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일시적→과소 평가…연착륙 자신→도전적인 과제
역사상 최악의 금리인상기를 보내고 있는 지금,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은 '세계 경제의 조타수'를 불린 옐런 그리스펀 전 연준의장이 되길 바랐지만, 폴 볼커에 가까운 인상입니다. 폴 볼커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잡기 위해 고강도 금리 인상으로 경기침체라는 대가를 치르게 한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유명합니다.
시장에서는 "연준의 신뢰도는 제로"라며 파월 의장을 매섭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파월이 시장의 신뢰를 잃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의 오판은 무엇이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경제가 코로나19 충격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기저효과에 따른 일시적인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수 있지만, 우리(연준)는 인내하겠다" (2021.03)
코로나19 당시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금리 인하와 양적 완화로 시장은 빠르게 안정을 찾았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시장은 파월에 환호했죠. 그리고 다음은 '언제 금리를 올릴 것인가'에 쏠렸습니다.
2022년 3월 처음으로 금리를 올렸습니다. 그러면서도 파월 의장은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화상 대담에서 "1960년대와 1970년대의 하이 인플레이션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며 "일시적인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는 우리는 인내심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침체 없이 연착륙할 수 있다" (2022.03)
금리 인상이 시작되고, 시장은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공급망 이슈도 더해지면서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여기에 대해 파월은 연준의 오판을 인정하면서도 경제가 연착륙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당시 파월 의장은 전미기업경제협회(NABE) 콘퍼런스에 참석해 "고용시장이 매우 강하고 인플레이션은 너무 높다"면서 "통화정책 스탠스(입지)를 더 중립적 수준으로 되돌리기 위해 신속하게(expeditiously) 대응할 필요가 분명하게 있다"고 말했습니다. 금리를 예상보다 빠르고 가파르게 올릴 수 있다는 발언은 시장에 악재로 작용했습니다.
그리고 파월 의장은 향후 3년 동안 인플레이션이 "2%에 가깝게"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파월 의장은 "경제가 매우 강하고 더 긴축적 통화정책을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자리 잡았다"고 자신했습니다.
"인플레 과소평가했다" (2022.06)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을 과소평가했다고 인정했습니다. 파월은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청문회에서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과소평가했다'는 의원들의 지적에 "뒤늦게 깨달은 일이지만 분명히 우리는 그랬다"고 말했습니다.
파월은 "노동시장 참여율이 매우 높았고 지난해 여름엔 인플레이션이 하락 추세였다"며 "이런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는 생각이 타당해 보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가와 음식 가격이 오르고 공급망 문제로 점점 더 연착륙이 도전적으로 변하고 있다"면서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도 나타내는 등 경제 상황이 심상치않음을 언급했습니다.
"경기 연착륙의 가능성은 줄어들 것 같다" (2022.09)
파월 의장은 경기 연착륙에 대한 자신감도 수정했습니다. 지난 9월 연준 통화정책결정기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사상 처음으로 3회 연속 금리를 0.75%p 올리는 자이언트스텝을 강행했습니다.
이날 FOMC 정례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FOMC는 물가상승률을 2%로 되돌리기 위해 굳건하게 결심한 상태"라며 물가상승률을 둔화하는 작업이 끝날 때까지 "이 일(통화긴축)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파월 의장은 공격적인 금리인상이 경기침체를 초래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면서도 "더욱 제약적인 정책의 결과로 연착륙 확률이 줄어들 것 같다"고 말하면서 연착륙은 "매우 도전적인" 과제라고 덧붙였습니다.
"경기 둔화…연준의 오판"
시장에서는 파월에 대한 비판이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올해 연말 미국 기준금리는 1~2% 수준으로 예상했고, 최종적으로 3% 수준에서 금리 인상이 멈출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연준이 공개한 점도표(FOMC 위원들의 향후 금리 전망을 보여주는 지표)에 따르면 올해 말 기준금리를 4.4%, 내년 말에는 4.6%로 전망해 기존 전망치를 대폭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최소한 2024년까지 긴축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는 CNBC 인터뷰에서 "유럽은 이미 경기후퇴 상태이고 미국도 6∼9개월 내 경기후퇴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가 현 수준에서 다시금 20% 정도 빠질 수 있다. 추가 하락은 이전보다 더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조쉬 브라운 리츠홀츠 자산운용 CEO는 연준이 지난해 제시한 전망과 다르게 올해 들어 급격한 금리인상을 단행하고 있다며 투자자들에게 "연준의 예측을 너무 믿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1년 전 오늘 연준은 우리에게 '가파른 금리 인상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며 "다만 우리는 올해 들어 여태껏 본 것 중 가장 빠르고 가혹한 금리 인상을 경험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연준은 자신들이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고 맹비난했고요.
다음 달 FOMC에서도 연준은 금리를 0.75%p 인상할 것으로 보입니다. 유례없는 4연속 자이언트스텝입니다. 정점인줄 알았던 물가는 또다시 상승했고, 실업률도 여전히 낮은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이정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노동시장이 위축되며 임금 상승압력이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크게 둔화되거나, 연준의 말대로 인플레이션이 2%로 하락하는 것이 명백해질 때까지 정책 기조의 변화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연준 의장의 말이 중요한 것은 시장 참여자가 '대비'를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시장의 충격을 연착륙 시키는 것이죠. 하지만 계속되는 말 바뀜에 시장 참여자들은 미리 대비를 하지 못하고, 시장 금리는 출렁였습니다. 오죽하면 "연준을 믿지 말아야 한다"고 할까요. 이러한 상황에서 전 세계 경제는 가혹한 희생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부디, 파월 의장의 전망이 다시 한 번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경제는 견조하고, 물가는 생각보다 빠르게 잡혔다. 빠른 시일 내에 금리를 인하하겠다"라고요.