대한 자부심을 계속 드러냈다. 자신의 미적 감각은 죽지 않았다는 거다. 그 순간 알게 됐다. 엄마의 이젤이 사라졌다는 거.

엄마에게 이젤이 어디 갔냐 물으니 "그거 쓰지도 못하는 거"라고 말했다.


엄마의 이젤이 녹이 슬고 버려졌다. 지금 나보다 어린 나이의 엄마가 이젤을 세우고 그림을 그리며 꿨던 꿈들도 사라졌을 거다. 그 꿈에 나라는 존재가 있었을 리도 없다. 엄마의 이젤이 버려지는 동안 나는 무럭무럭 자랐다. 그리고 나는 내 꿈을 만들었다.

결국 엄마에겐 이젤이 버려지고 내가 남았다. 엄마 인생의 결과물이 나인 셈이다. 나는 더 바르게 자라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엄마를 좀 더 돌보는 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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